방정환 번안 동화집『사랑의 선물』
방정환(方定煥.1899∼1931)이 번안한 세계명작 번안 동화집으로 1922년 [개벽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 <사랑의 선물>은 1922년 개벽사에서 출간한 것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번안 동화는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우리식으로 고친 것을 말한다. 방정환은 이렇게 서구 문학을 가져오되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외국 동화를 그 당시 어린이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번안 동화 구연을 많이 해 왔다. <사랑의 선물>은 책제목이 뜻하는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로써 '사랑의 선물'을 주려는 마음으로 안데르센, 오스카 와일드, 그림동화, 아라비안나이트 등 세계 명작 가운데 열 편을 골라 당시 어린이들의 입맛과 시대 풍토에 맞게 엮어낸 책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방정환이 일본 유학중인 1921년 동경에서 안데르센(Andersen, H.C.)의 <꽃속의 작은 이(장미속의 요정)>, 그림 형제(Grimm. J. & Grimm. W.)의 <잠자는 공주>, 빼로의 <산드룡의 유리구두>, 오스카 와일드(Wilde, O.)의 <행복한 왕자>, 데 아미치스(De Amicis, E.)의 <난파선>, 하웁트만(Hauptmann, G.)의 <한네레의 죽음> 난파선 (이탈리아), 요술왕 ‘아아’ (시칠리아), 어린 음악가 (프랑스), 천당 가는 길 (독일), 마음의 꽃 (미상) 등 10편의 명작동화를 가려뽑아 번역한 것이다.
비록 창작물이 아닌 외국의 동화를 옮긴 것이기는 하나, 원문의 뜻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언어의 장벽을 무난히 돌파하였고 구수한 문체가 우리 어린이들의 구미에 잘 맞아 일제 강점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원작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풍자와 해학 속에서 선량하고 정직하며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권선징악적 내용을 골랐다.
방정환은 첫 번째로 <왕자와 제비>를 번역하면서 ‘지구의 꽃인 어린아이들을 위하여 내가 낳은 조그만 예술이 세상 많은 어른의 편달을 받기 바라며, 또 이로 인해 더 좋고 더 값있는 동화 예술이 나기 바란다’고 피력하였다. 그는 외국 동화를 단순하게 원작 그대로 소개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각으로, 불필요한 내용은 빼거나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요소를 첨가하여 이야기를 바꾸기도 하였다. 이 책에 실린 동화들이 제목도, 내용도, 방정환의 시각으로 재탄생한 경우가 많은 이유이다. ‘번역’이라는 방법을 통해 당시 조선 어린이가 처해 있는 딱한 현실을 일깨우고 이에 대한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함이었다.
격랑 속에 휩쓸리며 침몰하는 <난파선>의 모습이 일제의 침략으로 침몰해 가는 조선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 「사랑의 선물」 은 비록 외국 동화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우리 민족이 처한 불우한 이야기, 그 속에서 설움 받고 살아간 당시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설움과 구박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고 나서 보려는 어린 세대의 당찬 모습을 그린 <산드룡의 유리 구두>는 어린이들에게 눈물과 위로를 주었고, 〈한네레의 죽음〉에서는 굶주리고 학대받으며 죽어 가던 조선 어린이들의 절망스러운 삶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왕자와 제비의 선행을 알게 된 사람들이 왕자의 상을 다시 세우고, 그 어깨 위에 제비의 상까지 만들어 주는 내용은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정환이 번역한 〈왕자와 제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이야기 요소라 할 수 있다. 착한 왕자와 제비가 승천 세계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바로 이 땅 위에서 기억되고 그 사랑이 실천되기를 바랐던 방정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잃어버린 바이올린’이라는 일본 번역본 제목을 그대로 쓰지 않고 〈어린 음악가〉로 바꾸어 쓴 것에서는 잃어버린 바이올린 자체보다 인물의 성장 과정에 주목했던 방정환의 관점도 엿볼 수 있다.
조선 민족을 복종시키고 악행에 동참시키려던 일본의 소행을 연상시키는 <요술왕 아아>, 조선을 강제로 빼앗고 죄 없는 수많은 조선인을 마구 죽인 일본군과 경찰을 연상시키는 〈꽃 속의 작은 이〉, 아무리 죄를 지어 나쁜 사람도 뉘우치면 새로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전하고 있는 〈천당 가는 길〉, 정직한 사람이야말로 최후의 진정한 승자임을 알려주는 〈마음의 꽃〉 등 작품 속에서 방정환이 들려주고자 했던 속뜻을 생각하며 읽는다면 더욱 새로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은 구수한 문체로 우리나라 어린이의 구미에 맞도록 꾸며서 창작과 다름없는 동화 구실을 하였다. 이는 사회교화와 민족개조를 지향하는 그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편자가 이 책을 엮은 의도는 그 서문에서 “학대받고, 짓밟히고, 차고 어두운 속에서 또 우리처럼 자라는 어린 영(靈)들을 위하여 그윽이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라고 하였듯이 억압된 우리 어린이의 감성해방에 있었다. 이 책은 방정환의 첫 저서이기도 하다.
<사랑의 선물>에 수록된 번안 동화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난파선>, <산드릉의 유리구두>, <왕자와 제비>, <요술왕 아아>, <한넬의 죽음>, <어린이 음악가>, <잠자는 왕녀>, <천당가는 길>, <마음의 꽃>, <꽃 속의 작은 이> 등 모두 10편이다. 그의 작품들은 말로 들려주기 위한 것을 글로 엮어 놓은 것이 많았는데, 그림 동화이건, 안데르센 동화이건 아주 우리 나라 동화로 만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정이 들고, 마음의 양식이 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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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광익서관에서 오천석이 꾸민 <금방울>이라는 동화집이 있었고, 1925년 노자영의 청화집 <천사의 선물>이 나오기는 했으나, 그 부수와 인기에 있어서 <사랑의 선물>이 단연 독보적 존재였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어린이 이야기책으로 오늘날에도 널리 애독되고 있다.
이 책은 방정환의 여러 저서 중에서 가장 먼저 간행되었고, 또 그가 직접 낸 유일한 작품집이며, 우리나라 현대아동문학 초기의 번역동화집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사랑의 선물」에는 총 10편의 세계 유명한 동화가 실려 있는데 모두 어린이를 아끼고 동정한 방정환의 사랑, 그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 사랑이 변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방정환의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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