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장편소설 『탁류(濁流)』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의 장편소설로 1937년 10월 13일부터 1938년 5월 17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고향과 농토를 잃고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 사회의 어두운 세태를 그렸다.
이 소설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금강의 흐름이 주인공 초봉이의 기구한 일생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금강의 의미는 초봉이의 일생을 암시하면서, 한편 우리 민족의 기구한 처지를 나타낸다. 중간에 백제의 흥망을 더듬는다고 한 것은 나라가 망한 사정을 되새기게 한다. 긍정적 인물들의 수난을 그리는 이 소설에서 당대의 어두운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모함과 사기ㆍ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193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은 작자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전통사회의 질서에 밀려난 사람들이 새로운 식민지 사회 현실 속에서 부동(浮動)하는 모습을 그려 당대의 사회 인식을 드러내 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무능력한 미두장 하바꾼 정주사의 딸 초봉이는 S보통학교 졸업 후 아버지 친구 제호의 약방에서 일하며 미모와 다소곳한 성격으로 제호, 승재, 태수의 관심을 받는다. 제호는 히스테리가 심한 아내가 있고, 은행원 태수는 가난을 숨기며 비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의사인 승재는 초봉의 집에서 하숙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다.
초봉은 승재와 서로 사랑하지만, 제호를 따라 서울로 가려다 실패하고, 중매로 태수의 청혼을 받아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태수는 화류병에 걸렸고, 결혼 직전 병원을 찾아온 그의 모습을 본 승재는 초봉을 가엾게 여긴다. 결혼 후 초봉은 승재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만, 태수와의 생활에서 일시적인 행복을 느낀다.
태수는 비행이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자살을 결심하고, 이때 형보는 초봉을 차지할 욕심으로 계략을 세워 태수와 한참봉의 아내 김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홀로 남겨진 초봉은 제호를 찾아 서울로 가 송희를 낳지만, 제호는 그녀를 떼어버리려 하고 형보는 그녀의 인생에 다시 나타나 억지로 관계를 맺는다.
초봉은 승재에 대한 환상을 간직하며 지옥 같은 형보와의 삶을 끊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승재는 의사가 되어 서울로 올라와 초봉의 동생 계봉과 사랑을 확인하고, 초봉을 구출하려 하지만 초봉은 이미 형보를 살해한 상태다.
계봉과 승재는 초봉에게 자수를 권유하고, 초봉은 승재의 다정한 말에 잠시 희망을 품고 미소를 짓는다. 승재는 그런 초봉의 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작품은 군산의 한 미두장에서 돈을 잘못 놀린 ‘정주사’가 자식뻘 되는 젊은이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미두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쌀 선물거래다. 미두처럼 초고도로 복잡하게 파생된 자본증식 시스템은 끊임없이 유입되는데 그 앞에서 ‘정주사’와 같은 일반인은 구조적 모순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돈을 향한 마음만 자꾸 앞세우다가 주머니를 몽땅 털리고 만다. 작가는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파탄으로 내몰고 마는 정주사의 이런 행태를 한 개인의 비뚤어진 욕망으로 치부해버리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몰락을 부추기는 사회의 병리적 구조를 감지했고 정주사의 물욕은 그 안에서 발견될 최초의 통점으로 삼았다. 돈을 둘러싸고 온갖 모함과 사기가 횡행하다가 급기야 살인까지 벌어지고 마는 모습은 비단 1930년대만이 아니라 8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한 사회상이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채만식 특유의 풍자와 해학, 냉소 날카로운 인식으로 세태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문제의식의 가지를 넓게 뻗는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경쾌한 호흡과 생동감 있는 인물을 통해 서사의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
『탁류』는 군 고원(郡雇員 ; 군청 공무원)을 지낸 정 주사의 큰딸 초봉이의 비극적인 결혼과 남편의 죽음, 꼽추인 장형보의 끝없는 괴롭힘에 지친 초봉이가 결국 그에게 극약을 먹이고 살인자임을 자수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탁류』는 세 가지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첫째는 양반 출신으로서 근대문명 속에 주변 없이 처세하여 극한적으로 몰락함으로써 인간성 자체가 파손당하는 정 주사의 이야기이다. 군 서기 출신의 안이한 관료주의와 전통적인 가장 의식에 얽매어 전통적인 것의 좋은 점도, 신식 문물의 좋은 점도 자기 것으로 택하지 못한 당대의 한 계층을 대표하는 것이다.
둘째는, 주어지는 운명에 순종함으로써 인생을 희생당하는 한국 구식 여성의 전형과 발랄한 신식 여성의 사고와 체질을 지닌 여성의 대조이다. 초봉이는 당시 신식 교육을 어설프게 받은 대표적인 여성상이며, 동생 계봉이는 그러한 식민지 교육의 피해를 입지 않은 인물 중의 하나이다. 두 사람의 대조에서 드러나는 초봉이 역시 정 주사와 함께 전통 사회에도 신식 사회에도 안주 못한 채 뿌리 뽑혀 버린 한 계층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셋째는, 건실한 지식 청년이요, 의학도인 남승재에 관한 작가의 시각이다. 그는 가난한 동포들을 위해 육체적인 노력과 주머닛돈까지 털어 바치면서 동분서주했지만, 끝내 좌절하고 만다. 무료 진료도, 야학도 별 성과를 거두기가 힘들고,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오해나 받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그러한 불행의 근본 원인은 알지 못했고, 소박한 휴머니즘에서 머물렀을 뿐이다.
이러한 서술에서 작가의 시각은 신문학 이래의 이른바 인도주의적 계몽 문학이 지니는 모호성의 지적과 사회 체제의 근본적 파악에로 나아감을 보여 준다. 그것은 그가 동시대의 식민지적 지식인상을 ‘과거의 폐습으로부터 탈출한 진보적 개화주의자’로 보고자 함을 드러내며, <태평천하>의 민족 운동에 투신한 종학이도 같은 위치의 인물이라 보인다.
그는 정 주사 등에 대해 혹독한 비난을 하고 있는 데 반해 종학과 남승재에 대해 애정을 지니고 서술해 나가고 있다. <태평천하>가 전통 사회에 뿌리박은 사람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탁류』는 전통 사회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새로운 식민지 사회에서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작가가 당대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를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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