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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8

천방지축(추)마골피는 천(賤)한 성씨(姓氏)인가 ? 천방지축(추)마골피는 천(賤)한 성씨(姓氏)인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우리 집안은 잉어를 먹지 않는 파평 윤 씨(坡平尹氏)이며, 조선시대 때 왕비(정비)를 네 명이나 배출한 양반 중의 양반이라는 것이다. 21세기 이 시점에 '양반상놈' 따지고 가문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 자체가 아이러니겠지만 한 때 '맞선 볼 때' 성씨를 물으며 본관이 어디냐고 따지던 때가 있었다. 양반 가문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러면 상놈 집안은 어느 성씨예요?”라고 물었는데 되돌아오는 답은 ‘천방지추마골피'라는 성씨였다. 혹자는 ‘추 씨’ 대신 ‘축씨’를 넣어 ‘천방지축마골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중 천 씨는 ‘일천 천(千)’자를 쓰는 성씨는 양반이고, ‘하늘 천(天) 자’를 쓰는 성씨는 상.. 2022. 9. 4.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3년 만에 복학한 나는 한동안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어야만 했다. 많은 이유를 필설(筆舌)로 다 할 수 없을 만치 사고(思考)가 정체되어 도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 패닉 상태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해 전두환 정부의 간선제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는 날로 격해져 갔고 4층 이상의 캠퍼스 건물에는 연일 '군사정권'을 반대하는 삐라가 날아 다녔다. 삐라가 날릴 때마다 숨어있던 사복 경찰들이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봄날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얀 전단지들을 보며 그 모습이 흡사 떨어지는 하얀 꽃잎 같다고 생각했다. 그해 봄, 서울대의 김세진·이재호 두 학생이 분신자살을 했다.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 2014. 2. 28.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 『마종기 시전집』 따뜻하고 아름다운 서정 『마종기 시전집』 마종기(1939 ~ )는 일본 도쿄 출생으로 아버지는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한국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인 박외선이다. 이러한 부모로부터 문학적 자질을 물려받았으며 어릴 적부터 풍부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서울고등학.. 2013. 10. 14.
겨울기도 2 / 마종기 겨울 기도 2 마종기 (1939 ~ ) 1 이 겨울에도 채워주소서. 며칠째 눈 오는 소리로 마음을 채워 손 내밀면 멀리 있는 약속도 느끼게 하시고 무너지고 일어서는 소리도 듣게 하소서. 떠난 자들도 당신의 무릎에 기대어 포근하게 긴 잠을 자게 하소서. 왜 깨어 있지 않았느냐고 꾸짖지 마시고 당신에게 교만한 자도 살피소서. 어리석게 실속만 차리는 꿈속에서도 당신의 아픔은 당하지 않게 하소서. 겨울의 하느님은 참 편안하구나. 2 내가 눈물을 닦으면 당신은 웃고 있다. 당신은 언제까지나 슬픔 속의 노래다. 노래 속의 기쁨이다. 벌판에서 혼자 떨던 나무도 저 멀리 다음해까지 옷 벗어던지고 혼절해버렸구나. 내가 아는 하느님은 편안하구나. - 시집 '그 나라 하늘빛'(문학과지성사. 1991. 10) 1965년 초여.. 2012. 12. 3.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 마종기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마종기 (1939 ~ ) 1. 옥저의 삼베 중학교 국사시간(國史時間)에 동해변(東海邊) 함경도 땅, 옥저(沃沮)라는 작은 나라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날 발 꿈에 나는 옛날 옥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조랑말을 타고 좁은 산길을 정처 없이 가고 있었습니다. 조랑말 뒷등에는 삼베를 조금 말아 걸고 건들건들 고구려(高句麗)로 간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갑자기 삼베 장수가 된 것이 억울해 마음을 태웠지만 벌써 때 늦었다고 포기한 채 씀바귀 꽃이 지천으로 핀 고개를 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딴 나라의 큰 마을에 당도하고 금빛 요란한 성문이 열렸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지금은 잊었지만, 나는 그때부터 이곳에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옥저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도 .. 2012. 7. 9.
연가(戀歌) 4 / 마종기 연가(戀歌)4 마종기(1939 ~ ) 네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들꽃이 되어 이 바다 앞에 서면 나는 긴 열병 끝에 온 어지러움을 일으켜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망각의 해변에 몸을 열어 눕히고 행복한 우리 누이여. 쓸려간 인파는 아직도 외면하고 사랑은 이렇게 작은 것이었구나. - 시집 마종기 시인은 일본 도쿄 출생으로 아버지는 아동문학가인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한국여성 최초의 서양무용가인 박외선입니다. 이러한 부모로부터 문학적 자질을 물려받았으며 어릴 적부터 풍부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는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시의 마이매미 밸리 병원에서 인턴,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겸 방사선.. 2011. 7. 4.
초겨울 주변 / 마종기 초겨울 주변 마종기(1939 ~ ) 겨울은 맨 먼저 혼자 쓸쓸히 내 팔짱에 오고 조용히 바람 소리 내고 손바닥에 흘러내린다 내가 좋아하던 나그네는 벌써 빗장을 걸고 잠이 들었지. 때없이 허허로움은 늦저녁 긴 그림자 같다. 그림자 밟고 가는 구둣소리 같다. 용기가 없어도 오다가다 인사를 하자. 본적도 주소도 같은 시내에서 고개를 들면 나는 추위에 몸을 살핀다 갑자기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거리에는 캐롤송이 들리고 바야흐로 세모로 접어드는 모양입니다.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시작한 한 해였는데 지나놓고 보니 그 여느해처럼 꿈만 꾸다가 지나간 한 해였네요. 얼마전 어릴 때 같은 동네에서 놀던 친구가 죽었습니다. 평소 경미한 고혈압 외에는 아픈 곳도 별반 없었는데 스트레스로인한 뇌출혈로 급사했지요. 많은 것들을.. 2010. 12. 11.
바람의 말 / 마종기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시집 (문학과 지성사 1980) 이십 대 초반에 이 시를 처음 읽었다. 읽고나서 한동안 가슴이 시려오면서 아팠다. 그날 저녁, 영문을 모르는 친구를 붙잡고 학교 앞 시장 통에서 통음(痛飮)을 했던 기억.. 2009.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