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광 신파 희곡 『검사와 여선생』

김춘광(金春光, 1901~1941)이 쓴 신파 희곡으로 4막 5장이며, 처음에는 <검사와 사형수>로 발표되었다가 나중에 제목이 바뀌었다. 1936년 발표되었다. 임선규(林仙圭)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든가, 이서구(李瑞求)의 <어머니의 힘> 등 신파 희곡에서 즐겨 다루었던 기생, 가난한 사람, 무식한 여주인공 등의 인물에게서 탈피하여 지식층인 여선생을 여주인공으로 삼았다. 공연은 예원극장(1939.11)ㆍ청춘극장(1947)에서 했으며, 1968년에는 신극 60주년 기념공연이 있었다.
김춘광은 매우 호방한 성격으로 셰익스피어 극에 심취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가 쓴 작품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조를 따른 것이 많이 있다. 작품세계는 작품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대체로 사랑과 의리·인정이 주제였다. 즐겨 쓴 역사극을 통해서는 권력의 무상과 식민지 시대의 민중 항거 등을 이야기했고, 현대물에서는 의리와 인정, 사랑과 배신, 이별 등을 주로 취급했다. 그는 신파극의 대표적 작품인 <검사와 여선생> 외에도 <촌색시> <어머니와 아들> <사랑과 인생> <안중근 사기> <눈물의 진주탑> 등 4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30년대의 고등신파시대(高等新派時代)부터 광복 직후까지 대중연극을 계속해 온 대표적 신파 연극인으로 평가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병든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장손이라는 소년은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 소년을 여선생 양춘이 각별히 돌보아준다. 그로부터 17년 뒤 양춘은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탈옥수가 그녀의 집에 숨었다가 체포된다. 이때 그녀는 의지할 데 없는 딸을 두고 있다는 탈옥수를 동정하여 그 딸을 데려다 키우면서 감옥에 있는 탈옥수의 뒤를 돌보아준다.
이에 따라 남편의 오해를 받게 되고, 흥분한 남편이 권총을 꺼내 옥신각신하다가 오히려 남편이 죽게 됨으로써 양춘은 살인의 누명을 쓰게 된다. 그런데 기소를 담당한 검사가 옛날 교사 시절의 제자 장손이었다. 장손은 탈옥수를 불러 사건의 경위를 규명하여, 양춘의 무죄를 확신하고 재판하러 나간다.
재판에서 양춘은 남편을 죽인 죄의 대가로 사형시켜 달라고 절규한다. 이때 검사는 자신과 여선생과의 관계를 말하며 여선생의 무죄를 주장한다. 결국, 재판장은 무죄를 선언하고 검사와 여선생은 극적인 해후를 한다.

김춘광은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 경성으로 이주하여, 보성중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다. 1928년 방한갑(方漢甲)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결혼한 뒤 생활을 위해 무성영화의 변사가 되었고, 변사로서 널리 인정되자 [우미관(優美館)]의 일본인 주인이 그를 주임변사로 초빙했다. 거기서 돈을 벌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조선극장]을 인수하여 변사를 계속하였다.
1935년 2월에 임생원(林生員)ㆍ전세종(全世鍾) 등과 극단 [예원좌(藝苑座)]를 조직하여 공연 활동을 벌이는 한편, 극본을 자신이 혼자 맡다시피 하여 <남북애화> <독초> <암흑가> <교정> 등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광복될 때까지 [예원좌]를 이끌었다.
광복이 되자 1945년 10월에 해산된 [예원좌] 단원을 재정비하여 극단 [청춘극장(靑春劇場)]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국도극장(國都劇場)]에 주식을 투자하여 부사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비록 상업주의 연극을 하였지만, 광복 직후의 좌우익 분열의 혼란 속에서 우익 민족 노선에 서서 좌익연극인들과 대항하여 싸웠다. 프로연극동맹(PRO: 演劇 同盟) 측과 대결하기 위하여 1947년에 조직한 [전국연극예술협회]의 부이사장직을 맡았던 것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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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신파극의 여러 가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데, 첫째 선량한 사람이 불행한 운명의 희생자가 된다는 점, 둘째 오해가 주인공을 파국에 빠뜨린다는 점, 셋째 구도덕에 강한 향수가 있다는 점, 넷째 가난이 작품의 주요 동기로 되어 있다는 점 등이다.
이 작품이 대중의 공감을 얻은 이유는 여선생의 선량함과 가난한 학생의 성공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대개의 신파극이 기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신분의 격차로 빚어지는 가정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반하여, 학식 있는 여선생과 가난한 학생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서구(李瑞求)ㆍ임선규(林仙圭)의 신파 희곡에서 즐겨 다루었던 기생, 가난한 사람, 무식한 여주인공 등의 인물에게서 탈피하여 지식층인 여선생을 여주인공으로 삼았다. 동시대의 신구(新舊)사상의 충돌이 아닌 구도덕에 대한 찬미가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민 검사가 어린 시절의 굶주림 속에서도 신문을 팔아 병든 할머니를 지극히 봉양한 것이라든가, 질투심에 불탄 나머지 죽음을 자초한 남편에 대한 사랑을 끝내 지키려는 아내의 열녀적(烈女的)인 자세 등이다.
<영화 ‘검사와 여선생’>

남편을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쓴 한 여인이 옛 제자의 도움으로 석방되는 이야기를 그린, 1948년 작 한국 영화로 1948년 김영순(金永淳) 프로덕션 작품이다. 흑백. 원작 김춘광(金春光), 감독ㆍ각색에 윤대룡(尹大龍), 출연 배우에 이업동(李業童)ㆍ정웅(鄭雄). 서울 우미관(優美館)에서 상영되었다.
탈옥수(이업동 분)를 숨겨준 일로 남편의 오해를 사 칼부림까지 당하다가 오히려 남편을 죽인 누명을 쓰고 법정에 나온 아내는 담당 검사가 된, 옛날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 돌보아준 가난한 제자(정웅 분)의 도움으로 무죄가 밝혀져 석방된다는 줄거리이다.
변사(辯士)들로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던 1940년대 무성영화 작품으로, 유일하게 [영화진흥공사] 필름보관소에 보존되어 있다.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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