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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동리 단편소설 『산화(山火)』

by 언덕에서 2025. 2. 17.

 

 

 

 

김동리 단편소설 『산화(山火)』

 

김동리(金東里. 19131995)의 단편소설로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이다. 숯을 굽고 살아가는 뒷골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산화'는 자연재해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보여준다. 동시에, 가난과 무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백성의 강인한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기적인 지배층과 희생적인 피지배층의 대비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산화(山火)’는 단순한 산불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전통적 가족 질서의 붕괴를 의미하며 운명적 파국과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한다. 즉, 산불은 마을과 가족을 태우며,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30년대 한국 농촌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다. 윤 참봉의 소고기 사건은 전통적 공동체가 외부적 요인(부유층의 영향력)에 의해 흔들림을 보여주고, 산불은 기존 농촌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을 암시한다. ️ 주인공 한쇠 가족의 몰락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전통적 가치관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깊은 산속에 있는 뒷골 마을은 가난하고 궁핍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주민들은 주로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며, 전통적인 신앙과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마을 구석에는 '한쇠'라는 아이와 임신 중인 그의 어머니 뒷실댁, 아버지 뒷실(찬물) 그리고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식량이 부족하여 끼니를 굶기가 생활처럼 된 한쇠 가족에게 누에가 생기자 뒷실댁은 야밤에 윤 참봉네 뽕나무숲에 가서 뽕잎을 뜯어오다 윤 참봉의 소실에게 들킨다. 소실이 뒷실댁을 찾아와 심하게 문초하자 남편 찬물은 도리깨로 자기 아내를 심하게 폭행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한쇠의 할머니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손자인 한쇠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한편, 마을의 부유한 지주인 윤 참봉은 마을 사람들에게 소고기를 나눠주며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

 윤 참봉이 제공한 소고기를 먹은 마을 사람들은 집단 식중독에 걸려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모두 방에 드러눕게 되어 고통을 겪는다. 이에 따라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주민들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쇠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히 출산이 임박한 뒷실댁은 더욱 큰 위험에 처한다.

 식중독 사태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마을에 대규모 산불이 발생한다. 불길은 빠르게 번져나가고, 주민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식중독에 걸려 몸의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한쇠의 가족도 이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마을은 결국 폐허가 되고, 주민들의 삶은 산불과 함께 사라진다.

 

 이 작품은 가족의 결속이 점점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해체 현상을 보여준다. 뒷실댁(찬물 아내)의 고통은 남편의 무능과 가난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쇠의 미래는 희망 없는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불확실한 운명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결국, 가족은 운명의 흐름 속에서 붕괴하며, 이는 단순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연결된다.

 김동리의 「산화(山火)」는 운명적 파국과 인간의 나약함, 가족 공동체와 전통 농촌 사회의 붕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산불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농촌 사회가 필연적으로 맞이할 몰락의 상징이며, 한 가족의 비극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전통적 가치관이 무너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한국 농촌 사회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표적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김동리의 문학은『산화(山火)』에 이르러 한국적 사회 현실과 가장 폭넓은 대결을 보여준다. 여기에 묘사된 농촌은 단순히 어느 시골 마을의 가난한 소작농들의 우연한 집단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하의 한국이라는 보편적 장면으로 승화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늙은이와 젊은이와 아이들은 소설 내의 구체적 동작을 통해서 민족 누구나가 자기의 깊은 내무에서 결국 마주치게 되는 슬픔과 분노를 터뜨리며, ‘아 나무 넘어간다./ 에라에라 넘어간다./ 분 바르고 향수 뿌린 / 주막집 똥갈보야, / 산골 숯장사라 괄시를 마라. / 아주까리 기름 바른 뒷골 처자 / 백탄 장사 총각 보고 밭 못 맨다.’는 노래의 가락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무관할 수 없는 절실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1930년대의 중엽에 발표된 이 작품이 동년 대에 가질 수 있는 의미는 가히 민족적 현실의 예술적 축도라고 찬양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작품은 군국주의 일제의 식량 보급기지 및 병참기지로 전락해 가던 식민지 한국의 당시에 있어서 그것은 이상(李箱)의 모더니즘과 소위 프로문학의 낡은 상투형(常套型)이 다 같이 이루지 못했던 하나의 종합적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