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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かぜのうたをきけ)』

by 언덕에서 2024. 12. 23.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かぜのうたをきけ)』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むらかみはるき, 村上春樹, 1949~)의 장편소설로 1979년 발표되었다. 하루키의 데뷔작이자 대표적인 초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양을 쫓는 모험>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며, 1979년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작으로 하루키를 일본 문학계에 성공적으로 데뷔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하루키 문학의 원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놓쳐서는 안 될 필독서이다. 젊은 날의 격정적인 시간을 보낸 뒤 밀려든 허무감과 깊은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재생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여정을 작가 특유의 짧고 경쾌한 문장으로 담아냈다. 작중 마지막 장면에서 ‘나’가 바람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삶의 부조리함을 수용하며,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루키의 고향 후배인 오오모리 가즈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 소설은 1970년 8월 8일에 시작하여 8월 26일에 끝나는 18일간의 이야기다.

 1970년 여름, 대학생인 스물한 살의 ‘나’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와 따분한 나날을 보낸다.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에서 지내는 별명이 ‘쥐’인 친구와 함께 ‘J’가 경영하는 바에서 하릴없이 맥주나 마시며 시간을 때운다. ‘쥐’는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장사를 시작해서 성공한 아버지를 가진 부잣집 아들로, 섹스 장면이 없고 한 사람도 죽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낯선 여자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이후 그녀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이 각각 사랑의 거북스러움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받아들이는 동안, ‘나’의 여름은 석연치 않게 씁쓸하게 지나간다. 그리고 8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고향을 뒤로한다. 겨울이 되어 ‘나’가 다시 돌아왔을 때, 왼손에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는 레코드 가게를 그만두고 아파트에서도 이사 가고 없다. 그녀는 사랑의 홍수와 시간의 흐름 속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부재는 '나'의 마음에 커다란 공허감을 남기는데 '나'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과 교감을 곱씹는다. 비슷한 시기에 '쥐' 또한 고향을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나’는 '쥐'와 마지막으로 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둘의 우정도 이별을 맞이한다. ‘나’는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하나둘 잃어가는 상실감을 느끼며 어쩌면 '나'가 떠안아야 할 삶의 본질임을 깨닫는다.

 이야기는 다시 ‘나’가 과거를 회상하며 마무리된다. 손가락 네 개의 여인과 '쥐'는 ‘나’의 삶에서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인생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불확실함과 모호함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는 '쥐'가 떠난 이후에도 자신이 살아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작게 울리는 바람의 노래에 귀 기울인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하루키 초기 4부작(<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댄스 댄스 댄스>)'의 제1탄으로서 리드미컬하게 다음 작품으로 연결시켜 주는 고리 역할을 한다. 실제로 소설 속 ‘나’와 친구 ‘쥐’가『1973년의 핀볼』과『양을 쫓는 모험』에도 이어서 등장한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순차적 진행에 구애받지 않는 비선형적 서술법과 함께 옛날 음악이 흐르는 바, 왼손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 나지막한 섬 같은 신비로운 옛 고분, 데릭 하트필드라는 가상의 인물 등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루키 특유의 서사 요소들이 이미 이 소설에 원형적으로 심어져 있다.

 작품은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나(화자)'가 1970년대 일본의 어느 여름 동안 겪은 일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화자는 대학생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소꿉친구인 '쥐'와 만나 시간을 보낸다. 둘은 주로 지역 바에서 시간을 보내며 삶,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 화자는 한 여성을 만난다. 이 여성은 손가락이 네 개뿐인 독특한 특징을 지닌 인물로, 그녀와의 관계는 애매하고 불확실한 경계에 머문다. 이들의 만남은 사랑보다는 일종의 우정과 위로의 성격이 강하다.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당시의 고독과 허무함을 느끼며, 자신과 주변 세계를 탐구하려는 시도를 한다. 화자가 쥐와의 대화, 여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내면적인 독백을 통해 만들어가는 여정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독특한 감성을 전달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독특한 단문과 감각적인 문체로 하루키 특유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소설의 구성은 파편화된 에피소드와 내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독자가 화자의 심리 상태와 세계관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삶의 부조리, 고독 그리고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다루고 있다.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전형적인 특징인 "떠도는 인물"의 테마가 돋보인다. 주인공과 쥐는 둘 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디론가 계속 떠밀리는 현대인의 상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1970년대 일본 사회의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젊은 세대의 소외감을 반영한다. 서구 대중문화와 일본 전통이 혼재하는 배경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만 명확한 결론에 이르지는 못한다. 하루키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그의 문학 세계의 기초를 형성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그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쥐"와 같은 캐릭터나 상실과 탐색의 주제가 이 작품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에게 그의 세계관과 초기 문학적 실험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한 ‘무엇’을 그리고 있으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단지 바닷바람이나 여자의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헤어 린스 냄새, 떠나버린 가족, 죽은 여자 친구, 돌아갈 곳이 없어진 자리와 같은 여러 가지 소품과 에피소드를 통해 상실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각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메마른 청춘의 편린들을 부서지고 파편화된 그대로 담담하게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특유의 서사 기법을 통해 젊은 날의 시간은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젖어 흘러가며 누구도 붙잡을 수 없는 것임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