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장편소설 『서유기』
최인훈(崔仁勳. 1936∼2018)의 장편소설로 1966년 5월 [문학]지에 발표되었다. 이후 1971년 [을유문화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전작 <회색인>의 속편인 『서유기』는, 주인공 독고준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파격적 서사 실험을 선보인다. 한반도 지식인의 존재론적 고민과 고뇌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극단에 놓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중국의 고전 『서유기』와 동명의 작품이지만 완전히 다른 현대적 · 철학적 접근을 담고 있다. 인간 존재와 이상향에 대한 성찰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와 역사적 현실을 탐구하는 상징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전작 <회색인>의 주인공 독고준이 다시 등장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고준은 서유기(여기서 '서유기'는 중국 고전소설)의 주요 인물들과 만나게 되고, 서유기의 여정을 통해 내면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현실 사회에서의 혼란과 불안을 느낀다. 이 작품 속에는 한국 현대사의 상황을 반영하는 다양한 상징과 은유들이 등장하는데 독고준은 자신이 과연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독고준은 현실 사회의 부조리와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고 끊임없이 선택하는 갈림길에 선다. 그는 내면의 갈등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적인 감정을 드러내는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의문을 품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뇌한다. 소설은 명확한 해답 없이 다소 애매한 결말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의 여정은 계속되며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독고준은 일상적 삶에서의 고통과 부조리에 얽매여 있다. 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소외감 속에서 독고준은 현실을 넘어선 무언가 더 나은 이상향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가 느끼는 현실의 무의미함은 그를 깨달음을 위한 여정으로 이끈다. 여행에서 주인공은 현실과 이상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독고준은 여정에서 점점 더 깊은 철학적 딜레마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찾고자 했던 이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에 빠지며 현실 세계의 무거운 문제들에 직면한다. 이 시점에서 독고준은 자신의 존재와 선택에 대한 깊은 갈등을 겪는다. 현실과 이상의 틈새는 점점 더 커지고 그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덮친다.
여정의 절정에서 독고준은 결국 자신이 찾던 이상향이 구체적인 장소나 상태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무엇임을 깨닫는다. 현실 세계는 여전히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이상적인 삶이라는 인식을 얻는다. 이러한 깨달음은 독고준에게 정신적 성숙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그가 여정을 통해 배운 것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그는 자신이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시각으로 현실을 마주한다. 그는 현실의 부조리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의 이상적인 깨달음이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남아있다.
『서유기』는 단순히 신비한 여정과 깨달음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라 현실 사회와 인간 존재에 대한 심오한 성찰을 담고 있다. 특히, 최인훈은 이 소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적 · 역사적 상황을 철저히 비판하며, 인간이 겪는 정신적 방황과 소외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이 소설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현실과 이상의 갈등이다. 독고준은 현실에서의 고통과 모순을 피하고자 이상적인 세계를 찾으려 하지만 결국 그 이상향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주제는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도 연결되어 역사적 · 사회적 부조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고준의 여정은 전통적인 서유기의 여정과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단순히 외적 여행이 아니라 내면적 · 정신적 성장을 위한 과정이다. 독고준이 만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철학적 ·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에서 겪은 집단적 상처와 인간 존재의 고뇌를 드러낸다.
『서유기』는 불교적인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이다. 특히 독고준의 여정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외부 세계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내면에서 그 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불교에서의 수행과 깨달음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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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서유기』에서 실험적인 서사와 문체를 사용한다. 이 소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비현실적 요소들을 담고 있으며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고 다양한 서술 기법과 장르를 혼합한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고준은 여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의 고통과 소외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을 찾는다. 소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며 철학적 사유를 유도한다. 『서유기』는 복잡한 서사와 심오한 철학적 질문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지만 이를 통해 독자는 현실과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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