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만 장편소설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
독일 소설가 · 평론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장편소설로 1947년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으로, 독일의 20세기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는데 나치즘, 전쟁, 예술, 윤리적 타락 등 여러 주제를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독일인과 독일 정신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예술과 문화 그리고 인간 정신이 처한 위기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소설이다. 고독하고 오만한 천재 작곡가가 창작의 위기에서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악마와 거래하다가 결국 정신적 파멸에 이른다는 내용으로 중세 파우스트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내가 있는 곳에 독일 문화가 있다."라고 말한 토마스 만의 말처럼 독일 정신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 작품에는 독일의 정치 · 역사 · 사상 · 문화가 작품 전반에 두루두루 녹아있다. 다양한 기법과 방대한 사상을 총망라한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를 집약한 최후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레버퀸의 친구이자 화자인 차이트블롬이 작품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화자 차이트블롬은 친구 레버퀸의 삶을 회상하며 그가 어떻게 예술과 악마적 계약 사이에서 무너져갔는지를 술회한다. 이 화자의 시선은 레버퀸의 생애에 비극적이고 비판적 시각을 더해주며 나치즘이 독일을 타락시키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40년대, 히틀러 치하의 독일이다. 인문학자인 차이트블롬(Tyshius Zeitblom)은 2년 전에 죽은, 친구이자 천재 작곡가인 아드리안 레버퀸(Adrian Leverkühn)의 전기(傳記)를 집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기의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퀸(Adrian Leverkühn)은 1885년 독일에서 태어난 천재적인 음악가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지적 탐구를 이어간다. 그는 신비로운 천재성을 지녔지만 인간관계에 무심하여 지인들에게 지극히 냉정한 인물이다. 레버퀸은 전통적인 예술 형식에 반발하여 새로운 음악적 혁신을 추구하는데 친구 차이트블롬은 레버퀸의 삶을 지켜보며 그를 돕는 역할을 한다.
레버퀸은 어느 순간 음악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창조력의 위기를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창의성을 얻기 위해 악마의 힘에 의존하기로 결심한다. 레버퀸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혼란에 빠진 상태에서 신비한 경험을 하면서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으로 인해 그는 24년 동안이나 천재성을 보장받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잃고 영혼을 팔게 된다. 이후 레버퀸은 혁신적이면서도 난해한 음악을 작곡하며 대중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레버퀸은 자신의 예술과 천재성에 매몰되어 감정적으로 고립되고 음악은 점점 더 불협화음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을 띤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소외된다. 악마와의 계약은 그에게 예술적 성공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고통을 안겨준다.
드디어 레버퀸은 마지막 대작 '아폴로니오스의 회심'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그의 음악적 천재성의 정점에 있는 걸작이지만 그의 정신적, 육체적 쇠퇴 또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예술이 인류와 문명에 대한 파괴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과 동시에 악마와의 계약이 자신을 완전히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악마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레버퀸은 정신이 붕괴하여 완전히 미쳐버린다. 그는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레버퀸의 몰락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독일 사회와 예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며 20세기 유럽이 직면한 역사적 파국과 연결된다. 차이트블롬은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며 친구의 삶을 통해 나치즘과 같은 역사적 재앙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소설을 마무리한다.
이 소설은 예술과 악마의 관계, 천재성과 파멸, 나치즘의 탄생을 예견하는 독일 사회의 불안 등을 내용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아드리안 레버퀸은 파우스트 신화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한 인물로,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천재성을 얻는다. 그는 악마적 존재와 계약을 통해 24년간 엄청난 창작 능력을 얻게 되지만, 그 대가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레버퀸은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과 창조력을 타고났지만, 태생적으로 오만하고 고독하다. 그는 곧잘 발작적으로 웃어 대는데, 정황을 따져 보면 인간성과 생명을 비웃는 웃음이다. 그리고 그는 주변인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결코 없을 뿐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지도 못하며 오랜 친구에게도 쉽사리 말을 걸지 않는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우리’라는 말 대신 ‘자네들’이라고 하는 등 인간적인 교류나 인간정신을 비하한다. 심지어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격리하며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려 하는 인물이다. 또한 작품을 위해서라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해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레버퀸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역시 타락하고 모순된 당시 독일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신성을 이성의 잣대로 왜곡하고 악마보다 더 악랄한 사고를 부추기는 신학 교수들, 특이한 것에 무분별하게 열광하며 인간적인 수준의 재능은 하찮은 것이라 여기는 예술 애호가들,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욕정에 사로잡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남녀 등이 그 사례이다. 짐짓 열띤 논쟁을 벌이는 대학생이건 부잣집 살롱에서 우아한 모임을 하는 지식인이건, 그들이 끝없이 늘어놓는 현학적인 장광설 속에는 정작 조국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이란 없다.
가장 양심적인 인물로 보이는 작중 서술자 차이트블롬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 악마적인 환상에 사로잡힌 친구 레버퀸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를 말리기는커녕 호기심으로 방관한다. 차이트블롬은 전쟁에 미친 조국과 인간성을 폄훼하는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지만 은둔한 채 탄식만 하는 그의 나약한 휴머니즘은 현실에 전혀 실효성이 없다. 냉소, 광신, 방관. 이것이 당시 양차 대전과 나치즘을 대면하는 독일 국민의 태도이자, 오늘날에도 진정성을 상실한 인간 문명을 대면하는 모든 현대인의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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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적으로 변형하여, 예술적 천재성과 윤리적 타락이란 문제를 다루었다. 레버퀸이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 그 결과로 고통과 파멸을 맞이하는 과정은 파우스트의 현대적 모습이다. 작곡가 레버퀸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하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작가는 그 시대의 독일 음악가인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서 영감을 받아 레버퀸의 음악적 혁신을 묘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천재 예술가 레버퀸의 존재가 시대적 · 역사적인 현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간간이 펼쳐지는 작중 독일 문화사와 정신사의 ‘리뷰’는 매우 광대하기 짝이 없다.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지배했던 중세부터, 이에 반발한 루터의 인간성 담론과 전설 속 파우스트의 (악령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은) 초인간적인 창조성 추구를 넘어, 개인의 주관성과 자율성에 심취했던 인문주의를 거친 뒤, 19세기 말 니체에 의한 '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다룬다. 소위 ‘독일 정신’의 끊임없는 자아 해방과 자기 신격화가 어느덧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리고 파멸로 향하는 긴 과정에 대한 성찰이다.
레버퀸이 악마와 결탁하고 인간적으로 몰락을 맞이했듯이, 20세기 독일 민족의 극단적인 광기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던져버리고, 나치와 파시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전 세계를 위기와 혼란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독일 민족의 운명을 위협했다. 이 작품은 가장 독일적인 작가라 불리는 토마스 만의 ‘독일 정신’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일시적으로 강력한 힘을 얻지만 결국 파멸로 이어지는 레버퀸의 이야기는, 나치즘을 통한 독일의 일시적 성공과 이후의 붕괴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파우스트 박사』는 토마스 만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예술과 윤리 그리고 독일의 역사적 경험을 깊이 있게 탐구한 걸작으로 꼽힌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20세기 유럽의 역사적·정신적 위기를 묘사했으며, 파우스트 신화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현대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소설은 매우 복합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서구의 예술과 역사,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깨달음을 제공하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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