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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에 관한 책『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

by 언덕에서 2024. 3. 27.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에 관한 책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일제강점기인 1926년에 발간한 기생에 관련한 책이다. 역대 기생들의 실상을 밝힌 책으로 신활자본. 서문 외 목차 8, 본문 288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26년 한남서림(翰南書林)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의 특징은 기녀들의 실상을 밝히는 데 있어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등을 비롯하여 각종 문집·야사 등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고증근거로 하고그에 입각하여 서술한 점과기녀의 기능에 따라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밝힌 점이다.

「조선해어화사」는 한국 기생의 기원을 고려초 여진 · 거란 등 북방민족 정벌 때 끌려온 이민족 여인들에게 접대부 일을 시킨 데서 찾고 있다. 그뒤 당국은 아예 '교방'을 설치해 외국 사신 및 왕과 귀족의 잔치에 불려나갈 여성을 뽑아 교육시키기 시작하면서 기생을 하나의 제도로 정착시켰다고 서술한다. 조선조 말에 오면 기생도 아예 등급이 매겨지는데, 1등급은 '예술가'라 불러도 좋을 '명기'이고, 2등급은 창가를 부르고 술시중 드는 부류고, 3등급은 매음도 하는 이른바 '화류잡기'라는 부류이다.
 개화기에서 식민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학' 연구자들로는 신채호 · 최남선 · 정인보 · 신규식 · 박은식 등이
꼽히는데, 이 가운데 최남선과 이능화는 특히 민속학 쪽에 역량을 보였다. 최남선이 주로 문헌학적 방법이었다면 이능화는 종교사적, 또 민중사적 방법으로 조선학에 접근했다.
 이능화는 서양 학문의 영향이 한국의 학문을 미분화시키기 전 그저 '조선학'이라는 이름 아래 민간신앙에서 연
희 · 복식 · 생활 · 풍속 등을 두루 섭렵한 '사통팔달 민속학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였다. 그래서 이 책은 정사의 기록들에서 생략되어 온 사람살이의 다양한 풍경들을 복원시켜 보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고려를 거쳐 조선 말기까지 역대 기녀들에 관계되는 모든 실상을 상세히 밝혔다. 말을 하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해어화라고 불렀던 기생에 대한 언급들을 고전사서들을 찾아 수록한 책으로서, 관련 연구를 하는데 큰 가치를 가진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집과 야사를 수입하여 신라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역대 기녀들에 관계되는 모든 이야기들을 체계적으로 모아놓았다. 기녀들은 오랫동안 일반의 생활주변에서 널리 볼 수 있는 존재였으나, 그것의 존재에 대해 어느정고 금기시하고 배척하는 분위기 때문에 이 책만큼 적극적으로 기녀에 대해 연구한 책은 없었다.

 ‘해어화’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이다. 중국 후당시대 학자 왕인유(王仁裕, 880~956)의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의하면 원래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가리켜 사용한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의미가 확대되어 기생을 뜻하게 되었다. 즉, 『조선해어화사』는 한국의 기생사다.

 『조선해어화사』는 서문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저술의 목적이 사회상의 일부를 밝히는 데 있다고 했다. 본문은 전체 35장이며, 각 장은 대체로 해당 장의 개요를 설명한 다음 관련 자료를 제시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제시된 자료에는 각종 문헌 사료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이 견문한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 또 인물 사진을 비롯한 도판 13매를 수록하여 본문의 이해를 돕고 있다.

 본문에서는 기생의 등장에서부터 기생 설치의 목적, 기생과 여러 계층의 관계, 재능이나 인품을 갖춘 명기 열전, 기생의 지방적 특징, 기생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고려시대 양수척에서 기원했다는 성호 이익 등과는 달리 한국에서 기생은 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했으며, 관기(官妓)도 고려시대의 경우 확인된다고 했다.

 조선시대 사료를 통해 확인되는 기생 설치의 목적은 궁중이나 공적 연회에 필요한 음악 연주[女樂] · 사신 접대 · 변방 군인의 위로 · 의녀(醫女) 자원의 확보 등이라 했다. 기생은 위로는 군왕으로부터 관리 · 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과 관련을 맺으면서 여러 사연을 낳았다고 했다. 또 기생 가운데는 시가에 뛰어나거나 의리를 지키고 효도를 다한 명기들을 소개했고, 기생에도 등급이 있음과 근대에 오면서 기생 조합[券番]이 등장한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기생 자신이 지은 시뿐만 아니라 기생에게 준 ☞향염시(香奩詩)가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기생이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제1장 신라 때 이미 창녀가 있었다

제2장 고려시대 기생의 기원

제3장 고려의 여악

제4장 고려군왕의 애기

제5장 고려인사의 애기

제6장 고려 사람의 향염시

제7장 고려시기

제8장 조선시대 기녀의 설치 목적

제9장 군왕과 종친이 기생으로 즐거움을 삼다

제10장 봉명한 사신이 기생으로 즐거움을 삼다

제11장 일반 조관이 기생으로 즐거움을 삼다

제12장 방백과 수령이 기생으로 즐거움을 삼다장 조관이 기생을 첩으로 삼다

제14장 조관이 기생을 두고 다투다 
제15장 기첩을 두면 반드시 뒷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제16장 국휼에 기생을 데리고 노는 일을 법으로 금하다

제17장 교생, 조랑이 창녀를 데리고 노는 해괴한 풍속

제18장 명기생과 명유생

제19장 천객과 소인의 기생을 대하는 정

제20장 유학자와 기생

제21장 반역한 장수가 기생을 사랑하다

제22장 상객이 기생을 사랑하다

제23장 어리석은 남자의 짝사랑

제24장 대머리인 사나이는 기생이 싫어한다

제25장 기생으로서 잊을 수 없는 다섯 가지 자격

제26장 사랑하는 사이에 헤어지는 괴로움

제27장 조선시대 인사의 향염시

제28장 기녀의 지방적 특색

제29장 재모와 이채가 있는 명기

제30장 시가와 서화에 능한 명기

제31장 해학을 잘하는 명기

제32장 절기, 의기, 효기, 지기

제33장 지난날과 오늘날의 엽기 풍속 비교

제34장 서방 있는 기생, 서방 없는 기생

제35장 갈보종류총괄

 

『조선해어화사』는 인용한 사료는 물론 본문까지 모두 ☞ 현토(懸吐)를 한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료를 충실히 제시하여 사실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적 입장에서는 사료를 분석하여 사실을 도출하는 이러한 서술 방식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첫째, 천시되고 소외된 계층인 기생을 연구 주제로 부각시킴으로써 한국여성사는 물론 한국사회사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점이다.

 둘째, 기생 관련 자료가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선해어화사』는 자료집으로 의미가 있다.

 셋째, 문헌 사료뿐만 아니라 이능화 자신이 견문한 바를 수록한 부분은 다른 자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1차 사료란 의미가 있다.

 

 

「조선해어화사」의 내용은 모두 35장으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중요내용의 일부를 보면, 신라시대이유창녀(新羅時代已有娼女)ㆍ고려시대기생기원ㆍ고려여악(高麗女樂)ㆍ고려시기(高麗詩妓)ㆍ이조기녀설치목적ㆍ군왕종친이기위락(君王宗親以妓爲樂)ㆍ봉사지인이기위락(奉使之人以妓爲樂)ㆍ일반조관이기위락(一般朝官以妓爲樂)ㆍ방백수령이기위락(方伯守令以妓爲樂)ㆍ유학자여기생(儒學者與妓生)을 밝히고 있다.

 기녀들은 오랫동안 일반의 생활주변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며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적지 않게 밀착된 위치에서 영향을 끼쳤던 존재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소외된 계층이기도 하였다. 이 책은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계층인 기녀들의 역사적 실상을 밝혀줌으로써 우리나라 여성문제연구는 물론, 전통생활문화사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향염시(香奩詩) : 향기롭고 고운 시

☞ 현토(懸吐) : 한문에 토를 닮

 


 

이능화(能和 : 1869~1943) : 조선시대 고종6년(1869) 충북 괴산에서 출생해 1943년에 사망했다. 자는 자현(子賢)이고 호는 간정(侃亭), 상현(尙玄), 무능거사(無能居士)를 두루 썼다. 개화파 이원긍(李源兢)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여 전통학문인 유학(儒學)이 아닌 외국어에 매진해 프랑스어·영어·중국어·일본어 등에 통달했다. 1906년에는 한성법어학교 교장으로서 외국어전문가 양성에도 참여했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을 전후로 인생행로를 학문 연구로 바꾼 후 한국의 종교와 민속 연구에 개척적인 업적들을 남겼다. 저술의 상당수가 산일(散逸)되고 현재는『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조선기독교급외교사(朝鮮基督敎及外交史)』『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조선여속사(朝鮮女俗史)』『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등이 한문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능화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9·20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2: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257∼295)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