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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버지니아 울프 평론집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by 언덕에서 2024. 3. 28.

 

 

버지니아 울프 평론집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1882∼1941)의 평론집으로 1929년 발표되었다. 현대 문학사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새로운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20세기초의 실험적인 작가로 손꼽힌다.  1960년대 말부터는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재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앞에서 서술한 문학적 업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전설적인 여운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생전에 이미 불룸즈베리 그룹의 중심인물로써 숱한 화제를 뿌렸던 대다가, 비범한 성격과 용모, 만성적인 정신 분열증, 결국 자살로 마감한 생애는 그녀를 하나의 신화 같은 전설로 만들었다.

 평론서『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한 사람의 여성이자 작가로서, 그동안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억압당해 온 여성들의 현실, 여성 문학의 가능성을 고민한 울프의 치열한 사유가 담겨 있다. 울프는 1928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두 여성 칼리지인 뉴넘 칼리지와 거턴 칼리지에서 〈여성과 소설〉이라는 주제로 한 강연을 바탕으로 이 에세이를 집필했다. 그리고 1929년 9월 울프 부부가 경영한 호가스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후 이 작품은 페미니즘 비평과 젠더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오늘날 페미니즘의 가장 유명한 고전이자 강렬한 상징이 되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1882∼1941)

 

 책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문학’ 역시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존재해 왔다. 이 책에서 울프는 여성이 자신의 사유를 표현하는 기본 수단인 ‘글’이라는 영역에서 왜 늘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만큼 이 세계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시각과 언어로 규정되어 온 것인지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해 낸다. 그리고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글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을 명확하게 언급한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반드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경제력, 그리고 문을 잠그고 마음껏 자신의 사유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한 칸의 자유. 수많은 남성 작가들에겐 당연하게 허락되었던 것이 여성들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울프는 여성들에게 이제 마땅히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사물을 그 자체로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라고, 리얼리티와 직면해서 살라고 당부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언어와 목소리를 되살려 낼 길, 여성 문학의 가능성과 비전을 모색한다.

 현대에서 여성문학론에 관한 논의는 거의 예외 없이 버지니아 울프에서 출발하였으며 『자기만의 방』은 그 논의의 초석을 이루는 평론이니 만큼 21세기에 다시 재조명되는 계기가 될 듯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주는 여성에 대한 메시지는 너무도 강렬하고 열정적이어서 그 누구도 거론할 논제가 되어주질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논의는 여성작가들의 각면한 성격, 사회적 제약과 억압적 상황을 다루고 있고 여성이 자기만의 아성을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울프는 어필한다.

 또한 울프는 앞으로 백 년만 지나면 여성은 자신의 생각을 여실하게 표현할 수도 있고 시인이 될 수도 있고 시인이 될 수도 날이 도래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러한 모순이 반영된 의식의 흐름을 다룬다는 모더니즘 작가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피상적 관념주의자가 아니며 소위 상부구조의 바탕을 이루는 하부구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 준다.

 버지니아 울프의 기발하고 명석한 인식을 가지고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 작가만이 아니라 여성 일반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며 사회의 통속적인 고찰을 파헤쳐 간다. 자신이 역사를 다시 쓴다면 18세기말경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 했다는 사실을 십자군전쟁이나 장미전쟁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기술할 것이라는 언급도 전면적으로 비판적이며 철저한 페미니스트로서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울프는 내면 의식의 세계를 탐구한 모드니즘 작가로 흔히 알려져 왔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를 새롭게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게 되었다. 즉 여성해방문학론의 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되었고 그의 평론인 『자기만의 방』과 <삼 기니(Theree guineas)>는 여성문학론의 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로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경향은 부드러운 대화체의 톤으로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버지니아는 유한계층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지적인 문화를 향유하면서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의 주요 인물로 생활한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생각해 볼 때 여성들의 상황과 삶의 조건에 대해 이토록 예리한 통찰력과 공감을 보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모더니즘 기법으로 서술한 「자기만의 방」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복합적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형식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도 상당수 있지만 toril moi는 sexual textual Poltics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형식을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옹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서 17세기의 여류작가인 레이디 윈칠시어와 공작부인이었던 마가레트는 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블루 스타킹이라는 조소를 받았다.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분개하면서 우울증 환자가 되거나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이후 중산층 출신의 여류작가 에이프러 벤은 여성도 글을 쓰고 사회에 진출도 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선지자 역할을 하는 여류작가들 덕택으로 마침내 19세기에는 죠지 엘리어트 같은 위대한 여류작가들이 쏙쏙 산출되어 여성문학의 데미지를 살렸다 그러나 이들 또한 여성에게 부과된 경험의 제약과 여류작가에 대한 가혹한 비판으로 고통받았고 여성문학 전통의 부재로 인해서 고유의 언어로 표출할 수 없었다. 제인 오스튼과 에밀리 브론테만이 이렇나 제약을 극복하여 왜곡되지 않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여성은 왜 가난한가라는 반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버지니아는 영국 박물관을 찾아가 여성학을 주제로한 문서들을 검토했다. 그러나 별다른 시원 명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실상 이들의 견해는 남성의 우월함과 자신감을 확보하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여성은 유사 이래로 남성을 실제 크기보다 확대하여 반사해 주는 거울 역할을 해왔다. 여성을 희생시켜 얻은 남성들의 자신감은 끊임없는 소유욕 획득에 대한 욕망들을 부추켜 남성들 스스로를 비인간화시키고 제국주의적 약탈과 전쟁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남성들은 여성을 억압하고 열등한 준재로 치부하면서도 그들 스스로를 왜곡된 존재로 변질된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울프 부부의 삶에는 점차 암운이 덮이기 시작했다. 독일군의 침공은 유태인인 레느드에게 잠재적인 위협이었으며, 시골집으로 대피했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시의 불편과 고통은 버지니아의 신경을 극도로 자극했다. 다시금 자신이 미쳐가고 있음을 감지한 그녀는 남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나는 당신의 인생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이슬이 아직도 촉촉한 초원을 씩씩한 걸음걸이로 가로질러 강으로 나가서 주머니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고 강물로 들어갔다. 시체는 2주 후에야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