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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by 언덕에서 2023. 10. 10.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언론학자· 정치평론가 강준만(康俊晩.1956∼ )의 정치평론서로 2020년 4월에 출간되었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위해 “유권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소비자’로 거듭날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언론과 언론 정책을 비평한 책이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이론과 더불어 서구와 한국의 소비자 운동을 개괄적으로 소개한다. 책 제목인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영국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가들이 들고 나왔던 슬로건이다.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가운데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쇼핑 행위가 정치적 행동주의의 유력한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즉, 유권자가 투표하듯 소비자가 시장에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구매력으로 투표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이는 시장을 정치적 표현의 장(場)으로 간주해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대신 기업에 투표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의 제목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라는 말은 정치가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가운데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투표가 요식행위일 뿐 선거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로 무장하고 있다. 오히려 일상적 삶에서는 유권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그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소셜미디어 혁명과 참여의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소셜미디어가 여론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소셜미디어의 속성과 부합되는 ‘따로 그러나 같이’라는 슬로건이야말로 ‘쇼핑’과 ‘투표’를 화해시키는 길이다. ‘정치 정상화’의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발전을 위해선 넘어야 할 큰 벽이 있다. 그건 바로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이다.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봉이다”는 반론도 있지만, 소비자를 정말 왕으로 대접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강한 의문이  든다. 그러나 널리 외쳐지는 이 미신적 슬로건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사람들이 약자를 대상으로 ‘갑질’을 하는 심리적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일부 기업들은 이 미신을 노동자와 하청업체들에 온갖 횡포, 아니 사실상의 착취를 일삼는 ‘면죄부’로 활용해 왔다. ‘소비자=왕 모델’은 ‘갑질 모델’이자 ‘착취 모델’이다. 소비자에겐 권리만 있는 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의식이 널리 확산될 때에 비로소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소비자는 왕이다”는 근거 없는 미신에서 벗어나 시민 소비자로서 권리와 책임에 투철해야만 ‘갑질’과 ‘착취’를 없앨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문제의식이 낳은 산물이다. 많은 지식인이 ‘시민의 소비자화’를 개탄한다. 그러나 명분을 내세운 시민이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 소비자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문제를 외면한 채 다분히 허구적인 ‘시민 우위론’을 내세우는 현실이다. ‘시민’을 앞세워 진보 행세를 하는 이가  존재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인 소비자‘로 살고 있는 이중성과 위선을 깨는 풍토를 조성하는 게 더 시급한 일로 판단된다.

 

 

 사람은 공동체 문화에 치이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공동체적 가치와 의미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묘한 동물이다. 이른바 ‘소비 공동체’와 ‘브랜드 공동체’도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나타난 새롭고도 강력한 공동체다. 공동체 문화의 이런 변화는 새로운 업종을 낳게 했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성공이다. 공동체 생활에 굶주린 미국인들이 친구와의 약속 장소, 가벼운 회의 장소 등 제3의 장소에 대한 강렬한 수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기에 성공했다. 한국에 커피 전문점이 과잉일 정도로 많이 늘어난 것은 여러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공동체적 소통의 필요성과 맞아떨어졌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브랜드 공동체’로 대변되는 소비 공동체의 힘은 이미 현실임에도, 우리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소비’를 ‘진보’의 적으로만 간주해 온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10대 팬덤에 대해 눈을 흘기면서, 그런 팬덤의 사회적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동력은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연대를 배척하지는 않는 이른바 ‘포용적 개인주의’와 ‘약한 연결의 힘’이다. ‘약한 연결의 힘’으로는 세상을 바꾸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자. ‘디지털 혁명’으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성세대는 ‘관계’를 소중히 해왔다지만, ‘디지털 혁명’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젊은 세대는 그런 ‘관계를 중시하는 생존술’에 의문을 품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끈적이는 관계를 맺기를 싫어한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망정 모두 다 눈으로 “끈적이는 관계는 싫어요!”라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부담 없는 약한 연결을 원한다. ‘약한 연결’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조건인 셈이다.

 

 

 지난 2010년 이마트 등 일부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즉석 피자가 소비자들의 큰 인기를 얻자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과 네티즌 사이의 설전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한 네티즌이 “신세계는 소상점들 죽이는 소형 상점 공략을 포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영업자들 피 말리는 치졸한 짓입니다”라는 글을 쓰자 이에 정용진이 ‘소비자의 선택’을 강조하면서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라고 대꾸한 것이다.

 정용진의 반론은 그간 오래된 상식이었다. 소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한다는 건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념적·정치적·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간 ‘소비자’는 ‘시민’에 비해 비교적 이기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작금은 그런 구분은 사라져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소비 행위를 통해 시민으로서 자각성을 갖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기존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격변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급한 질문일망정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의 한복판에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거나 ‘운동’으로까지 부를 정도의 규모는 아니어서 그렇지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소셜미디어 혁명으로 인해 우리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특정 상품·기업·업소에 관한 평판 위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스스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고 나선 것이야말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좋은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도, 신자유주의 운동도 아니다라며 기존의 이분법의 틀로는 그 실체를 살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현 시장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다른 걸로 대체하는 혁명보다는 개혁을 원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기업, 정부, 정치권, 언론이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소비자 운동은 마지막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 정치적 소비자 운동의 동력은 개인주의적이면서도 연대를 배척하지는 않는 이른바 '포용적 개인주의'와 '약한 연결의 힘'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