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高朋滿座

스웨덴 국민이라는『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by 언덕에서 2023. 5. 9.

 

스웨덴 국민이라는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스웨덴 국민에겐 스웨덴이 행복한 나라일 수 있다. 이 책은 철저히 한국인의 시각으로 스웨덴 사회를 바라본 것이다. 저자는 한국인에게 스웨덴 같은 나라는 불행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 듯하다. 더불어 스웨덴 같은 복지 국가에도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상사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스웨덴 수도인 스톡홀름 거리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지며 공병을 모으는 노인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젊은 시절 일자리를 갖지 못해 나라에서 지급하는 월 100만원 정도의 기초연금으로 생활하는 분들이다. 세금 떼고 높은 주거비를 제하면 생활비가 부족해 공병을 팔아 근근이 살아간다. 한국 언론과 방송에서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모습이다.

스웨덴 고령층은 풍족한 연금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누리지 않나고 질문할 수 있다. 분명히 한국보다 노인 빈곤율이 낮고 연금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세율이 높고 물가와 주거비가 비싸기 때문에 실제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다.

 

자료 기준 : 2010년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우리도 복지를 크게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인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소환되는 것이 북유럽 복지제도다. 실제로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전하는 북유럽 이야기는 늘 우리를 감동시킨다.

 박지우의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2022)은 북유럽 복지에 대한 우리의 동경을 사정없이 뒤흔드는 생생한 현장 보고서다. 바로 저자는 스웨덴 현지에서 직장을 다니며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스웨덴 복지제도의 실상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복지라는 단어는 풍성한 혜택을 제공하지만, 반대급부로 막대한 부담과 부작용도 뒤따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혜택에만 열광하고, 부담이나 부작용에는 눈을 감아 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스웨덴에서 의료는 거의 무상이다. 중병이 걸려도 치료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웬만한 병으로는 진료 예약조차 잡기 어렵다. 상담을 거쳐야 하고 대기 시간이 무척 길다. 사실상 병원에 가기 어렵다. 당국의 엄격한 통제로 의사들은 적극적인 치료를 꺼린다. 중병 위주로 대응하다 보니 코로나19 같은 대규모 감염병에는 속수무책이다. 이런 가운데 부유층은 값비싼 사보험을 통해 신속하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는다.

 학비도 대부분 무상이다.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국민 정서상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또한 학력이나 학벌이 소득수준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니 교육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을 수도 없다. 이런 현실이 경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부유층의 교육열은 뜨겁다. 그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학비도 상당히 비싸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경쟁이 별로 없고 평등을 지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극화되어 있다.

 스웨덴의 연금 및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은 탄탄한 편이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50% 정도다. 하지만 주거비나 물가가 비싸다. 그래서 연금으로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한편 고용보험은 사보험이다. 스웨덴 경제는 상당히 기업친화적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보험은 필수적이다. 또한 노동조합비도 선택적이다. 조합비 수준에 따라 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도 달라진다. 이렇듯 안전망은 잘 구비되어 있지만, 부담은 본인이 하는 구조다.

 

 

 저자는 스웨덴이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발전한 나라인 만큼, 현재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들의 복지정책은 모두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에서만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즉 경제성장에 저해가 되는 보편적 복지는 줄이되, 취약 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확대하고 시장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처한 현실에 기초해 우리가 맞이할 수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이 책은 선진 복지국가들이 지닌 딜레마를 넘어 우리도 우리 자신만의 새로운 사회 모델을 구축해야 함을 강조한다.

 

 

 스웨덴은 양성 평등이 잘 실현되어 있다. 여성도 군대에 간다. 직장 문화도 수평적이고 연공서열도 없다. 실질적인 소득도 비교적 평등하다. 학력에 따른 소득차도 크지 않다. 그래서 굳이 대학에 가려고 경쟁하지도 않는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대학진학률이 제자리다. 이렇듯 표면적으로 이상적인 평등 사회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모습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자산불평등이 심각하다. 스웨덴에서 10억달러 이상 부자는 31명이다. 인구가 5배인 한국(28명)보다 더 많다. 그들이 소유한 자산 규모는 이 나라 연간 GDP(국내총생산)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최상위 계층이 부를 독점하고 상속세·증여세·부유세 등이 폐지된 탓에, 부의 집중과 대물림이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소득세 중과로 소득 평준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반면, 자산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또한 스웨덴은 기업친화적인 나라다. 대표적인 것이 차등의결권을 통한 경영권 보장이다. 1주당 최대 1000배의 차등의결권이 허용된다. 또한 공익재단을 통한 세금 회피와 승계가 용인되어 왔다. 이제는 상속세·증여세마저 폐지되고 경영권까지 확실하게 보장된 상태다. 승계를 위해 굳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편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기업친화적 정책을 통한 경제 활력 유지 및 완전 고용 달성이 북유럽식 복지의 절박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역이든 은퇴자든 빠듯하게 살아간다. 실질적 가처분소득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주거비와 물가는 비싸다. 그나마 청교도적인 생활태도가 이런 빡빡한 삶을 감내하게 해준다. 그들은 검소하고, 과시적 소비를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주택 투기와 도박이 유행한다. 이렇듯 국가는 튼실해 보여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쪼들리며 산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 ‘행복한 국가의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다.

 일각에서는 복지가 성장을 견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웨덴의 경우를 보더라도 성장의 과실을 이용하여 복지를 구축했다. 지금도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얻는 경제적 활력으로 복지를 유지하고 그 부작용을 상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부자나 기업에 대한 과세는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반면 일반 국민에게는 예외 없는 과세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보편적 중과세를 통해 막대한 복지 재원을 조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