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장편소설 『팔월의 빛 (Light in August) 』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의 장편소설로 1932년 발표되었다. <8월의 양광>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포크너는 ‘팔월의 빛’이라는 제목이 낯선 시골길을 걸어가는 임신한 젊은 여자 리나를 가리키는 것임을 밝힌 바 있는데,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리나가 바로 빛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조 크리스마스, 리나 글로브, 하이타워의 세 가지 플롯으로 구성된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1장에서는 리나, 2장은 조, 3장은 하이타워가 소개된다. 이어서 소설이 전개되면서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앞의 세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다가, 19장에서 조, 20장 하이타워, 21장 리나를 중심에 두고 결말이 제시되는 형식이다.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세 가지 플롯 역시 어느 하나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안에서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교차하며 공존한다.
포크너는 이 같은 복합 서사를 통해 다양한 인간 삶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양상을 형상화했다. 포크너의 소설에서 이런 가능성과 희망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포크너는 리나라는 긍정의 이미지를 소설 앞과 뒤에 배치함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정으로, 점철된 삶 안에서 어둠을 빛으로 이끄는 밝고 평화로운 세계, 긍정의 삶을 말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농촌 마을이다. 이야기는 여러 등장인물의 삶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전개된다. 7월 중순의 어느 날, 임신한 주인공 리나 글로브가 아이의 아버지 조 크리스마를 찾아 앨라배마를 떠나 미시시피주의 제퍼슨 시에 도착한다.
또 다른 주인공 조 크리스마스는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가진 인물이다. 조는 자신의 인종적 배경(백인과 흑인 혼혈)에 대한 의문 속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조는 여러 보호 시설을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는 조앤나 버든이라는 여성과 복잡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결국 조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살인사건을 일으킨 후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버린다.
리나 그로브는 임신한 상태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난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여정은 남부의 다양한 인물들과의 만남을 통해 펼쳐지며, 그 과정에서 리나의 순수하고 굳건한 의지가 드러나게 된다. 리나는 도망간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그 아이 아버지 조 크리스마스는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아이의 아버지는 겉모습은 백인이지만 흑인의 피가 섞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리나는 아이를 낳은 자신을 보고도 조 크리스마스가 다시 도망을 가버리는 상황에서도, 거친 물살에 몸을 맡기듯 침착하게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인다. 리나의 아이가 탄생하는 날, 조는 거세당한 끝에 처형된다. 리나는 아이의 아버지를 찾는 여정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게 되고, 게일 목사는 과거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새 출발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난다.
게일 하이타워 목사는 제퍼슨 마을에서 오랜 시간 동안 목회 활동을 해온 이로, 그의 과거와 가족의 과거는 항상 그에게는 콤플렉스이다. 게일도 남북 전쟁에 참전한 조부의 영웅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과거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아내를 정신 이상자로 만들어 자살하게 한 비극적 인물이다. 그는 과거 스캔들로 인해 교회를 떠나야 했기에 자기 내면과 과거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게일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소속감과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준다. 작품 속 리나의 모습은 인간성 본질의 선함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리나의 출산은 이를 도운 게일에게 뜨거운 승리감을 느끼게 해 삶을 긍정적으로 변하게 만든다. 이야기는 조가 조앤나 버든의 살해 혐의로 쫓기는 동안 극도의 긴장감을 연출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고 만다. 이후 리나는 중년남자의 사랑을 얻어 그곳을 떠난다. 조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그려내며 희망을 선사한다.
“붉은색의 고운 흙이 덮인 길은 이미 기울기 시작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언덕 쪽으로 이어져 있다. ‘그래, 저 정도 언덕은 문제없어.’ 그는 생각한다. ‘언덕쯤이야. 사람이 견뎌낼 수 있지.’ 지난 7년 동안이나 친숙했던 언덕은 평화롭고 조용하다. ‘사람이란 무슨 일이든 견딜 수 있는 것 같군. 하기야 사람은 전혀 해보지 않은 일조차 견딜 수 있지. 사람은 견딜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어. 소리 내어 엉엉 울 수 있는 상황도 능히 참을 수 있지.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견딜 수 있어. 뒤를 돌아다보든 아니든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는 것을 알 때는 특히 그렇지.’” - 본문에서
포크너가 작가로서의 성숙기에 접어드는 시점에 쓰인 『팔월의 빛』은 화자나 시간이 뒤엉켜 있는 복잡한 서사 구조에서 온 난해함 때문에 특히 비평가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그러나 그만큼 포크너만의 실험적인 소설 기법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국 남부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겉모습은 백인이지만 흑인의 피가 섞여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조 크리스마스, 과거 안에 갇혀 아내와 정상적인 관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아내를 자살로 몰고 가는 게일 목사, 임신한 몸으로 집을 떠나 아이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리나 글로브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삶을 통해, 남부 사회의 인종 차별주의, 종교적 절대주의, 억압되고 왜곡된 성 등을 이야기하면서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삶의 비극성만큼이나 그것을 극복해낼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인간과 삶에 대해 깊이 통찰하며 실험적 기법으로 그 비극성과 희망을 교차시킨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소외와 정체성 상실로 고통받는 비극적 세계 속에서도 포크너가 내미는 한 줄기 ‘팔월의 빛’을 경험할 수 있다.
♣
작품은 7월 중순의 어느 날 임신한 리나가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 앨라배마를 떠나 미시시피주의 제퍼슨 시에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일어나는 9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사 진행 시간과 관계없이 이야기 진행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넘나들어 방대한 시간을 다루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는 삼인칭 화자가 사라지고 등장인물의 말이 직접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소설이 전개되기도 한다. 또 모든 등장인물 각각이 등장하는 분량과 관계없이 뚜렷하고 특징적인 인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 『팔월의 빛』은 엄밀히 따지면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등장인물 모두는 다차원적 성격을 지니는데 각각의 인물은 주체이자 대상이 되고, 관찰자이자 관찰당하는 자이며, 자기학대를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고통받기도 하며, 악인이자 희생자이다. 포크너는 일면적으로만 다룰 수 없는 인간의 내면과 삶의 깊이를 그려내기 위해 다층적인 서사·서술 방식, 다차원적 인물을 이용한다.
포크너 자신도 “조가 자신이 흑인인지 백인인지 모르는 상황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극적 상황”이라고 말했듯이, 조 크리스마스라는 인물은 이름과는 모순되게 비극적 삶을 산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남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흑과 백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러나 겉모습은 백인이지만 불확실한 출생 배경과 주변인들의 영향으로 자신이 흑인일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과 두려움을 안고 사는 조는 스스로 정체성을 상실하고 어느 쪽으로도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남부 백인들의 인종 차별주의와 양부모의 광적인 종교적 절대주의는 조의 자아 안의 소외의식이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삶을 그려내는 가운데 포크너는 한 줄기 ‘빛’을 등장시킨다. 포크너는 ‘팔월의 빛’이라는 제목이 낯선 시골길을 걸어가는 임신한 젊은 여자 리나를 가리키는 것임을 밝힌 바 있는데,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리나가 바로 빛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포크너는 리나라는 긍정의 이미지를 소설 앞과 뒤에 배치함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정으로, 점철된 삶 안에서 어둠을 빛으로 이끄는 밝고 평화로운 세계, 긍정의 삶 또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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