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백정.白丁)'의 어원
평안도 사람들이 몹시 못마땅해 하면서 뱉는 말에 “썅 배땅놈의 쌔끼”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의 ‘배땅놈’이 '백장놈‘이라는 말이다. 백장은 천민계급 중의 천민계급으로 쳐 온 것이 전대(前代)의 우리네 사회였다. 나이 지긋한 이들로서 지금도 푸주에 가서는,
“거, 등심으로 한 근 주구료!”
정도로 말을 얼버무리는 버릇들이 있다. 쉽게 경어를 안 쓰려 드는 관습이다.
‘백장’은 지금의 표준말. 옛 책에는 ‘백정(白丁)’이라는 한자로 나온다. 또 ‘백장’이 표준말이라고는 해도 ‘백정’이라는 말이 안 쓰이는 것도 아니다. 백장은 백정(白丁)이라는 한자표기 외에 포정(庖丁)ㆍ도한(屠漢)ㆍ도우탄(屠牛坦)ㆍ포노(庖奴)ㆍ도척(刀尺)ㆍ피장(皮匠)ㆍ피한(皮漢)ㆍ유기장(柳器匠) 같은 경멸하는 명칭들이 있어 왔다. 이무튼 우리의 지금 ‘백장’은 ‘백정(白丁)’ 쪽에서 백뎡 → 백정 → 백장으로 온 것인지, 전부터 백장(혹은 백정)이라는 말이 있어서 한자로 ‘白丁’이라 표기한 것인지 불분명한 채, ‘白丁’ 쪽에서 말밑을 따져들어 가고 있는 경향이다.
‘백(白)’자에는 희고 순결하다는 뜻이 있지만, 그와 함께 관직 없고 천하다는 뜻이 있어서 가난한 집을 일러서는 ‘백옥(白屋)이라 하는 외에도 관직이 없는 사람을 일러서는 '백두(白頭)' 혹은 '백면서생(白面書生)' 같은 말로 표현해 왔다. 한편, '정(丁)'자도 '사나이'의 뜻이긴 하지만, 대개는 잡일에 종사하는(그러니까 옛 개념으로는 벼슬이 없는 노동자) 사람을 일러 쓰는 것이어서, '병정(兵丁)'에 '원정(園丁)' 같이 쓰이는 글자였으니, 결코 두 자가 다 달가운 뜻을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백정(白丁)’은 우리와 같이 특수계급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평민 일반을 일러 쓰는 말이어서 '백민(白民)'이나 '백신(白身)'과 같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는 그렇고, 어떤 계급을 정하여 그를 멸시하던 일은 우리 조상의 환영할 만한 버릇이 아니었으니, 오늘날의 서양 사람으로, 우리였다면, '장인(匠人: 장이 → 쟁이)'에 해당할 대장장이(blacksmith)ㆍ목수(carpenter)를 비롯하여 고기잡이(fisher)ㆍ양복장이(tailor) 같은 걸 내놓고 성에다 쓰고, 그러고도 행세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할 것이다.
엎고, 뒤집고, 되치고, 그러고도 되엎은 우리네 사회였으니, 양반입네 뽐내는 사람이 지난날의 상놈이요, 상놈으로 굽실거리는 천민은 지난날의 호족(豪族)일 수도 있었던 것은, 불교의 업보론 쯤으로 해석해 볼 일이지만, 기왕 말밑을 캐 본 김이니, 그 내력도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백장의 기원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이 있어온 모양이다. 거룩하신 단군 할아버님의 태자인 하우(夏禹)가 도산민국회(塗山萬國會)에 참석하였을 때 수행한 사람들에게 임시로 임무를 맡겼는데, 그 중에 소 따위 짐승을 잡게 한 자의 자손이 나중에 백장이 되었다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기자(箕子)가 8조의 법을 펼 때 범죄인을 천민으로 내리깎았는데, 그들이 나중에 백장이 되었다는 설, 혹은 고려 말에 절조를 지켜 이성계에 항복 안 한 신하들이 두문동에 숨어 살았던 것까진 좋았는데, 그 자손이 벼슬길엔 나갈 수 없고, 먹긴 해야겠고 해서 종사한 직업이 백장이었다느니,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된 일본 사람 자손이 되었다느니, 인도 천민계급이 이주하여 잡은 직업, 티베트 이주민설에 달탄(韃靼) 이주민설 등 갖가지이다.
그런 가운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에,
[揚水尺者 木柳器匠遺種 其種落素無貫籍 好逐水草 遷徒無常 唯事畋獵 販粥柳器
水尺之名 盖本於此 今庖奴名曰刀尺 庖丁必治柳器 皆古俗之遺傳者]
(양수척은 본디 유기장(柳器匠)의 유족으로 그 종족이 드물고 관적(貫籍)이 없는데, 수초(水草)를 따라 옮아다님이 무상(無常)하며, 때로는 전렵(畋獵)에 종사하고, 때로는 유세공(柳細工)을 팔고 다녔다. 수척이란 이름은 여기 연유한다. 지금 포노(庖奴) 이름이 도척(刀尺)인데, 포정은 반드시 유기(柳器)를 만든다. 모두가 고속(古俗)이 유전(遺傳)한 것이다.)
라 한 것은 다른 야사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어서 백장은 양수척(揚水尺)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즉 달탄족의 일종인 '양수척‘이 고려 때 우리나라로 이주해 살게 되었고, 문화 정도가 낮아 그들의 부녀자는 매춘까지 하므로 우리에게 천시당하였는데, 고려 이의민(李義旼)의 아들 지영(至榮)이 이들을 기적(妓籍)에 편입, 사내를 낳으면 종으로, 계집애는 기생으로 삼는 등, 일종의 특수생활을 하게 되면서 백장의 일도 맡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불교 숭상의 고려에서 살생에의 종사는 그 자체가 벌써 백안시당할 소지가 되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는 반드시 양수척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항복한 일본 사람이라든지, 거란족 같은 종족이 일반민에 이단시되면서 혼합하여 된 자도 있을 것이며, 명문귀족의 자제로도 화를 면하기 위해 된 자도 있지 않았던가 생각되는데, 이를테면 조선 왕조의 문신 이장곤이 연산군에게 죄를 얻어서 상주골 백장 마을에 도주, 백장의 사위가 되었다가 중종반정 후에 복관되면서 그 아내(백장의 딸)가 정경부인이 된 따위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백정년 가마 타고 모퉁이 도는 격’ 같은 속담은 없어져야 하겠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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