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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사나이'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6. 1.

 

'사나이'의 어원

 

 

사나이는 계집의 반대말이다.

 “사내자식이 돼 가지고 그게 무슨 짓인가.”

 “사나이답게 행동해라.”

 “사내가 한 번 말을 했으면 그대로 할 일이지.”

 사나이는, 계집의 대어(對語)로서뿐만 아니라, 씩씩하고, 불의를 모르는 용기의 상징처럼 되어온 말이기도 하다.

 그 사나이가 요즘 사회로 봐서는 어째 계집에게 슬슬 꿀린다 싶어지는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계집의 눈물에 무릎을 꿇는 것은 사나이의 예로부터의 사나이다운 측면이 아니었던 것도 아니지만, 요새 이르러서는 계집의 힘 앞에 무릎을 꿇는 사나이도 적다고는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듯싶다. 애도 낳지 말자고 우겨대는, 이른바 ‘여성상위시대’의 ‘겉멋 여권론’은 잘못 받아들인 민주주의의 때문이라고 개탄하는 이를 보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리 되면 ‘사나이’라는 그 말이 무색해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사나이는 ‘산’과 ‘아해’가 합해져서 된 말이다. ‘산’은 <훈몽자회>에 ‘丁’자를 일러 ‘산덩’이라 했듯이 씩씩하고 꿋꿋한 남아를 이르는 말이었다. 말하자면 장정(壯丁)이었다, 국토방위의 대업을 맡는 이가 이 사나이, 장정이 아닌가.

 학자들에 의하면, 신라시대 '화랑'은 곧 '꽃 같은 사나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말이라는 것이다. 조선 왕조로 내려와 '화랑이'라는 것이 있어, 그것은 광대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고운 옷을 입고 가무ㆍ행락을 했던 데서, 신라의 화랑도 고운 옷을 입고 있었던 것과 견주어 '말의 변천’으로 설명하련은 이도 있었지만, 나중에 가서야 어찌 변했든 ‘화랑’이라는 말의 시작은 역시 ‘옷을 곱게 입었던 꽃 같은 사나이’라는 데서 말줄기를 찾음이 옳다고 할 것이다.

 하여간 ‘화랑(花郞)’을 ‘국선(國仙)’이라 적기도 했던 것인데, 이 경우의 ‘국선(國仙)’도 한자의 뜻으로 보아 그럴듯한 외에, 사실은 ‘곶손’을 적기 위한 한자의 차용이었다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곶산’은 ‘꽃사나이’, 결국 화랑(花郞)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라 때 유수한 집안의 자제들로 구성되었던 화랑(花郞)은 어느 모로 보나 ‘꽃사나이’들이었음에 틀림이 없는 일이다. ‘간나해(계집)’들은 이런 믿음직스러운 ‘산아해’들을 싸움터에 보내고 애타는 마음으로 승전고를 울리는 개선의 날을 기다렸던 것이리라.

 사나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생각해 볼 말이 있다. ‘사냥’이라는 말이다. <훈몽자회>에도 ‘엽(獵)’자를 일러 ‘산행할 렵’이라 한 외에, <용비어천가> 125장에는 ‘낙수(洛水)에 산행(山行) 가 이셔’ 같은 말이 나와, 우리의 ‘사냥’이라는 말은 옴짝달싹할 수 없이 ‘산행(山行)’에서 말밑(語源)을 구할 수밖에 없이 돼 있다.

 그러나 옛날 분들이 ‘산행(山行)’이라는 전제 관념 아래서 아예 ‘산행(山行)’이라 적었던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는 없는 일일까. 여항(閭巷)에서는 사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도, 적기를 ‘산행(山行)’이라고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반드시 억지일 수만은 없다.

 사냥이야 물론 ‘산으로 가는 것(山行)’임에 틀림은 없다 하겠으나, 따져 생각한다면 순수한 우리말로서의 ‘산양’ 그것이나 아니었을 것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산’은 사나이요, ‘양’은 예나 이제나 모양인 것이매, ‘사나이 모양’이 곧 ‘사냥’일 수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이다. 사냥이야말로 가장 ‘사나이다운 짓’ 일 수 있었을 고대사회가 아니었을 것인가. 때로는 맹수와의 목숨을 건 사냥도 있었을 지난날이라고 한다면, 사냥 그것에서 사나이의 참모습, 씩씩하고 굳건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나 아닐까. 총으로도 목숨이 위험한 현대의 사냥이라 할 때 옛날의 사냥이 얼마나 사나이다워야 했던 것일까를 생각해 보면서의 이야기이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