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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아빠'의 어원

by 언덕에서 2023. 5. 18.

 

 

 

'아빠'의 어원

 

‘아빠’는 어린애가 그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면서 요즈음은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는 말로도 되어 버렸다. 물론 아내가 남편을 이르면서는 그 위에 ‘○○’라는 아이 이름이 생략된 형태라고는 해도 그런대로 자연스러운 호칭의 인상을 주고는 있다. 특히 젊은 층의 부부 사이에서는 아주 일반화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ㅁ’이나 ‘ㅂ’이나 다 입술을 끼고 소리가 난다. 어린애가 차츰 자라나면서 소리내는 것을 보면, ‘ㅁ’ 다음에는 ‘ㅂ’ 소리임을 알게 되는데, 이는 반드시 언어학자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유심히 관찰할 때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입을 오므린 채 코를 원용하는 것이 좀 쉬운 ‘ㅁ’이요, 그것을 터칠(破裂) 때 내는 소리가 ‘ㅂ’이다, 그리고 그 ‘ㅂ’을 내기 위한 예비적인 입모습으로서의 ‘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ㅁ’의 경우의 ‘암’과 비슷한 일이기도 하다.

 ‘압’ - 그것은 우리 옛말에서 외경의 대상이었다. ‘암’의 여성적임에 대해서 ‘압’은 남성적인 것이기도 했다. 자애와 생명의 우언천인 ‘암’에 대해서 ‘압’은 벌써 불가사의한 외부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압’은 근엄한 존재로서의 아버지였고, ‘옵’은 아버지와 같은 남성으로서의 형제였다. ‘압’에 ‘어지’라는 밭가지가 붙어 된 ‘아버지’였으며, 그 '압‘에 부름토씨(호격조사) ’아‘가 붙어 ’압아‘하고 불러서 시작된 ‘아바 → 아빠’였고, 그 ‘옵’에 ‘아’를 붙여 ‘옵아’ 하고 불러서 시작된 ‘오바→ 오빠’였다고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엄마’가 '엄'에 '아'가 붙어서 이루어졌던 것과 같은 출발임을 보여준다. 처음엔 부르는 데만 쓰이다가 차츰 아주 이름씨(명사)로 되어갔던 것이라 생각하게 해 준다.

 지금도 지방으로 내려가면, 보채며 우는 아이에게 겁을 줄 양으로 하는 말에, “어비야, 저기 어비 온다.”가 있다. ‘업’이라는 것은 무언가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 ‘어비’가 <용비어천가>로 가면, ‘아비’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것도 볼 수 있지만, 고대에 있어서의 ‘업’은 샤머니즘과 연관된 존재로서의 낱말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지금도 '업'이라 하면 여전히 불가사의를 안고 쓰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는 업구렁이가 있다고 믿는 우리 조상들이었다. 그 업구렁이가 집안 어디엔가 칭칭 도시리고 앉아서 길흉화복에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업동이’도 반드시 우연히 타율적으로 얻어서 기르게 되는 아이뿐 아니라, 같은 형제인데도 그 아이를 낳고서부터 살림이 늘고 재산이 붇고 할 때 붙이는 이름이기도 했다.

 ‘아빠’가 이렇게 말의 줄기로 따져볼 때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데, 그리고 우리의 전통사회의 아빠란 그 말의 시작에 어울리게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는데, 세계적인 흐름을 타서인가, 점점 무력해져 가소 있는 것이 오늘날의 아빠들이기도 하다.

 ‘엄’에서 출발한 ‘어머나!’라는 느낌씨(감탄사)가 있어서의 이야기인데, 오늘날의 아빠들은 ‘아뿔싸!’ㆍ‘어뿔싸!’의 연속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아뿔싸’ㆍ‘어뿔싸’는 혹 ‘압’ㆍ‘업’이라는 무섭고 두려운 데서 출발된 느낌씨나 아닌 것인가 하는 생각도 안 드는 것이 아니다. 

 

- 박갑천 : <어원수필(語源隨筆)>(19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