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장편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Ardiente Pacien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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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소설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ármeta, 1940~ )의 장편소설로 1985년 발표되었다. 원제는 ‘불타는 인내(Ardiente Paciencia)’이다. 이 소설은 영화 「일 포스티노」로 제작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더욱 이름을 알렸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는 칠레의 민중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집배원 소년의 우정을 통해 네루다의 시 세계에 눈을 떠가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작가는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에는 대중에게 익숙한 투사로서의 네루다가 아니라 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집배원을 통해 일상의 빵처럼 친근하게 일깨우는 네루다가 등장한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시인과 집배원 마리오를 통해, 한 편의 시가 삶과 자연과 세계와 만나 마침내 새로운 삶과 사랑을 끌어내는 문학의 진실과 감동을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위대한 시인 네루다에게 바치는 헌사인 동시에 칠레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쿠데타가 발발한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스카르메타는 독자들에게 투쟁심보다 감동을 선사하려 했다는 점이 작품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후 이민이라는 가족사에 영감을 얻어 쓴 <시인의 결혼식>(1999)으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으며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 문학상], 이탈리아의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을 수상하였다. <나 반칙 안 했어>(1980)로 이탈리아의 ‘보카치오 국제 문학상’을 받은 바 있고 2002년에는 [괴테 훈장(문학 부분)]을 수상하였다. 2003년<승리의 춤>(2003)으로 스페인어권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플라네타 상]을 받았는데 이는 50여 년의 수상 역사에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는 세 번째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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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무명 저널리스트의 회고로 시작한다. 1970년대 초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는 그 마을의 가장 고명한 주민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젊은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있다. 아름다운 마을의 소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는 우체부에게 메타포를 가르쳐주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 있을 때나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군인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칠레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목숨을 잃고 네루다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네루다를 찾아와 그의 곁을 지킨다. 냉혹한 군부독재가 시작되자마자 마리오는 실종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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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르메타는 마리오의 개인적인 삶과 칠레에 엄습한 정치적 냉혹함 사이에서, 밝고 로맨틱한 사랑과 1973년 네루다와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 사이에서 절묘한 평행선을 만들어내었다. 스카르메타의 표현대로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바라는 투쟁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사랑과 시와 문학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노래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위대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하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썼다. 스카르메타는 말한다. “나는 늘 네루다에 관한 무엇인가 쓰고 싶었다. 1969년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미 영화도 찍고 싶었다. 유명하고 위대한 네루다가 아니라 내면적인 네루다, 따스함과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는 바닷가의 네루다를 작품 속에 담았으면 했다.” 스카르메타의 고백에 따르면, 그도 젊었을 때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처럼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 위해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뒤적거리곤 했다고 한다.
많은 문인이 그러했듯이 스카르메타도 네루다와 이슬라 네그라의 시적인 향기에 흠뻑 취한 작가였다. 그 자신이 고백하듯, 스카르메타는 결코 네루다의 지인들 축에 끼어보지도 못했고, 시인과 세대 차이도 분명히 느꼈으며, 문학을 통해 추구하는 바도 달랐다. 그러나 1985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발간하기까지 스카르메타는 같은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리고 라디오 극으로 만들 정도로 집념을 보였다. 그 까닭은 책 한 권 내본 적 없는 까마득한 후배 문인과도 유머를 섞어가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언제나 문인들을 자택에 불러 모아 파티를 열고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돌리는 네루다의 친근한 성격에 반했기 때문이다.
♣
스페인 내전 이래 반파시스트 운동에 참여하고, 공산당에 입당한 뒤 상원 의원으로서 정치 활동을 하였으며, 정치적 탄압 때문에 망명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회를 조망한 초유의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를 쓴 네루다에게 투사의 이미지가 고착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투사로서의 네루다를 찬양하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위대한 시인으로서의 네루다를 기리는 그 누구보다도 스카르메타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통해 더한 찬사를 던지고 있다.
집배원 마리오나 과부 같은 무지한 대중의 입에서 네루다의 시가 자연스럽게 흘러오게 함으로써 네루다가 칠레의 국민 시인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 독자들에게 알린 점만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좀 더 찬찬히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마리오가 시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정도로 네루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따분한 일상 혹은 평범한 삶을 시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준 네루다야말로 진정한 시인임을 시사한다.
이후 마리오는 시와 대중을 잇는 역할을 하게 되고 급기야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라는 말을 당당히 네루다에게 던짐으로써 네루다의 시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칠레인 전체의 것, 즉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네루다가 삶의 지표로 삼았던, 인간들끼리의 진정한 연대가 시 한 편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에서 작품은 절정에 달한다. 이 장면은 마리오의 아들이 태어나는 울음소리로 끝을 맺는다. 네루다의 시가 사랑의 씨앗을 뿌리더니 새 생명이라는 열매까지 맺었다는 설정이야말로 한 시인에게 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의일 것이다. 시가 문학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삶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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