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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윤혜신 문화비평서 『귀신과 트라우마』

by 언덕에서 2020. 5. 4.

 

 

 

윤혜신 문화비평서 귀신과 트라우마

 

 

 

 

 

국문학자인 윤혜신이 쓴 문화비평서로 2010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은 한국 고전문학 문집들인 '어우야담', '용재총화', '역옹패설', '강도몽유록' 등에 실린 귀신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적 틀을 통해 설명한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인 저자는 '원한에 대한 복수를 위해 나타난 귀신의 모습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하는 인간과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인간 역시 귀신을 통해 소통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 귀신과 트라우마귀신은 존재하는가?’란 물음에 질문의 대답을 좇아가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신서사에 관한 연구논문을 지속해서 발표한 저자는 한국고전 서사1 작품을 중심으로 귀신의 이모저모를 흥미진진하게 탐색하면서, 귀신의 이미지와 유형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저자는 한국 고전문학 텍스트를 소개하면서 그 대상을 텍스트에 등장하는 귀신들을 중심으로 '인간에 대한 파괴적 성향을 지닌 초월적 존재'거나, 그 시대 사람들이 ()’로 표현한 것을 대상으로 했다. 또한, 귀신은 '인간 정신과 관련된 현상'이라 전제하고, 정신분석학의 이론에 의해 근거와 명제는 라캉주의2를 기준으로 하고 프로이트를 보조적으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귀신은 늘어뜨린 머리,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배경 사이로 보이는 얼굴, 예쁘지만 싸늘한 시선과 소복 위로 점점이 뿌려진 피 얼룩, 손에는 칼이 들렸다.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귀신의 형태는 이러하지만, 옛날에는 달랐다. 역사와 함께 변하여 왔기 때문이다. 형태뿐만이 아니라 귀신의 범주에 들어가는 대상 또한 다양했다. 한국고전을 통틀어 귀신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시대에 따라 귀신이라는 실체가 인간의 환경에 의해 다양하게 상상됐음을 의미한다.

 고려 시대 이전에는 주로 자연신, 동물신들의 형태로 '신(神)''귀신'의 구분이 없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불교의 융성으로 선귀와 악귀가 구분되기 시작했고 사물귀3가 등장한다.

 조선 시대는 양대 전란의 영향으로 트라우마를 지닌 영혼,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을 품은 소복 입은 여자가 등장하고, 물괴가 등장한다. 죽고 싶지 않았던 죽음, 아무도 모르는 이름 없는 죽음, 분하고 원통하며 치욕스러운 기억, 묻히지 못한 시체. 주로 여자가 많았을 것이고 여자 중에서 젊은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은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귀신은 소복을 입고 출몰을 반복한다. 

  그러면 귀신은 왜 나타나는가? 서사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보인다.

 1. 파괴성 :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귀신.

 2. 보호와 감사 : 가족, 자손, 친척을 보호하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귀신.

 3. 트라우마 치유추구; 치유, 복수, 방황의 세 가지 성향을 보인다.

  저자는 특히 트라우마 치유추구를 귀신 서사에서 텍스트의 주된 형성 요소로 보고 있다. 전설의 고향을 떠올려 보자. 귀신 대부분은 자신의 시신 수습, 장례를 통하여 갈등을 해소한다(장례를 통해, 죽은 자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사회 속에서 살게 된다. 역설적인 생존이다(66쪽), 자기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라는 자극이며 실마리를 던지는 행동이다(71쪽), 죽어서 슬픈 것보다 진실을 알리지 못하는 상황, 즉 소통되지 않는 상황에 좌절하는 것이다(80쪽).)

  즉, 조선 시대의 귀신은 자신의 진실을 알리지 못한 소통의 좌절을 자기 죽음의 의미를 되살리는 장례를 통하여 해결하려 한다. 저자는 귀신 서사 텍스트를 만들어 내는 일은 트라우마에 대한 생존자 나름의 방어기제 구축법의 일종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소통의 문제는 근본적이다.

 

 

 

  그렇다면 현대에서 귀신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욕망의 도구로서 무모하게 발전되고 있는 신기술(New Tecnology)을 악귀와 비교하고 있다현대에서는 인간의 두려움이 욕망을 지나치게 키웠고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큰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귀신은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정서가 연약하거나 둔감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틈새를 침입하려고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신기술도 우리 생활의 틈새를 침입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또한, 귀신은 인격성을 기반으로 한, 착한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파괴적 성향을 지닌 초월적 존재이며 이 세 조건을 다 만족시키지 않아도 당대 사람들이 귀(鬼)로 표현한 대상이라고 규정하였다.

  저자는 귀신을 자연귀, 영혼, 악신, 사물귀, 트라우마를 지닌 영혼, 물괴 등 여섯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현대의 우리가 귀신을 연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트라우마를 지닌 영혼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귀신이 출현하는 배경과 이유로는 파괴, 보호와 감사, 트라우마 치유 추구(치유, 복수, 방황) 등을 들었다. 실로 모든 귀신의 출현 목적은 표면상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궁극적으로 인간을 통한 자기 존재감 확인, 라캉식으로 말하면, ‘존재에 대한 열정이라는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대 전란을 통해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이들이 많았다. 전란을 치른 후, 16세기의 작품에 전란에서 백성들의 절반이 창칼에 맞아 죽었다는 서술이 있다. 억울하게 죽은 백성은 말할 것없고 젊은 여성들은 겁탈 당했고, 끌려가거나 치욕을 당하기 전에 혹은 후에 자진해서 목숨을 끊었다. 그들이 현재 한국의 주된 귀신인 소복입고 머리를 푼 여자 귀신이 되지 않았을까? 저자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책을 읽고 나니 한밤중 귀신의 흐느낌을 듣더라도 '사람이면 나서고, 귀신이면 물러나라!'라는 정도의 객기는 당연하고, 이쁜 귀신이면 내게로 와서 무슨 사연인지 대화나 해보자라며 그녀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귀신을 쫓아낸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일까? 귀신이란, 귀신을 만나는 인간이 있어야만 귀신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귀신을 만나는 인간의 시선은 언제나 중요하다. 따라서 귀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은 어떠하며 그 스펙트럼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귀신을 보는 인간의 시각과 정서가 어떠한지가 중요하다. 저자는 묻는다. ‘당신 생각은 어떠한가?’

  그 음성은 귀신의 속삭임처럼 독자를 전율하게 한다. 여느 시선보다 인간이 이해와 소통의 시선으로 귀신을 응시할 때 인귀는 모두 원하는 것을 얻고 흔쾌히 자기가 속한 세계로 돌아갔다고 한다. 따라서 이해와 소통의 시선은 양쪽 모두 회생시키는 상생(相生)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생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진영논리에 파묻혀 서로를 죽이지 못해 난리인 21세기 난장판 한국이니까 그럴 수 있다.

 

  1.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음. [본문으로]
  2. 라캉은 언어가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치료법에 현대의 언어학, 철학, 시학에서처럼 언어에 대한 연구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주요업적은 프로이트 연구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는 20세기 후반기에 프랑스 작가들에 의해 발전된 구조언어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본문으로]
  3.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인데 특정 조건이나 상황에서 낯설게 느끼게 되자 그 사물에 인격이 가미되었고 사물귀로 상상되었다. 저자는 이런 귀신을 사물귀라고 이름 붙였는데 무신 이의민이 믿었던 목우 귀신이 그러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