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아리아스 수아레스(E. Arias Suarez) 단편소설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Envejecer)』

by 언덕에서 2020. 3. 2.

 


아리아스 수아레스(E. Arias Suarez) 단편소설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Envejecer)

 

 

 

콜롬비아 소설가 아리아스 수아레스(E. Arias Suarez, 1897~1958)의 단편소설로 1944년 소설집 <늙는다는 것과 나의 가장 유쾌한 이야기>에 게재되어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1996년 발간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권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소설의 제목인 ‘Envejecer’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늙어간다정도로 해석될 듯하다. 번역자 장선영1 교수는 제목을 소설 전체 이야기에 어울릴 수 있도록 늙어간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動詞) 단어인 원제(原題)'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으로 바꿔 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해당 작가에 관해 나름의 조사를 했으나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나 소개된 자료가 전혀 없었다아래의 작가 소개는 구글에서 찾은 스페인어 자료를 편집하여 필자가 임의로 번역했음 밝힌다.

  수아레스는 189725일 콜롬비아 아르메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치과학을 공부한 의사로 친구 산토스의 지원으로 프랑스에서 첫 작품 <영적인 이야기> (1928)를 출판했다. 이때 수아레스는 꼰스딴띠노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 단편집은 감성과 문학성이 풍부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간주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이후 그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다. 이번에는 콜롬비아 문학지에서 <세 명의 젊은 이야기꾼>이라는 주제 아래 그가 발표한 소설이었다. 2년 후인 1938년에는 에스꼴라가 편집한 단편소설 세 편으로 구성된 <열정의 쐐기풀>을 발표했고, 1944년에는 <늙어가는 것과 나의 유쾌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그간 출판되지 않은 작품과 기 발표된 단편 몇을 모아서 출판했는데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출판된 책이었다.  그가 사망한 후 20년이 지난 1980년, 출판사와 그의 미망인 간의 소송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던 소설 <검은 달 아래(Under the Black Moon)>를 출판했다. 이 소설은 1929년에 작가가 베네수엘라의 가이아나에 머무는 동안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후 콜롬비아 심리 소설의 초석으로 추앙되었다. 그는 신문사의 창립자 겸 임원이었고 스페인, 프랑스 및 이탈리아의 신문의 특파원으로도 일했다. 또한, 베네수엘라 발렌시아 치과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콜롬비아 소설가 아리아스 수아레스 (E. Arias Suarez, 1897~1958)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경은 1940년대의 남미 콜롬비아다. 집을 떠나 여행객으로 살았던 오십대의 중년 남자가 2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다. 주인공은 고향 거리 이곳저곳을 걸으며 감회에 젖는데 한 사십을 넘겼을 부인 하나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느낀다.

  메르세데스.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버린 여자는 주인공의 사촌 여동생으로 20년 전 정열을 다바쳐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러나 근친혼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모친의 반대로 둘은 결혼하지 못하고 낙심한 그는 고향을 떠났다. 이미 결혼한 메르세데스는 딸 하나, 아들 둘, 이렇게 삼 남매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육십을 넘긴 의학박사로 사업으로 크게 치부한 이였지만 거만한 이였다.

  집으로 초대받은 주인공은 그녀의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남편 로드리게스의 간곡한 청으로 그 집에서 얼마간 묵게 되고 부부의 딸인 미모의 처녀 로사리오를 만난다. 메르데세스의 가족은 처음 몇 주 동안은 주인공을 손님으로서 극진하게 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관심은 그에게서 멀어져 마침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20년 전의 메르데세스가 다시 나타난 듯한 눈부신 미모의 로사리오만이 온 정성과 친절을 다해 주인공 꼰스딴띠노를 변함없이 대한다. 젊은 날의 엄마를 꼭 닮은 로사리오(그야 딸이니 당연하다)는 황혼에 접어든 주인공의 인생에 빛을 비춰주는 사랑의 천사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데세스 가족에게 더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주인공은 그 집을 나오기로 한다. 로사리오는 떠나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을 껴안으면서 격하게 울음을 터뜨린다. , 하느님! 이미 늙은이가 된 처지에 이렇게 꽃다운 처녀로부터 사랑을 받게 해주시다니, 정말 해도 너무합니다.

 꼰스딴띠노는 그간 여행을 하면서 모은 귀중품을 로사리오에게 모두 증여한 후 그들의 집을  떠난다. 가는 길에 뒤를 돌아다보니 베란다에서 로사리오가 눈물의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찾아가본 곳이 바로 이 술집 자리였는데 지금 그 흔적은 하나도 안 남았고 대신 은행이 떡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거리를 쏘다니다가 나는 인디오 상점의 싸구려 물건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컷 보고나서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약 사십은 지났을 부인 하나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등 뒤로 느꼈다. 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대뜸 알아보았다. 그녀도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꼰스딴띠노!"

  "메르세데스!"

 그녀는 메르세데스였다. 나의 사촌 여동생 말이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이었다. 정말 온 정열과 영혼을 다 바쳐 사랑했었지……. 20년을 두고 잠시도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단 하나의 여인, 바로 나의 사촌 여동생인 메르세데스가 지금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오한을 느꼈다. 아마 얼굴이 파랗게 질렸던 모양이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 경황 중에서도 나는 20년 동안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가 어느 정도로 변했나 세밀히 관찰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메르세데스는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늙어버렸다.  - 본문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연인의 늙고 시든 얼굴에서 우리는 잔인한 세월의 흔적을 읽는다. 그때는 어쩌다 반짝 되살아나는 지난날의 아름다움조차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된다. 이 작품에서 늙은 귀향객의 쓸쓸한 감회는 먼저 옛 애인 메르세데스를 만난 일로 절정을 이룬다.

 

 

 로사리오가 울고 있는 동안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의 금빛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저 더도 말고 스무 살만 더 젊었어도……. 나는 로사리오를 위로하기 위해, 이 읍을 떠나지 않고 여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 달 치를 지불했으니까 그저 짐만 갖고 가면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듣자 로사리오는 진정이 되는지 울음을 그치고 짐 싸는 일을 도와주었다. 나는 짐꾸러미 하나를 로사리오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짐꾸러미는 아주 값나가는 것들만 들어 있으니 로사리오가 보관하고 있는 게 좋겠어. 내가 죽어버리면 그때는 로사리오가 영원히 간직해. (중략) 그런데 로사리오, 보석이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값있는 것은 오직 젊음과 아름다움뿐인 것 같아."     -  본문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옛사랑 메르세데스는 세월의 파괴력으로 추한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그녀의 딸은 젊었던 시절의 그녀 모습 그대로였다. 세월의 무정함을 깨우쳐주기라도 하는 듯 로사리오는 주인공을 위로한다. 그러나 그는 젊음을 돌이킬 수도 없고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돌이켜서는 안 된다. 

  (전략) 그러나 세월이 주인공에게 주는 더 큰 슬픔은 따로 있다. 바로 그런 옛 연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가해진 시간의 파괴력을 절감하는 일이다. 그것은 주로 옛 연인의 딸 로사리오를 통해 이루어진다.

  시간은 많은 것을 파괴하고 소멸시키지만 또한 생성하고 부활시킨다. 로사리오는 바로 그런 시간의 예상못한 선물이다. 그녀의 모습은 옛 연인이 되살아난 것처럼 아름답고 마음도 언제든 사랑으로 전환될 수 있을 만큼 다정하다.

  하지만 늙은 그에게는 이미 그 사랑을 이룰 기회가 남아 있지 않다. 늙음은 그에게 앞뒤없는 열정을 앗아간 대신 세월의 힘을 승인할 분별을 주었다. 옛사랑을 막은 것은 근친혼의 피해를 두려워하는 어머니였지만 이번에는 20년이 넘은 세월의 간극이 로사리오와 그 사이를 막고 있다. 그에게 남은 일은 그 불가능한 사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날처럼 다시 멀리 떠나는 것뿐이었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 337쪽에서 인용)

 

 

 

  1.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학 철문학부 졸업, 마드리드국립대학 문학박사, 한국번역문학상 수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 역임. 주요 번역서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