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단편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
중국 작가 루쉰(魯迅: 1881 ~1936)의 처녀 단편소설로 1918년 5월 [신청년] 지 4권 5호에 발표되었다. 제목은 고골의 작품 <광인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보이며 내용상으로는 러시아 소설가 가르신1의 영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 있다.
이 소설은 피해망상에 빠진 정신병자의 일기를 빌어 대담하게 중국의 봉건사회를 비판하여 봉건적 가족제도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유교 사상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禮敎)2를 공격, 아직 그 악풍에 물들지 않은 어린이를 구하라고 외친다. 아울러 중국의 봉건 제도와 가족제도를 지탱하는 유교의 위선과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삼켜 버리려고 하는 봉건 사회의 억압과 그 억압에 대항하고자 하는 소망, 나아가 암울한 사회 속에서 어린이는 구하라는 호소를 담은 작품이다.
여기서 루신이 말하는 ‘식인’은 단순히 식인행위라기 보다 유교사회의 해악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강(三綱)’, 즉 신하를 임금에게 아들을 아버지에게 처를 남편에게 묶는 매듭이 바로 식인의 거대 장치이며, 세상이 이러한 식인의 그물이 빽빽하게 얽혀진 사냥터라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적 억압 중 소설 속에서는 효제를 근본으로 삼은 가족제도가 특히 크게 드러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학 시절 아무개 씨 형제 중 한 명이 병이 났다는 소문을 듣고 가보니 그 아우가 병자였다. 그 형은 ‘나’에게 아우가 병상에 있을 때 쓴 일기 두 권을 보여주는데, 열람해보니 증세가 피해망상증임을 알 수 있었다.
30년 동안 완전히 암흑 속에서 지내온 광인은 달빛을 바라보고 그동안 자신이 혼미한 생활을 해왔음을 깨닫는다. 어느 정도 쾌차한 광인은 혼미 속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길거리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광인을 두렵게 한다. 광인은 광기 때문에 집으로 끌려와 감금당하고, 거리에서 만난 마을 사람들의 흉악한 얼굴과 눈빛, 그리고 늑대촌에서 식인한 이야기, 큰형이 글쓰기를 가르쳐주던 일들을 떠올리며 세상에 ‘식인’이 남아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광인은 역사책을 조사하며, 그 속에 ‘인의도덕’이라는 글자 사이로 ‘식인’이라는 글자가 빼곡함을 발견한다.
감금된 방에서 기억과 연구를 통해 식인의 역사를 확신한 광인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먹으려고 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 ‘식인사냥’의 주동자가 자신의 큰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광인은 사람들을 일깨워 악습을 없애고자 하고, 자신의 큰형을 먼저 일깨우려 한다. 광인은 인간이 식인에 대해 부끄러운 생각을 지니면 구원받을 수 있다며 ‘양심’에 호소하지만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다시 감금당한다.
다시 감금된 광인은 다섯 살 된 누이동생이 죽었을 때를 기억한다. 누이동생이 죽은 원인에 큰형이 있다는 사실과 식인을 부정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시던 어머니를 기억한 광인은 자신도 ‘식인’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닫는다. 광인은 그 사실에 절망하고 최후로 아직 식인하지 않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다.
(전략) 작가는 꼭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일은 식인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입장이다.인류 역사에서 식인의 풍습은 사라진 게 아니라 잠복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있다. 필요가 생기면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을뿐더러 지금도 형식을 달리하는 식인이 있다고 본다. 꼭 사람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죽음에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일은 식인이나 다름없다고 간주한다.
루쉰의 『광인일기』는 작중 피해망상증 환자의 입장을 빌어 위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소작인이 죽거나 말거나 소작료를 올려 자기들의 배만 채우는 지주들에게서뿐만 아니라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착취하는 봉건 구조 전체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식인풍습을 본다.
너무 비약적인 해석인지 모르지만 주인공이 지난 날 밟아버린 적이 있다는 '꾸지유(古久) 선생의 장부'란 것도 그것을 호도하는 유교적 윤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닌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9권 204쪽에서 인용)
이 작품은 광인의 수기형식을 빌어 봉건적 가족제도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유교 사상을 공격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잡아먹히지 않을까 하는 피해망상에 빠진 주인공은 옛날부터 인의(仁義) 도덕의 명목 밑에 사람이 잡아먹혔으며, 누이동생의 죽음은 형이 잡아먹었기 때문이고, 따라서 자기도 언제 잡아먹힐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도 언젠가는 사람을 잡아먹으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이 절망에서 사람을 잡아먹지 않은 어린이 외에는 구원해줄 사람이 없으니, ‘어린이를 구하라’고 외친다. 이 작품의 동기가 일반인의 생각 밖에서 나온 데다가 문체도 참신하였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
또한 이 작품은 사상적 내용에 있어서나, 새로운 구어체 문장을 새로 마련한 점에서나 유교에 대한 비판과 구어문 제창을 2개의 기둥으로 삼았던 문학혁명의 대표작으로, 루쉰뿐 아니라 중국 근대문학의 제 l작이 되었다. 뒤에 단편 소설집 <눌함>에 수록되었다.
민중에게 깨어나라고 계몽을 외치는 지식인 역시 기성세대이자 구세계 출신이기에 그가 부정하려는 세상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자각에서 오는 유죄 의식과 속죄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는 마비된 민중 역시 식인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라고 본다. 이렇듯 그가 확신한 민중의 노예성에 대한 비판 의식, 그리고 기존의 지배 사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청년과 어린이에 대한 기대 등이 농축된 작품이다 . 『광인일기』는 루쉰의 의식과 루쉰 문학의 개성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작품으로 유교에 대한 비판과 구어체 제창을 중심으로 한 문학혁명의 대표작이다.
- 19세기말 러시아 단편문학의 유행을 선도한 러시아의 단편작가. 부유한 지주집안 출신으로 아버지는 장교였다. 20대 초반에 접어들 무렵 러시아 - 투르크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의무감을 느껴서인지 청년다운 평화주의를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다. 첫 소설 〈4일간 Chetyre dnya〉(1877)에서 부상당한 한 군인의 곤경을 묘사했는데, 4일간은 부상당한 주인공이 전쟁터에 버려져 있던 기간을 말한다. 역시 전쟁 피해자를 주제로 삼은 〈아주 짧은 소설〉은 어느 부상당한 군인이 고향에 돌아와서도 육체적 상처의 후유증으로 정신적 위기에 빠진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가장 유명한 작품 〈붉은 꽃 Krasny tsvetok〉(1883)은 한 미친 사람이 세상의 모든 악이 담겼다고 믿는 꽃 한 송이를 망가뜨린 뒤 자신도 죽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실제로 그 비슷한 망상에 사로잡혀 계단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본문으로]
- 예의에 관한 가르침 [본문으로]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손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 (0) | 2019.11.25 |
---|---|
헤밍웨이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雪)(The Snow of Kilimanjaro)』 (0) | 2019.11.18 |
헤르만 헤세 단편소설 『청춘은 아름다워라(Schön ist die jugend)』 (0) | 2019.11.04 |
알퐁스 도데 단편소설 『별(Les Etoile)』 (0) | 2019.10.28 |
빅토르 위고 단편소설 『가난한 사람들(Les Pauvre Gens)』 (0) | 2019.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