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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헤르만 헤세 중편소설 『크눌프(Knulp)』

by 언덕에서 2019. 5. 24.

 

헤르만 헤세 중편소설 『크눌프(Knulp)』 

 

독일 소설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의 단편소설로 1915년 출간되었다. 작품의 부제 크눌프 삶의 세 이야기(Drei Geschichten aus dem Leben Knulps)’처럼 ‘초’,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이라는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고향인 남독일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들은 예시적 상황이나 다양한 관점을 통해 방랑자 크눌프의 삶과 성격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크눌프에는 배신당한 사랑의 상처, 어린 아들과의 생이별의 아픔,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주인공 크눌프에 관해 헤세는 1935년 어느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크눌프 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 않지만 해롭지도 않습니다.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해롭지요. [...]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크눌프'는 헤세의 다른 작품 "싯다르타", "페터 카멘친트", "데미안", “지와 사랑등의 등장인물과 비슷하게 진실을 찾아 일생을 떠돌아다닌 한 인물의 평전이다. 크눌프의 인생은 세속적으로 매우 불쌍한 것이었지만, 그의 방랑은 거짓 세계에 대한 반란과 항거이다

 크눌프는 죽기 전, 마지막 신과 대화에서 '모든 것이 되어야 할 대로 되었습니다.'고 하며 죽음으로써 위선과 허위에 타협하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일생에 만족해한다신 또한, '그대는 나의 아들이요내 동생이며 나의 분신'이라고 하여 그의 방랑의 삶이 진실을 향한 구도적 삶이었음을 인정한다.

 이 작품은 "초"(1900),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1907), "종말"(1914)의 세 편을 함께 묶은 중편 연작 소설이다. 인생의 구속에서 삶을 동경하는 독일 낭만주의의 전통 속에서 쓴 작품으로서, 주인공 크눌프 삶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헤세의 다른 작품들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크눌프 역시 철저히 자신의 자유를 갈구하는 인물이다. 헤세는 194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 ‘초’:

 2월의 음습한 날씨에 병원에서 갓 퇴원한 크눌프는 피혁공 친구 로트푸스 집에서 며칠 동안 머문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크눌프는 미남에다 고상하고, 교양 있고, 감수성이 풍부한 인물이다. 피혁공(무두장이) 집의 속물적인 분위기에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를 불어넣고, 피혁공 부인의 육체적 유혹을 물리치고 그 대신에 이웃의 순진한 처녀와 무도회에서 춤을 즐긴다. 크눌프는 봄을 만끽하며 방랑을 떠난다.

 두 번째 이야기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어느 여름, 화자는 방랑길에 크눌프와 동행하면서 크눌프가 혼자 방랑의 길을 나선 이유를 듣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과 친구들에게 배신 당해 크게 상처받은 크눌프는 평범한 삶의 길에서 이탈하여 허무적이고 체념적인 생의 철학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어느 날 아침, 아무 말 없이 크눌프가 떠난 것을 알게 된 화자는 크눌프가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깨닫게 된다.

 세 번째 이야기 종말’:

 크눌프의 마지막 삶이 묘사된다. 쇠약해지고 나이가 든 크눌프는 고향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도중에 만난 크눌프 친구인 의사는 크눌프의 병색을 알아채고 요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의사 친구와의 대화에서 크눌프의 시민적 삶이 어떻게 좌초되었는지 자세한 전모가 밝혀진다. 고향에 도착한 크눌프는 젊은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곳들을 헤매고 다니고, 첫눈이 내리는 날 신과 나눈 환각적 대화에서 자신의 운명과 삶과 화해하며 숨을 거둔다.

 

  

 

 애정도 우정도 가족의 인간관계도 모두 그에게는 속박의 상징이어서 그는 이 모든 것을 떠나 자연 속에서가끔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떠돌아다닌다이러한 자유는 역으로 시민적인 행복이나 가족의 안온함을 포기한 데서 연유한 것이어서주인공이 인생을 마감할 무렵이면 쓸쓸하게 마련이다하지만 헤세는 신과의 합일(合一)이라는 설정을 통해 그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자유분방한 영혼을 소유한 크눌프에도 세월은 비껴가지 못했고, 그는 병을 얻고, 신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화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만큼 다양한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고, 책임질 일 없는 무의미한 크눌프의 삶일지라도 신의 눈에서, 품에서 보면 하나의 의미를 지닌 삶이었다. 일견 평범한 이들의 눈에는 그저 무위도식하며 방탕한 일생을 보낸 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설사 크눌프의 삶이 한 치의 가치도 없을 만큼 하찮게 보일지라도 그가 살아오는 동안 타인에게 주었던 사랑, , 웃음 등은 결코 하찮음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사는 방법이었고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전략) 성장소설로도 크눌프는 한 훌륭한 전범이 된다. 이 머무를 수 없었던 영혼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궤적은 흔하지는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삶의 한 양태가 된다. 어떤 사람은 그 흔치 않은 삶의 양태가 기껏 소년의 상처받은 첫사랑에서 결정되는 것을 지나친 감상이거나 과장으로 여겨 못마땅해하지만 실로 우리 삶이 그렇게 엄숙하고 진지한 것이던가. 모든 결정이 언제나 심각하고 무게 있는 원인과 신중한 판단으로만 이뤄지던가.

  방랑을 다룬 소설로도 귀향소설로도 크눌프는 한 백미를 보여 준다. 그 본질이 허망과 슬픔이란 점에서 방랑과 아름다움은 유사어임을 헤세는 꿰뚫어 보고 있다. 거기다가 크눌프의 귀향담은 판이한 고향과 경험을 가진 사람까지도 가슴 저리게 할 만큼 시간의 파괴력과 그 불가회성을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눌프죽음의 미학이란 주제 아래 묶은 것은 크눌프가 신과 더불어 삶을 문답하고 있는 구절의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삶의 성패에 관한 최종심을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찾고 어떤 사람은 삶 자체에서 구한다. 그런데 헤세는 죽음을 삶의 성패에 대한 마지막 재판정으로 쓰고 있다. 그 선고에 동의하든 안 하든 죽음에 대한 그의 독특한 태도는 눈여겨 보아 둘 만하다.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159~160쪽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