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누이 전설
'여우누이 전설'은 딸로 태어나 가족을 해친 여우를 오빠가 물리쳤다는 이야기로 전국에 걸쳐 퍼져 있는 설화다. 이 설화는 딸로 태어나 집안을 망치는 여우누이와 그 누이의 정체를 알고 물리치려는 아들의 갈등이 주축이 되는 남매 대결의 서사이다. 여우누이를 물리치는 아들의 행적은 영웅신화의 주인공처럼 입사식1담화 구조를 보여 준다.
<여우누이>는 변신설화 중에서도 독특한 인물 형상과 서사구조를 보여 준다. <여우누이>에는 변신 능력과 괴력을 가졌으나 고정된 인물형인 누이와 인식 능력을 통해 변모하고 성장하는 인물형인 오빠가 등장한다. 남매 대결은 처음 누이의 절대 우위에서 시작되지만, 점차 변모하고 성장하는 오빠의 승리로 귀결된다. 이러한 인물 형상은 자연적 혼돈을 극복하고 인간 중심의 문화적 질서를 재편하는 문화 영웅의 면모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옛날 어느 부부가 아들은 여럿 두었으나 딸이 없어서 딸 낳기를 간절히 원하다가 산신에게 기도하여 예쁜 딸을 낳았다. 딸이 자라난 후, 어느 날부터인가 날마다 집안의 가축이 죽어 나갔다.
이상하게 여긴 부모가 아들들에게 이유를 알아보게 했다. 큰아들이 지켜보니, 한밤중에 누이동생이 소의 항문에 기름을 칠한 손을 집어넣어 간을 빼 먹으니 소가 죽어 넘어졌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여동생이 그랬다는 소리를 못하고 얼버무렸다. 다음날은 둘째 아들에게 지키라고 했으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결국 막내아들에게 지켜보라고 했다. 막내아들은 아버지에게 누이동생이 한 것을 그대로 말했지만 아버지는 누이동생을 모함한다며 오히려 아들을 집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아들은 다른 곳에서 결혼하여 살았다. 세월이 많이 흐르자 고향집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진 아들이 집에 가 보겠다고 하니 그의 아내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그가 한사코 가려고 하자 아내는 마지못해 병 세 개와 천리마를 내주면서 위급한 상황이 되면 이 병과 말을 사용하라고 했다.
옛집을 찾아가니 집은 쑥대밭이 되어 있고, 가축과 사람을 다 잡아먹은 누이가 혼자 막내 오라비를 반기면서 뭘 잡숫고 싶으냐고 아양을 떨었다. 그 집을 벗어날 틈을 얻으려고 오빠가 부추전이 먹고 싶으니 밭에 가서 부추를 베어 오라고 했다. 누이는 오빠가 달아날까봐 오빠 몸에 끈을 매어 놓고 밭에 갔다. 그 사이 오빠는 끈을 풀어 문고리에 매어 놓고 달아났다. 오빠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 누이가 뒤를 쫓아갔다. 여우가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하면서 얼마나 빨리 따라오는지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아 다급해진 오빠는 아내가 준 병을 사용했다.
파란 병을 던지니 새파란 강이 나타났지만 누이가 여우라서 강물을 헤치고 나와 따라왔다. 그래서 또 병 하나를 던지니 가시덤불이 솟아나서 여우를 찌르는데 아무리 찔러도 여우가 죽지 않고 따라왔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붉은 병을 내던졌더니 뒤따라오던 여우 누이는 불에 탄 채로 고래고래 소리만 질러대고 있었다.
“하나만 더 먹으면 100개가 되는데. 막내도 먹을 수 있었는데.”
결국 여우는 불에 타 죽었다.
세 개의 병으로 여우 누이를 따돌린 막내아들은 무사히 부인이 있는 집으로 돌아와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남매 대결은 처음 누이의 절대 우위에서 시작되지만, 점차 변모하고 성장하는 오빠의 승리로 귀결된다. 아내의 원조를 받아 여우 누이와 대결하는 아들의 이야기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퇴치하는 <페르세우스2 신화 >와 구조적 유사성을 보여 준다. 남매 대결에서 아들이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계기는 여우 누이의 행위를 목격하는 대목이다.
이본들은 대부분 기본 서사구조를 공유하므로 변이는 세부 내용에서 나타난다. 아들의 숫자는 3∼9명으로서 다수라는 공통성을 갖는다. 딸을 얻기 위한 기도는 산제 불공, 절 불공, 칠성당, 여우 굴 치성 등이며, 여우라도 낳게 해 달라는 각편도 있다. 여우 누이의 정체를 목격하고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인물이 막내아들인 경우가 많으나 각편에 따라 큰아들 또는 그냥 아들로 언급되기도 한다. 사실을 말해 차례로 쫓겨나기도 하고, 현장을 목격하지만, 동생의 소행이라 말하지 못하거나, 조느라고 못 보는 예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아들 하나는 사실을 말해 쫓겨나고 문제 해결자로 돌아온다는 공통성이 있다.
아들의 원조자는 예사롭지 않은 능력의 소유자로서 아내(옥황상제 또는 용왕의 딸), 산신령, 대사, 명인, 산중 보살, 무당 등으로 변이된다. 원조자가 증여하는 마술적 물건은 세 개의 병이 대표적이나 봉투 세 개, 부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향 집으로 떠나는 남편에게 아내가 마지못해 병 세 개와 천리마를 내주면서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사용하라고 당부하는 부분은 삼국지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금낭묘계(錦囊妙計), 비단 주머니에 든 묘한 계책이라는 뜻으로, 유비가 오나라 손권의 여동생 손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오나라로 향할 때 제갈량은 유비를 경호하는 장수 조자룡에게 비단 주머니 세 개를 주면서 위험할 때마다 열어보라고 당부한다. 병 세 개는 비단 주머니 세 개와, 천리마는 신출귀몰하는 장수 조자룡과 묘한 연상작용을 이룬다. 두 이야기는 문화적 ․ 역사적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유사하여 설화의 세계성에 관한 관심을 환기한다.
여우의 공격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데에 병 세 개가 등장하는데, 파란 병과 빨간 병의 순서가 바뀌는 각편도 있다. 어쨌든 사건은 변신물의 정체를 파악하게 된 아들의 인식 능력을 부각한다. 진실을 말한 아들은 부모로부터 쫓겨나지만, 외부 세계에서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존재와 결혼하고, 아내로부터 또는 예지력을 지닌 존재로부터 누이를 물리칠 수 있는 마술적인 물건을 증여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여우누이>에는 변신 능력과 괴력을 가졌으나 고정된 인물형인 누이와 인식 능력을 통해 변모하고 성장하는 인물형인 오빠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 형상은 자연적 혼돈을 극복하고 인간 중심의 문화적 질서를 재편하는 문화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여우누이>는 다양한 상상력, 구성 요소들이 연관되어 이루어 내는 의미 지향의 다층성, 이야기로서의 즐거움 등 민담의 문예적 가치를 다양하게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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