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賊退治說話)
설화 분류 중에서 신이담에 속하는 민간설화로 한 장수가 지하국에 사는 괴물에게 납치되어 간 공주를 구하고 그녀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의 민간설화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분포된 민간설화이며, 작가는 전해져 있지 않다.
<금원전>, <금령전>, <최치원전> 등의 여러 고전소설에서 차용된 흔적이 보인다. 또한 <전등신화>의 신양동기나 <홍길동전>, <설인귀전> 등에서도 이 설화가 차용되고 있음을 보아 오랜 역사를 가지고 널리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몽골의 <부론다이> 설화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자료집에 따라서는 <괴물(혹은 독수리)에게 납치되어간 세 미녀>, <금 돼지(혹은 미륵 돼지)의 자손 최치원> 등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설화 유형은 우리 민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중의 하나이다.
이 설화는 아마도 우리나라 설화 가운데에서 가장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대표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이 설화는 완결된 소설적인 허구성을 지니고 있어 소설로의 이행이 쉬웠으리라 생각된다. <금원전>이나 <최치원전>은 ‘지하국대적퇴치설화’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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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아귀 귀신이라는 큰 도적이 있었다. 그는 종종 이 세상에서 나와서 세상을 요란하게 하고 예쁜 여자를 납치해 가기도 하였다. 어느 날 아귀 귀신이 왕의 세 공주를 한꺼번에 납치하여 갔다. 왕은 여러 신하에게 귀신 잡을 계획을 물어보았으나, 신통한 계책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장수가 나와 자신이 그 일을 맡겠다고 하였다.
"임금님, 저의 집은 대대로 국록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생명을 바쳐 그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반드시 세 공주님을 구하여 오겠습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세 공주를 구하면 그중 막내 공주와 결혼시키겠다고 하였다. 장수는 여러 하인을 데리고 아귀 귀신의 소굴을 찾아 출발하였다. 그러나 천하를 돌아다녔으나 귀신의 소굴이 어느 곳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는 어느 산모퉁이에서 피곤한 몸을 잠시 쉬고 있는 동안에 깜박 잠이 들었다. 꿈에 머리가 하얀 노인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 산의 산신령이다. 네가 찾는 아귀 귀신의 소굴이 산의 저쪽 산중에 있다. 그 산에 이상한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를 들어내면 땅속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있을 것이다."
노인은 말을 마치자 사라졌다.
장수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꿈속의 노인이 말한 산까지 갔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다. 장수는 하인들에게 튼튼한 새끼를 꼬게 하고, 광주리 하나를 얽게 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누가 이 광주리를 타고 내려가서 아귀 귀신의 동정을 살피고 오겠는가?"
하고 물었으나, 한 사람도 응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한 하인에게 광주리를 타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만일 도중에 위험한 일이 있으면 줄을 흔들어라. 그러면 줄을 끌어 올리겠다."
고 하였다. 그 사람은 조금 내려가자 줄을 흔들었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사람은 조금 더 내려간 곳에서 줄을 흔들었다. 할 수 없이 장수 자신이 내려가기로 하였다. 그는 구멍의 끝까지 내려갔다.
그의 눈앞에 넓고 신비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는 제일 큰집의 우물곁에 있는 버드나무 위에 올라가 동정을 살폈다. 조금 있으니 어여쁜 아가씨가 물동이를 이고 그 집에서 나왔다. 그 아가씨는 막내 공주였다. 공주가 물을 긷자, 장수는 나뭇잎을 한 줌 훑어서 물동이 위에 떨어뜨렸다. 공주는 물을 버리고 다시 길었다. 그는 다시 나뭇잎을 떨어뜨렸다. 세 번 만에 공주는 머리를 저으면서 나무 위를 쳐다보고 깜짝 놀라고 말하였다.
"당신은 위 세상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도적의 굴에 내려왔습니까?"
장수는 나무에서 내려와 지금까지의 일을 얘기하였다. 그러자 공주는 이렇게 말하였다.
"귀신의 집 문에는 사나운 문지기가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가 도적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장수는 공주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다른 물건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가 수박으로 변할 테니, 여차여차하여 주십시오."
장수가 열 걸음쯤 공중으로 뛰어오르자 수박으로 변하였다. 공주는 그것을 치맛자락에 싸서 문을 지나갔다. 문지기는 공주의 치맛자락을 조사하였으나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귀 귀신은,
"사람 냄새가 나니 웬일인가?"
하고 공주에게 야단을 치며 물었다. 공주는 태연하게,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마 몸이 불편해서 그런가 봅니다."
하고 속였다. 아귀 귀신은 마침 몸이 불편하여 누워 있었다. 공주들은 독한 술을 만들면서 도적의 병이 낫기를 기다렸다. 며칠 후에 공주들은 술을 거르고 돼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이제 병환이 나았으므로 즐거운 마음에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마음껏 노시지요."
공주들이 갖은 아양을 부리며 술을 권하자, 도적은 마음이 흐뭇하여 걸러 놓은 술을 모두 마셨다. 그리고 공주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공주들은 속으로 기뻐하면서 도적이 더욱 우쭐대도록 칭찬하면서 말하였다.
"저희에게는 대감님과 함께 사는 것 외에는 소원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감님같이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분도 죽는 수가 있습니까?"
도적은 취한 상태에서 공주들의 칭찬을 듣자 의심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내 양 옆구리에는 비늘이 두 개씩 있는데, 그것을 떼어버리면 죽지. 그러나 그것을 뗄 놈이 세상에는 없지. 하하하……."
도적은 껄껄 웃다가 쓰러져 코를 골면서 잠이 들었다.
수박에서 다시 사람으로 변한 장수는 도적의 옆구리에 있는 비늘을 칼로 베어냈다. 그러자 도적의 머리는 떨어져 천장으로 올라가다가 다시 목에 붙으려고 하였다. 공주들이 재빨리 매운 재를 목에 뿌리자, 다시 붙지 못하였다. 장수는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여 죽음은 면하였으나, 구멍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사이 하인들은 장수를 배신하여 공주를 데리고 왕에게 갔다. 왕은 큰 잔치를 베풀고 하인들을 칭찬하였다. 장수가 갇혀있는 그때 노인이 나타나 말 한 필을 주며 타라고 하였다. 장수가 말을 타자, 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땅 위로 올라왔다.
공주들은 오랜만에 만난 부모와 이야기를 하느라 무신의 일을 잊고 있었다. 왕은 약속대로 하인의 우두머리와 막내 공주를 혼인시키려고 큰 잔치를 열었다. 그때, 장수가 도착하여 들어와 왕에게 지나온 일을 말하였다. 왕은 하인들을 죽이고, 막내 공주와 장수를 결혼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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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역시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운 뒤, 요괴 굴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그 요괴에게 납치되었던 여인을 아내로 삼은 점에서는 이 설화와 구조가 똑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금령전>에서도 주인공 해룡이 머리 아홉을 가진 괴물에게 납치당한 공주를 구출한 뒤 혼인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몇몇 고전소설의 내용에 있어 일부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똑같은 원천으로서 <지하국대적퇴치설화>를 소재로 빌렸기 때문이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 설화중에서 가장 복합적인 구성을 지닌 것으로 완결된 소설적인 구성을 가진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유형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베어울프 이야기>에 나오는 베어울프와 그레텔의 대결이 이에 속한다. 이런 유형의 설화는 그 분포지역이 유럽 전역뿐만 아니라 근동, 인도, 극동, 북아프리카,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하국대적퇴치설화>는 우리나라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아르네(Aarne)ㆍ톰슨(Thompson)에 의하면, 이 설화의 유형으로는 <용 퇴치자>, <곰 아들>, <두 형제>와 같은 것이 유명한 것인데, 세계적인 표준형이 세 공주의 납치→영웅의 등장→초인적 능력을 지닌 3명의 부하→밧줄을 타고 지하계에 도착→괴물 퇴치→공주들을 먼저 지상으로 올려보냄→3명의 부하가 영웅을 지하국에 유기→신령 혹은 독수리의 도움으로 영웅이 지상으로 오름→부하들을 처벌하고 막내 공주와 혼인하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우리나라의 것도 이것과 별로 다름이 없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지닌 '지하국대적퇴치설화'는 우리나라 전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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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담에는 지하국에 관한 것이 많다. 대개 큰 도둑이 지상의 여인이나 보물을 약탈하여 지하국에 숨겨 놓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지하의 대적을 퇴치하고 여인이나 보물을 빼앗아 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고전 소설과 관련이 깊은데 '김원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확대해 놓았다고 할 만하고, '최고운전'과 '홍길동전' 같은 작품은 이 설화를 부분적으로 빌리고 있다.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는 설화의 소설화 과정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또한, 이 작품은 민담의 성격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동기의 측면을 보면, 우리의 민담에는 지상과 대립하는 지하국이 나타나는 것이 많다. 지하국의 대적이 지상의 중요한 것을 약탈하여 지하국에 숨겨 놓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영웅이 지하의 대적을 퇴치하고 그것을 되찾아 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이러한 기본 동기에 충실한 작품이다.
한편, 흥미성의 추구라는 측면에서도 보편성을 보여 준다. 이 민담은 신화나 설화의 신성성과 진실성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 위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 신화와 전설 속의 신이한 인물에 비교해 보통의 능력을 지닌 인간을 주인공으로 하여 고난을 극복하고 혼인이라는 행복한 상황에 이르는 희극적이고 낙천적인 결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 민족의 소박한 삶의 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