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사무가 <원천강 본풀이>
'원천강 본풀이'는 제주도 심방2들이 전하던 서사무가의 하나다. 원천강이라는 점술서의 기원을 서술한 무속 신화로 현재 두 편의 자료가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1930년대에 박춘봉 심방을 대상으로 조사, 채록한 자료와 1960년대에 조술생 심방을 대상으로 조사, 채록한 서사무가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조사, 채록되지 않았고, 무속 현장에서도 더는 들을 수 없으므로 사실상 전승이 중단된 자료이다. '원천강(袁天綱)'은 당나라 초기의 역사적 인물로 관상을 아주 잘 본 이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도 원천강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것은 원천강의 저술이 명과학(음양학)의 지식을 측정하는 준거나 시험과목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원천강은 인명보다는 서명으로 인식되었다. 그에 비교해 제주도 서사무가 <원천강 본풀이>에서는 역사적 인물로서 원천강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원천강'은 춘하추동이 공존하는 신비의 공간이나 점술서, 점쟁이 또는 무당 등을 지칭하는 직업 명칭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원천강'은 춘하추동이 공존하는 낙원이나 그곳에서 흐르는 강 등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강님들에서 옥 같은 아가씨가 솟아났는데, 학이 그녀를 보호하고 키워 주었다. 이웃사람들은 그녀를 '오날이'라고 불렀다. 어느 정도 성장한 오날이는 백씨부인으로부터 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에 대해 듣고는 부모를 찾아 먼 길을 떠났다.
먼저 오날이는 서천강가의 성안에서 글만 읽어야 하는 동자 장상에게 길을 묻고, 다음으로 윗가지에서만 꽃을 피우는 연꽃에게 길을 묻고, 이어 야광주를 셋이나 물어도 용이 되지 못하는 큰 뱀에게, 그리고 별초당에서 글만 읽는 매일이에게 길을 물어 연못의 물을 푸는 옥황시녀를 만났다. 옥황시녀의 물 푸는 일을 도와준 오날이는 그녀의 인도로 드디어 부모와 상봉하였다.
부모는 오날을 낳은 날에 원천강을 지키라는 옥황상제의 영을 받아 왔노라고 하며 그 나라를 구경시켜 주었다. 오날이는 오는 도중 길을 가르쳐 준 자들에게서 그들의 팔자를 물어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므로 부모에게 이를 물었다. 부모는 장상과 매일이는 부부가 되면 영화를 누리게 되며, 연꽃은 윗가지를 꺾어주면 다른 가지에도 꽃이 만발할 것이고, 뱀은 야광주를 하나만 물면 용이 될 수 있으며, 그리고 오날은 야광주 하나와 연꽃을 가지면 신녀가 되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되돌아오는 도중에 부탁받은 일을 모두 마친 오날이는 백씨 부인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보답으로 야광주 하나를 선사한 후에 옥황의 선녀가 되어 승천하였다. 승천한 오날이는 옥황의 명을 받들어 인간 세상에 강림하여 절마다 다니면서 ‘원천강’이라는 책을 목판으로 적는 일을 맡게 되었다.
<원천강 본풀이>는 한국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선녀이자 4계절의 순환이 생겨나는 원천강의 여신이 되는 '오날(오늘)이'의 사연을 담은 신화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구성적으로는 한국 신화에서 가장 관념적인 이야기 중 하나다. 대체로 농경사회에서 중요했던 계절의 순환을 기반으로 시간에 대한 관념이 섞인 설화라는 해석을 받고 있다.
서사무가는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줄거리를 갖춘 서사 양식에 속하는 무가로 ‘본풀이’라고도 한다. 서사무가는 소설이나 설화와 같이 고유한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줄거리를 갖추고 있다. 일명 ‘본풀이’는 신의 유래를 설명하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또한, 무속신의 이야기이고 무속 의식에서 구연하므로 무속신화이다. 청중들 앞에서 악기 반주에 맞추어 줄거리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구비서사시이기도 하다. 황석영의 장편소설 <바리데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원천강은 본래 당나라의 점술가를 뜻하지만, 제주도 무속에서는 <원천강 화주역>의 준말로 사용되어 점술서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본풀이는 무속에서 점술서 또는 점술의 기원과 내력을 설명하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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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날이'는 현재를 나타내며, 계절의 여신이라는 직책, '오늘이'라는 시간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여러 시간에 관한 이야기의 직접적인 교훈은 농경사회에서 작은 일부터 계절의 순환에 따라 순리에 맞게 행하자는 의미다. 스토리 상 시간을 대하는 여러 인물들을 '오날이'라는 현재를 상징하는 이름과 연결하고 있다.
<원천강 본풀이>는 제주도 서사무가의 하나로, 원천강이라는 점술서의 기원을 서술한 무속 신화다. 인간의 운명 인간뿐만 아니라 연꽃 같은 식물이나 큰 뱀 같은 동물 등 자연 만물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서사무가는 생태학적 운명관을 시사한다.
제주도 무속의 경우 다른 대부분의 본풀이는 신의 내력담으로 되어 있다. 그 신을 위한 굿에서 심방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이 <원천강 본풀이>는 신의 내력담이 아니고 굿에서 직접 노래로 불리지도 않는다. <원천강 본풀이>는 본래 무속에서 점을 치게 된 근원과 내력을 설명하는 설화로 심방들 사이에 구전되었는데, 본풀이와 비슷하여 본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굿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으므로 근래에 채록된 이본은 없고, 1937년에 채록한 한 편이 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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