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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이오덕 산문집 『나무처럼 산처럼』

by 언덕에서 2018. 7. 24.

 

 

 

이오덕 산문집 『나무처럼 산처럼』

 

 

 

 

 

이 책 『나무처럼 산처럼』은 이오덕1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2002년에 발간되었다. 어떻게 해서 내 서가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태풍이 온다던 지난 달, 며칠동안 그간 먼지를 쓰고 있던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는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아래와 같은 문구 때문이다.

 나는 이오덕 선생이 훌륭한 문장을 쓴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선생의 문장이 유치하고 멋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훌륭한 글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훌륭하기 때문에, 특정한 작가의 글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못난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익히는 데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중략) <우리말 바로쓰기>는 못난 글을 쓰지 않도록 면역력을 키워주는 백신일 뿐이다. - 유시민 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177~8쪽

 

 유시민의 표현처럼 이오덕 선생은 40년 이상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고, 아동문학의 권위자이다. 그의 글에는 쉬운 문장이 눈에 띄었다. 한글 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과히 교과서적인 문장이다. 선생은 1983년에 교사들을 모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고, 퇴임 후에는 [우리말연구소]를 만들어 글쓰기 교육운동과 우리말 연구에 힘썼다. 특히 지식인들이 일반적으로 써 오던 어눌한 번역말투와 일본말투의 잔재를 걸러내고 우리말과 글을 다듬은 저서 <우리 문장 바로쓰기>(1992)와 <우리글 바로쓰기>(전3권.1995)는 이 분야의 명저로 꼽힌다. 또 교육현장에서 쓰는 '글짓기'라는 용어를 '글쓰기'로 고쳐 쓸 것을 주장하고, 어린이들이 쓰는 말과 글이 곧 훌륭한 문학이라는 믿음 아래 10여 권이 넘는 어린이들의 문집을 간행하는 등 어린이 글쓰기 운동에도 열성을 쏟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짐승을 좋아했다. 송아지는 가까이 가서 안아주고 싶었지만 결코 안겨주지 않는다. 소는 사람한테 그토록 순종하지만, 어딘가 사람에게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염소새끼만큼 귀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이 염소 새끼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고양이만은 잘 안기지만, 어른들은 방안에 못 들어오게 했다. 밥도 어른들 몰래 주었다. 겨울 밤 고양이를 이불 속에 넣어준다고 늘 꾸중을 들었다. 

 개는 내가 집에만 가면 반가워 길길이 뛰고 핥고 하여 늘 내 옷을 흙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집짐승들의 마지막은 모조리 비참했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좀 들면서부터, 내가 어른이 되면 짐승을 집에서 기르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어른이 되고 보니 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집안일이란 나 혼자의 생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본문 58쪽

 

 


 

 이 책은 우리 글 바로 쓰기와 바른 아동 문학을 위해 반세기를 바쳐온 작가의  '자연과 생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에게 있어서 '말(언어)'은 곧 '자연'이며 '정직'이라는 이름 아래 동일하다. 작가에게 좋은 글이란 '정직하게 쓰는 생활글'이다. 작가는 윤동주의「굴뚝」이라는 시를 지적하면서 연기가 나도록 불을 피우면서 감자를 구울 수는 없으며 감자는 숯불에 묻어 놓아야 구워진다고 꼬집는다. 작가에게 정직은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순리'와도 같다.

 "요즘 어느 농촌 지역에서는 행정관청에서 까치 왼발을 하나 가지고 가면 5천 원을 준다고 한다. 그 옛날 아이들이 숙제로 쥐를 잡아서 꼬리를 끊어 학교에 가지고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까치는 옛날부터 제비와 함께 사람에게 이로운 새로 알려져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돈을 들여가면서 기를 쓰고 잡아 없애려고 할까?"  -- 본문 51쪽

 반가운 손님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려준다 하여 길조로 여겨지던 까치는 요즘 농촌에서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논밭의 곡식을 먹기 때문에 오히려 '해로운 새'로 여기기 때문이다. 과도한 농약살포로 인해 먹이가 없어진 까치로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까치가 왜 곡식을 먹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 중국 문화혁명 시기에 모택동은 참새를 가리키며 '해로운 새'라고 말했고 이후 한동안 중국에서는 참새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 결과 천적을 잃은 각종 벌레들이 창궐하여 엄청난 양의 곡식을 갉아먹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쌀이 남아돈다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일이야 없겠지만,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작가에게는 그저 안타까웠을 듯하다.

 

 

 이오덕 선생은 "한국의 아이들과 한국의 말을 위해 가장 비타협적으로 싸워온 전사"이자 "일흔의 몸에 스물의 정신을 가진 청년"이라는 출판사의 평이 눈에 띄었다. 어쨌든 그는  '완고한 한글 전용론자'로 오해받곤 하는데, 사실 그의 고집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담긴 우리말"일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말로 써도 될 것을 구태여 한자말이나 서양말로 쓰지 말자는 것이 그의 주장은 우리 모두가 영원히 지켜야할 생활의 원칙이기도 하다.

 

  1. 1925년 경북 청송 출생으로 1944년부터 주로 농촌 학교에서 어린이들과 같이 살아오다가 1966년 봄에 퇴직했다. 40여 년을 교직에 있으면서 교육자로서 또한 아동 문학 평론가로서 어린이들의 올바른 글쓰기 교육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일을 했다. 그는 어린이 문학과 우리 말 살리기 운동에 힘쓰면서 동화, 동시, 수필, 어린이문학 평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책을 냈으며, 한국 아동문학상과 단재상을 받았다. 2003년 8월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지은 책으로는『시 정신과 유희 정신』『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우리글 바로 쓰기』『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개구리 울던 마을』등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