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古典을 읽다

조선통신사 해외견문록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by 언덕에서 2017. 12. 6.

 

 

조선통신사 해외견문록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

 

조선 영조 때의 관리 김인겸(金仁謙.1707∼1772)이 지은 기행가사로 작자가 57세 때 조선통신사 조엄의 삼방서기로 수행하여 1763년(영조 39)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8일에 돌아오기까지 11개월 동안 수륙 수천리를 왕래하며 이국 일본의 문물제도와 인정 풍속, 그 곳 풍경 등을 보고 경험하여 쓴 것으로 모두 8,000여 구에 달하는 장편의 가사이다. 필사본으로 세 가지가 전하는데, 어구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람본ㆍ연민본ㆍ손낙범본 등이다.

 영조 39년∼40년, 영조 39년(1763)에 조엄이 일본에 사신으로 갈 때 작자가 그의 수행원으로 따라가서 그 이듬해 돌아올 때까지의 일을 개성적인 판단을 삽입하면서 실감 있게 서술하였다. 영조 39년(1763)에 일본 측에서 수교를 청하여 왔으므로 우리나라에서 통신사를 보내게 되었다. 이를 속칭 계미통신사라고 한다. 정사(正使) 조엄, 부사 이인배를 비롯하여 종사관, 제술관, 서기 3명(이 중의 한 사람이 김인겸), 군관, 역관, 의원 등 총 500여 명이라는 엄청난 일행이었다.

 영조 39년 8월 3일 서울 출발, 8월 20일 부산 도착, 10월 6일 부산항 출발, 대마도를 거쳐 일본 본토를 가로질러 이듬해 1월 20일 오사카 도착, 목적지인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는 2월 16일에 도착하였으니, 얼마나 긴 여행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돌아오는 길도 이와 같았다. 애도를 떠난 것이 3월 11일, 부산에 도착한 것이 6월 22일, 서울에 돌아와 경희궁에 복명한 것이 7월 8일이었으니, 11개월의 기간에 걸친 수륙만여 리의 장거리 여행이었다. 총 4책으로 8천여 구나 되는 장편 기행 가사이며,  조선말 외국 기행가사로서 홍순학의 <연행가>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기행가사의 백미에 속한다. 또한 정확한 노정과 일시를 적고, 날씨, 자연환경, 일어난 사건, 작자의 느낌 등을 과장 없이 묘사했을 뿐 아니라, 도처에 날카로운 비판과 유머가 곁들여 있어 기행문학의 본령을 충분히 발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각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 제1권 : 일본에서 친선사절을 청하여 여러 수속 끝에 8월 3일 서울을 떠나 용인, 충주, 문경, 예천, 안동, 영천, 경주, 울산, 동래를 거쳐 부산에 이름.

- 제2권 : 10. 6 부산에서 승선, 출발하는 장면. 대마도, 일기도, 축전주, 남도를 거쳐 하관에 도착하여 머뭄.

- 제3권 : 음1. 1 적간관의 명절 이야기, 대판, 경도, 소전원, 품천을 거쳐 에도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함.

- 제4권 : 3. 11. 귀로. 6. 22. 부산에 도착. 7. 8. 영조께 아룀.

 

 

 이 책은 일본의 문물, 제도, 풍습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은 물론, 여정이 정확히 나타나 있으며, 작자의 견문과 비판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이는 당대의 사실적 사고를 잘 반영하고 있다. 작자 김인겸은 1753년(영조 2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통신사의 서기로 발탁되기까지 향리 공주에 칩거한 강직 청렴한 선비로서, 문장에 특출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행로에서 받은 융숭한 대접과 풍물에 대한 이야기며, 수천수에 달하는 시를 지어 왜인에게 준 문인외교의 편모를 알 수 있다.

 특히 “당당한 천승국의 예물예단 가져와서 개돝 같은 취류에 사배四拜하기 어떠할꼬.”라는 구절에서는 개돝 같은 왜놈에게 예배하기 싫어 상사들의 강권도 듣지 않고 국서 봉정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작자의 대일감정을 엿볼 수 있다. 왜녀의 음란한 풍속과 일본의 경관을 묘사하는 장면에서도 특유의 통찰력을 볼 수 있다. 가사 속에 지나친 과장과 독선적인 판단 등이 간혹 있으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별로 손색이 없는 기행문으로, 국문학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또한 김인겸의 글에는 일본인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은 점은 다문화사회를 맞고 있는 요즘의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 유학자이자 이용후생을 중히 여기는 실학풍 인물이었던 그는 일본인을 놓고 “진실로 기특하고 묘하디 묘한” 선진적인 기술을 사실대로 묘사하면서도, 근본적으로 유교적 예의에 조선인보다 훨씬 덜 철저한 부분만큼만 낮게 평가했다.

 

제 형이 죽은 후의 형수兄嫂를 계집 삼아

다리고 살게 되면 착다 하고 기리되는

제 아은 길렀다고 제수弟嫂는 못한다네

예법禮法이 바히3 없어 금수禽獸와 일반일다

 

 김인겸이 일본인을 평가하는 기초적인 기준은 분명히 ‘인종’이 아닌 ‘예법’이었다. 사실 이 절대적인 ‘예법’의 차원에서 북학파 사상가들과 같은 조선의 전근대적인 비판적 지식인들은 조선 자체도 이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곤 하였다4, 박노자, 272쪽 참고">.

 

 

 

  1760년에 일본에서는 덕천가중德川家重이 관백5關白의 자리를 그 아들 가치家治에게 물려주고 이듬해에 죽는다. 가치家治는 집권 후 우리나라에 대하여 교린의 구의6舊誼를 맺자고 청해 왔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가치家治가 새로 관백의 자리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명분에서 1763년 (영조 39년)에 수호사절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계미통신사이다.

『일동장유가』는 이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김인겸이 지었다. 제목의 ‘일동日東’은 일본을 가리켰고, ‘장유壯遊’는 사행7使行의 장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일동장유가』는 ‘가’로서, 형식은 가사歌辭에 속하지만, 내용은 광의의 수필문학인 기행문이다. 이런 성격의 작품으로는 이 『일동장유가』와 연경 기행인 <연행가>가 있고, 유배생활을 그린 <북천가>와 <만언사>가 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은 기행적이기는 하나, 기행문은 되지 못한다. 기행문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김인겸은 자를 사안士安, 호를 퇴석退石이라고 하는데, 5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47세가 되어서야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어, 그 진사로서 은일하는 것을 선비의 최고의 명예로 삼았다. 이 책 『일동장유가』는 사행가사에 나타나는 일본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도회지·시장의 형성, 도회지와 상업 문화, 화폐경제의 활성화, 그리고 새로운 계층의 진출 등에 대한 관심의 표현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반면 작가의 변화된 일본의 문명과 문화를 수용하려는 자세가 부족하다. 그리고 역관, 의원, 토교土校및 비장과 같은 중인층과 무관층을 바라보는 태도8와 일본인을 대할 때의 김인겸의 관심이 예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명분적 사고에 기초한 예학적 사고를 관복문제와 같은 작은 일에서부터 일본인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민감하게 적용하려 했다. 『일동장유가』는 가사문학사상 주목할 만한 문학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국문으로 기록된 장편 가사라는 점이다. 그 이전의 작품, 특히 박인로 등의 가사에서 보이는 고졸古拙한 한자어나 고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장편 가사로 창작되어 그 이후 가사의 장편화를 주도 했다.

 둘째, 조선 후기 가사에 일본체험을 부여하면서 그 외연을 확대시켰다는 점이다셋째, 사행가사의 양식적 특징을 거의 갖춘 작품이라는 점이다. 앞에서 사행가사의 구성을 본 바와 같이 그 전대의 작품이 갖추지 못했던 사행가사의 양식이 이루어져 후대의 사행가사의 양식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넷째, 기행가사도 현실적인 문학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 ·정조 시대의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다른 후기 가사와 같이 정치·경제·문화 등을 사실적으로 관찰 묘사하였다.

 다섯째, 작가 특유의 문체와 언어구사력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앞에서 자세히는 다루지 못했지만 전대와는 다른 문체의 사용과 수사법 등의 적절한 사용으로 체험의 관찰과 묘사가 재미있게 전달된다. 특히 국문학도로서 『일동장유가』를 아직 읽어보지 못하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장편기행문인 『일동장유가』는 240여 년 전 우리 외교사절단의 규모와 한일 양국의 외교 방법, 그리고 당시 일본 풍속 등을 엿볼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비평을 통하여 임진란 이후 아직도 가시지 않은 당시의 대왜 감정에서 오는 미묘한 고민 같은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며, 외교사적인 면에서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작품은 작자의 공정한 비판, 기발한 위트, 흐뭇한 해학 등을 맛볼 수 있다는 점과, 정확한 노정과 일시의 기록, 상세한 기상 보고와 자연 환경의 묘사 등, 기행문으로서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 여행에서 얻은 견문과 소감을 적은 기행문학의 한 형태. [본문으로]
  2.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幕府)장군에게 파견되었던 공식적인 외교사절 [본문으로]
  3. 전혀 [본문으로]
  4. <당신들의 대한민국 [본문으로]</당신들의>
  5. 관백은 일본의 천황을 대신하여 정무를 총괄하는 관직이다. 고대 일본의 율령법에서 규정된 관직이 아니기 때문에 영외관에 속한다. [본문으로]
  6.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정분. [본문으로]
  7. ‘사신 행차’를 줄여 이르던 말. [본문으로]
  8. 부산에서 서기 원중거와 선장 김구영이 다툰 사건, 사행길에서의 관복문제, 일본 체류시 최천종 살해사건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