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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철학서

플라톤 철학서『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kratous)』

by 언덕에서 2017. 8. 22.

 

 

플라톤 철학서『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kratous)』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BC 427∼347)의 철학서로 BC 399년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신들을 부정하는 등 당시 그리스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되었을 때 법정에서 한 변론 내용을 담고 있다. 구성은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인데,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ㆍ판결ㆍ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또한 플라톤이 스승의 생애와 인격을 밝히기 위해 쓴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 활동ㆍ사상과 플라톤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 문학은 때로는 작자인 플라톤의 창작이 포함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저서는 역사적 면 즉, 사실에도 대체로 충실하다고 평가받는다. 플라톤의 작품 중 문체가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이며, 그리스문학사상 산문문학의 주옥편으로 여겨져 왔다.

 

 

 소크라테스는 희랍의 대철학자요,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질 만큼 훌륭한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며, 또 하나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스승이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을 자기 생애 최고의 행복이라고 할 만큼 스승에 대해 깊은 경애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의 일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활동에 반감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그를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무고하였다. 그 결과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게 괴었으며, 여기에서 자신의 ‘죄’에 대한 자기 변호를 하게 되었다.

 본 저서는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억을 통해 이 내용을 기록하여 만든 저서이다. 본 저서의 내용은 무고된 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자기변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 전체,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철학적 삶 전체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다. 그는 평생 개인적인 일이나 희랍 국가의 일에 무관심한 채, 오로지 철학하는 일에만 몰두하였으며, 그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를 가장 훌륭하게 사용하는 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평생 아테네의 중심지인 아고라(Agora)에 나아가 자신의 친구, 제자들과 사색과 대화를 하며 보냈다. 소크라테스에게 아고라는 신체적 삶의 영위를 위한 시장과 심적(마음의) 삶의 현장인 광장의 기능을 겸한 곳, 즉 총체적 삶의 현장이었다.
따라서 그의 삶은 구체적이고 현장적인 삶에 대한 이성적 사유의 삶이었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단지 소크라테스 개인의 죄목이나 삶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 철학적 삶의 당위성에 대한 당당한 웅변이다. 그는 저서를 쓴 바 없다. 그러나 그는 저서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으니, 그것은 그의 삶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생애가 바로 그의 사상이었고 그의 삶은 철학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가장 훌륭한 철학개론서이다.

 외면적으로 볼 때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인들의 심판을 받는 입장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철학적 입장에서 아테네인들의 금권지향적 삶을 심판하여 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그의 변호 또는 판결을 끝맺고 있다.

 “이제 우리 헤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들 중 어느 편이 더 좋은 일을 만날는지, 그것은 오직 신밖에 아무도 모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사상적, 인간적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고전이다. 기원전 399년, 신을 믿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마음만 먹으면 사형을 피할수도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진리의 등불을 밝힌다. 죽음 앞에 초연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그의 사상적 깊이와 신념의 높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따르고자 했던 신은 진리와 양심이었다. 그는 진리와 양심을 져버리는 행위를 죽음보다도 더 두려워했다. 진리와 양심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이유, 즉 본질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닐, 불의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고 행동이 둔하기 때문에 느리게 뛰는 자에게 붙잡혔지만 예리하고 기민한 나의 고발자들은 빨리 달리는 자, 곧 불의에 붙잡혔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여러분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도 진리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고 흉악과 부정에 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숙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최대한의 돈과 명예와 명성을 쌓아올리면서 지혜와 진리와 영혼의 최대의 향상은 거의 돌보지 않고 이러한 일은 전혀 고려하지도 주의하지도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가?"라는 아네테인들을 향한 소크라테스의 물음은 소비욕망에 사로잡힌 현대인을 향한 준엄한 경고이기도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말을 입증해 줄 유일한 증인은 '가난'이라고 했다. 소유욕과 철저히 단절한 채 오직 진리 추구만을 생의 목표로 삼았던 소크라테스의 삶과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