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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결혼식 단상(斷想)

by 언덕에서 2015. 12. 16.

 

 

 

 

결혼식 단상(斷想)

 

 

 

 

 

 

 

Ⅰ. 면사포

 

 

 

 

지난 주말에는 처조카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면사포1의 유래는 무엇일까? 구약 성서 창세기를 펼치면 아브라함의 아들 야곱이 첫날밤 자신의 신부였던 라헬 대신 그 언니 레아와 동침한 것을 볼 수 있다. 자매의 아버지인 라반이 큰딸인 레아가 시집 가지 못할 것을 우려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신부(新婦)가 전신을 천으로 감았기 때문에 야곱이 두 자매를 구분 못했다고 지적한다. 사막의 유목민들은 부족간의 전쟁으로 남자들이 죽어갔기에 항상 여초 상태였다. 우리 역사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형사취수제2도 그러한 시대의 반영물로 보인다. 어머니 라반이나 우리 고구려의 가부장은 그런 제도를 활용해야만 가족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연유로 서양의 결혼식에는 신랑이 신부의 면사포를 들추어내고 얼굴을 확인하는 관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의 의견은 다른 듯하다. 면사포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이루어진 약탈혼3의 흔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면사포는 고기잡이 그물로 여자를 납치한 데서 유래했고, 약혼반지는 결혼 전에 건네는 일종의 착수금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보쌈이라는 약탈혼이 있었고, 여자를 확인하기 위해 자루를 여는 장면은 서양의 결혼식에서 면사포를 벗기는 장면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세로 이루어지고 있는 서양식 결혼 예식이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Ⅱ. 예단

 

 

 

 

 

 현재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는 그와 같은 매매혼4과 정략혼이 더 악화된 모습으로 보인다. 전통혼례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양의 결혼문화를 그대로 수입한 것도 아닌 ‘잡탕’인데다가, 일생에 한번 뿐인 결혼이기에 온갖 ‘상업주의’가 결탁되어 국적불명의 고비용 결혼문화가 되어 있다. 게다가 결혼당사자들도 결혼에서 소외되어 서로의 조건을 따지고 스스로를 거래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결혼문화 가운데 ‘예단’을 보면 기겁한다. 원래 예단은 신랑집에서 결혼 선물로 신부집에 비단을 보내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학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신부는 이를 가지고 시부모의 옷을 바느질해 공경의 의미로 바쳤고 시부모는 그 답례로 소정의 수공비를 신부에게 돌려보내 준 것이다. 이것이 변질된 것이 작금의 예단과 혼수일 것이다. 신랑이 집을 마련해야 한다거나, 그 집값의 10%를 예단비로 시댁에 보낸다는 것은 동서양 어느 결혼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화인데 우리사회에서는 마치 ‘전통’처럼 치뤄지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 준비된 주례사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젊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현재 국민 대다수가 선호하는 서양식 결혼 예식이나 그러한 예법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객석에서 결혼식을 구경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내가 40대 초반일 때 당시 근무하던 회사의 여직원이 상사인 제게 결혼 주례를 부탁한 적이 있다. 나는 주례란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터라 거절하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이 안타까움을 들은 당시의 다른 부하 여직원은 자신의 결혼식 때 내가 꼭 주례를 서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그에 대비한 주례사를 몇 달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되풀이하여 완성했는데 그 직원은 여태껏 결혼을 않고 있다. 애써 써두었던 원고를 위해서라도 그녀가 결혼할 것을 기대해 본다.

 

 

Ⅳ. 헌화(獻花)

 

 

 

 

 붉디붉은 바위 끝에

 잡고 온 암소를 놓아두고

 나를 부끄러워 아니 한다면 

저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신라 향가에 나오는 헌화가5를 해석해서 읽으면 민망하다는 분들이 많다. 금번 참석한 결혼식에는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주례석 앞에 나와서 합창과 꽁트 단막극을 하는 퍼포먼스가 있어서 즐거웠다. 그중의 하이라이트는 예식 말미에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신랑신부처럼 웨딩마치 길을 걸어가서 신부에게 헌화하는 장면이었다. 부조를 얼마해야 적정하다는 사회적 커트라인까지 있을 정도로 삭막하지만 결혼하는 친구에게 꽃을 선사하는 장면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다행히 최근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직접 ‘작은 결혼식’을 치르는 등 자성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으니 희망을 걸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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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들이 결혼식에서 쓰는 면사포, 즉 베일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아주 긴 역사가 숨어 있다. 베일은 여성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서 사용한 오랜 역사가 있는데, 신분이 높은 여자에게는 익명성과 정숙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대 아시리아에서는 매춘부가 베일을 쓰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히브리인의 성서에는 종교적인 의미로 베일을 쓴 여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신약과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일은 오직 그 여인의 남편이나 친한 친척만이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였다. 오늘날에는 종교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여인들이 베일을 쓰는 단 하나의 의식이 바로 결혼식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전통조차 구식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본문으로]
  2. 형사취수(兄死娶嫂, 영어: levirate marriage) 또는 취수혼(娶嫂婚)은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이다. 형사취수는 유목 민족에게서 자주 나타났으며, 일례로 흉노와 고구려 그리고 부여에서 나타났다. 이 제도는 형이 죽으면 재산을 형수가 물려받게 되고, 형수가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혼인하게 되면 원래 혈족의 것이었던 재산이 혈족의 바깥으로 유출하게 됨을 염려하여 나타난 제도이다. 또한 형수에게 상속권이 없을 경우에는 형수에게 생활능력이 없게 되므로 그 형수를 혈족이 부양해 준다는 의미도 있게 된다. [본문으로]
  3. 약탈혼은 상대방을 납치하여 결혼하는 것이다. 남녀의 신체적 사회적 차이로 인하여 여자를 납치하여 신부로 삼는 신부 납치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는 순 한국어로 보쌈이라고도 부른다. 중앙아시아, 로마니인등에서 흔하다. [본문으로]
  4. 매매혼(賣買婚)이란 신랑이 신부 또는 신부의 집안에 재물을 줌으로써 성립하는 혼인의 형태 및 제도이다. 이때 재물은 꼭 혼인 전에 치르지는 않고, 혼인한 뒤에 치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매매혼은 인신매매라는 의미는 약하고, 오히려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한국사에서는 옛날 옥저에서 민며느리제 또는 예부제(豫婦制)라고 하는 매매혼 제도가 있었다. 이는 장래에 혼인할 것을 약속하면, 여자가 어렸을 때(10세 때) 남자 집(서가(壻家))에 가서 성장한 후에 남자가 예물을 치르고 혼인을 하는 제도이다.[1] 한편 노역혼(勞役婚)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이는 남자가 여자의 집안을 위하여 일정 기간 일을 함으로써 혼인을 허락 받는 형태이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일을 하고 결혼한 일도 일종의 노역혼이다. 노역혼은 봉사혼(奉仕婚) 또는 복역혼(服役婚)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함경도 부근의 옥저가 민며느리제였다고 한다. [본문으로]
  5.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水路夫人)이란 제목 아래 노래와 아울러 이와 관련되는 다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태수로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옆에 석벽이 있어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고 천야만야한 꼭대기에 진달래 꽃이 한창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보고 저 꽃을 꺾어다 바칠 자가 누구냐 하니 마침 옆에 있던 늙은이가 암소를 끌고 지나다 부인의 말을 듣고 꽃을 꺾어 바치면서 노래를 지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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