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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철학적 살인

by 언덕에서 2015. 12. 9.

 

 

 

 

 

철학적 살인

 

 

 

 

 

 

 

목수를 직업으로 하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 사나이의 이름을 甲이라고 해둔다. 甲은 乙이란 자가 경영하는 목공장에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기의 아내와 乙이 정을 통하고 있는 현장을 보고 아내와 이혼했다. 甲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다. 그때는 乙의 공장에서 나와 다른 데서 일하고 있었는데 재혼한 처와 乙이 또 밀회를 했다. 甲은 그 재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다시 다른 여자를 맞아들였다. 그랬는데 乙은 또 甲의 세 번째 마누라를 농락했다. 이때까진 참아왔던 甲도 드디어 분통을 터트려 乙을 죽이겠다고 나섰다. 乙은 甲의 서슬이 보통이 아님을 알자 어디론지 피신해 버렸다. 甲은 만사를 제폐하고 乙을 찾아 방방곡곡 헤맸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甲은 乙을 고오베(新戶) 어느 여관에서 붙들어 비수로서 난자한 끝에 드디어 죽이고 말았다.

 이 사건을 재판한 고오베 재판소는 심의 끝에 甲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판결 이유인즉, 요약하면 법률은 개인의 개인에 대한 복수를 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엔 현재 간통죄가 없어 아내를 빼앗긴 남편의 울분을 풀어줄 합법적인 수단이 없다. 그러니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본건(本件)의 경우는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나 동일인(同一人)에 의해 남자의 면목을 짓밟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은 그에게 보복을 금하고 있다. 아무리 법률이라도 인간성을 깡그리 무시할 수는 없다. 법정도 甲에게 동정을 금할 수가 없다. 만일 甲이 첫 번째 아내를 빼앗겼을 때 乙을 죽였더라도 10년 이상의 형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아내를 빼앗겼을 때 乙을 죽였더라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쯤으로 낙착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양형(量刑)의 비율을 감안한다면 한 번, 두 번까지 참고 견디다가 세 번째에서 복수를 감행한 甲에게 무죄를 선고할밖에 도리가 없다…….

 

 이것은 1950년 일본 고오베 재판소(新戶裁判所)가 내린 판결인데 검찰도 이 판결 이유에 승복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 <이병주 작품집> (지만지 2010) 48 ~9쪽 '철학적 살인'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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