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여인의 초상(A Portrait of a Lady)』

by 언덕에서 2016. 7. 27.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여인의 초상(A Portrait of a Lady)』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 1843~1916)의 장편소설로 1881년 출간되었다. 장편소설『여인의 초상』은 미국의 현대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제임스가 십여 년에 걸쳐 공들여 구상해 집필한 그의 대표작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원하는 미국 여성 이사벨 아처의 인생 여정과 시련을 그린 이 소설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제임스의 소설 중 ‘의심할 나위 없는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으며,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더불어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어느 부인의 초상』으로도 번역되었다. 이 작품에서도 제임스의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적 시각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염치없는 미국인 구드웃드, 교활한 유럽인 오즈몬드, 무뚝뚝하고 정직한 영국인 릴프를 등장시켜 모든 문화의 특징들을 대변케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임스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심리와 인물들 사이 갈등에 대한 밀도 높은 묘사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삶의 진실을 포착하여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 준다. 주인공 이사벨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추적하여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한 인간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려 낸 『여인의 초상』은 인간 의식의 흐름을 집중적으로 조명함으로써 20세기 현대 소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모범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 1996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인 아가씨 이사벨 아처는 양친을 잃은 후, 런던 교외의 타쳇트씨 댁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 타쳇트 가의 아들 랄프는 불구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이사벨에게 호감을 갖는다.

 랄프는 이지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그녀가 삶을 만끽하도록 도와주고, 자신이 못 다 이룬 꿈들을 그녀가 대신 이루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내어 자기가 받을 유산의 반을 그녀에게 준다. 이를 계기로 이사벨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때 미국인 실업가 구드웃드와 영국인 귀족 워버튼 경이 구혼을 하는데, 이사벨은 이들이 그녀의 자유를 구속할 것으로 생각해서 거절한다.

 한편, 이사벨은 멀 부인의 주선으로 만난 유부남 오즈몬드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는 딸 팬시와 미술품 감상만을 낙으로 삼으며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즈몬드와 이사벨의 결혼은 랄프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 이사벨은 자신의 결혼이 말 부인의 책략과 재산을 노린 오즈몬드의 속물근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크게 상심하지만, 오즈몬드와 이혼하지 않을 자유도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고 사랑스런 딸 팬시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 1996 제작

 

 

 이 작품은 이사벨이 자신의 결백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많은 추한 경험을 한 후에 다시 현모양처의 역할로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순진한 한 여자가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여인의 초상』은 분량도 길고 플롯이 극적이기보다는 주인공 이사벨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기 때문에 따라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게다가 ‘연애 소설’의 외피임에도 불구하고 톤은 상당히 무겁고 건조하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 작품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사회의 인습과 어떻게 대항하고 동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사벨은 자신의 과거 선택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고 지금 자신이 “암흑과 질식의 집”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오스먼드, 랠프, 워버튼 경, 마담 멀 등 여러 인물들이 그녀의 생각 속에서 스쳐 지나가며 재조명된다. 이때 독자는 마치 스스로가 이사벨이 된 듯, 이사벨의 내면에 직접 들어가 그녀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갈등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헨리 제임스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소설 묘사 대상을 외부 세계에서 인간 의식으로 확장한다. 눈에 보이는 바깥 현실과는 다른 ‘내면의 현실’을 실감 나게 묘사한 제임스의 기법은 이후 소설가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20세기 소설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필두로 인간 심리의 심층을 탐구하는 노력들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인의 초상』의 내면 묘사가 얼마나 시대에 앞선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운명에 꿋꿋이 맞서 현실을 살아 나가는 이사벨의 의식을 정교하게 묘사함으로써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린 『여인의 초상』은 19세기 미국 소설의 걸작이자 현대 소설의 모범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