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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그들이 아버지를 잡아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The Evolution Man)』

by 언덕에서 2015. 8. 4.

 

그들이 아버지를 잡아먹은 이유는 무엇일까?『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The Evolution Man)』

 

영국 작가 로이 루이스(Roy Lewis,  1913~1996)의 소설로 1960년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나무에서 갓 내려와 땅 위를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원숭이 혹은 원시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민은 현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루의 3분의 1은 먹이를 잡는 데, 3분의 1은 그것을 먹어치우는 데, 나머지 3분의 1은 잠을 자는 데 사용한다. 이렇게 인생의 모든 시간을 다 써야 한다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시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인류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오늘은 무슨 새로운 짓을 해야 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도대체 우리가 이렇게 빨리 진화해도 되기는 하는 거야?

 

 

 

 

 

 

 200만 년 전부터 5만 년 전까지 이르는 기나긴 세월이 한 위대한 원시인 일가족의 삶 속에 축약되어 있는 이 소설은 구석기시대를 총체적으로 묘사한 한 편의 드라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지질학적 또는 고고학적 정보나 지식만을 담고 있다면 굳이 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책이 주는 감동과 즐거움은 그런 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으로의 진화를 앞당기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 에드워드와 미개한 채로나마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기를 고집하는 바냐 아저씨 사이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세계관의 갈등, 즉 진보와 보수를 둘러싼 투쟁의 원천이다. 아들 다섯 형제가 벌이는 모험과 창조의 노력은 또 어떤가. 무력을 신봉하는 오즈월드, 내세를 믿는 철학자 어니스트,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는 윌버,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알렉산더, 동물을 길들이려고 애쓰는 윌리엄…. 이들의 성격과 태도와 사고방식은 곧 오늘을 살고 있는 인류의 원형이다.

 그뿐인가. 남녀간의 사랑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은 경이롭다 못해 아름답고 엄숙한 감동마저 자아낸다. 그림자와 꿈에 대한 해석은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 넓어지면서 진화의 차원을 더욱 드높인다. 그리고 이 소설은 부계 사회를 향한 권력 승계의 시대를 열면서, 마침내 홍적세1의 종말에 이른다. 그 상징이 바로 이 책의 제목에 함축되어 있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황당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묘사된 정황들은 고생인류학이 발견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적이고, 인류의 진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들 자신은 지금 여기에 이토록 편안하게 앉아 있지만, 우리의 조상 원시인들은 얼마나 힘겨운 고난과 눈물겨운 노력을 거치면서 발명과 기억과 유산을 우리한테 물려준 것일까를 묻게 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최초로 불을 발견했다는 원시인 에드워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지나칠 정도로 진화에 집착하여 다른 지방의 원시인들도 불을 다룰 수 있다는 말만 들어도 펄쩍 뛸 정도이다.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그의 가족은 무기도 개량하고 더 좋은 동굴도 점령하고 음식도 익혀서 먹는 등 전체적인 삶의 질이 크게 상승한다. 그러나 주인공인 에드워드의 아들 어니스트와 나머지 구성원들은 끝없이 진화를 추구하는 그의 모습에 조금씩 경계를 하기 시작한다. 

 에드워드는 어디서나 불을 놓을 수 있는 방법도 찾아냈지만 실수로 아프리카의 초원 절반을 태우고, 이에 그의 가족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다른 원시인 부족을 만나서 그들의 땅에 살게 된다. 그가 저지른 사고와 그 결과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보를 도모하던 에드워드는 어느 날 활을 발명하게 되고,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어니스트와 그의 형 오즈월드는 작당해서 에드워드를 활로 쏘아 죽이고 시체는 에드워드가 발명한 불로 구워 먹는다. 소설은 어니스트가 그의 아버지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는 걸로 끝을 맺는다.

 

 

 

 로이 루이스의 소설은 일차적으로는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부친 살해' 신화를 제재(題材)로 해서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진화인류학에 대한 지식에 바탕을 두어 이야기를 전개시킨 일종의 과학소설이다.

 만약 로이 루이스의 책 전부를 읽어볼 시간이 없다면,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2』만 읽어봐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먹었나>의 줄거리는 프로이트가 말한 토템 향연에 모두 나와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버지에 의해 추방당했던 형제들이 힘을 합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어 치운다.

 그리하여 가부장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원시 무리를 해체된다. 형제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던 일을 해낸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인한 신무기 개발이 형제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들은 식인종들이었으니 살해한 아버지의 고기를 먹었을 것임은 두말한 나위도 없다.

 폭력적인 원초적 아버지는 아들 형제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선망과 공포의 대상이자 모델의 역할을 하였다. 이들 형제들은 아버지의 육신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아버지가 가진 권력과의 동일화를 달성했다. 그리고 각자 아버지가 휘두르던 힘의 일부를 자기 것으로 획득했다. 아마도 인류 최초의 제사였을 토템 향연은 이 기억할만한 범죄 행위의 반복이며 지금도 남태평양 일부 지역에 남았는 식인 풍습은 이러한 기념 축제의 흔적일 것이다이 범죄 행위는 사회조직, 도덕적 제약, 종교 같은 것들의 출발점이었다.

 

 

 

 

 루이스가 쓴 이 책의 재미에 빠져서 통독했다면, 누군가는 로이 루이스가 '프로이트를 베끼지 않았나'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있다. 분명 루이스는 프로이트 독자임에 틀림없다. 프로이트도 사실 원작자는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당시에 유행하던 여러 가설들을 인용하고 있을 뿐이다.

 프로이트도 알고 있고 루이스의 책도 읽었다면, 그렇다면 로이 루이스의 독창성이라고 할만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진화의 당사자들인 내부자들(insiders)들 사이의 갈등과 다툼을 스토리 전개의 축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즉 '숲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환경주의자 바냐 아저씨와 '가능성은 그야말로 엄청나다'고 주장하는 진보의 신봉자 아버지 에드워드 간의 갈등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은 인류 진화의 단계에서 어떤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저자에 의하면 원시인들에게 '사랑'은 새로운 사건이었다. 책 속에 나오는 말처럼, '사랑은 이제 진화 과정 속에 유용하게 자리를 잡은 간접적이고 평범한 사건'이지만, 사랑이 갓 태어났을 때 그 때의 감동과 놀라움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변화는 이어진다. 풀과 과일을 채집하던 인류가 고기를 먹게 되고, 날 음식 대신에 익힌 고기를 먹게 되었을 때의 변화는 또 얼마나 큰 것이었겠는가.

 마지막 물음: 1960년에 나온 로이 루이스의 소설이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시대적 질문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잡아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 자신의 말로 그 답에 그 답이 있다.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우리의 의무에 대해, 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보인 귀감에 대해, 그리고 선견지명을 가지고 신중하게 발전 속도를 조절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나는 이야기했다.(230∼231쪽)

 

 

 


로이 루이스(1913~1996) :옥스퍼드의 유니버시티대학에서 문학 학사를 졸업한 후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에서 공부했다. 이후 경제학자로서 일했지만 [스테이티스트] 지에서 편집 일을 하면서 언론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52년부터 1961년까지는 [이코노미스트]에서 미국 워싱턴 DC 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1961년 타임즈에 전임 특별기사 전문 기고가로 일하게 되면서 영국에 자리를 잡았다. 1957년에는 [킵세이크] 지를 창간했는데, 비록 출판 규모는 작았지만 1990년에 그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100개 이상의 출판물을 냈다. 또한 다수의 논픽션과 그의 대표작 『에볼루션 맨』을 비롯해 세 편의 소설을 냈다.

  1. 신생대 제사기의 첫 시기. 인류가 발생하여 진화한 시기이다. 지구가 널리 빙하로 덮여 몹시 추웠고, 매머드 같은 코끼리와 현재의 식물과 같은 것이 생육하였다. ≒갱신세ㆍ최신세ㆍ홍적기ㆍ홍적세. [본문으로]
  2. 토템은 씨족 전체와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토템은 먹을 수 있는 짐승일 수도 있고 해롭거나 이로운 동물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식물일 수도 있다. 토템을 소유한 씨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근친상간이 금지되어 있어서 족외혼이 성립한다. 프로이트는 원시사회에서 같은 종족 안의 근친상간이 금지된 이유는 생물학적 근거가 아니라 사회학적 근거에 있다고 본다. 서로 다른 종족 사이에서 성이 교환됨으로써 문화 왕래가 이루어지고 의사소통의 길이 열린다. 매년 씨족 구성원들은 한 번씩 토템 짐승을 죽여서 그것을 먹는 의식을 거행했다. 원시인들은 힘센 가장들과 그들의 여자들로 구성되는 작은 집단 사회에서 매일을 보냈다. 남자아이들은 일단 성인이 되면 여자를 얻기 위해서 늙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심한 경우에는 아버지를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끔찍한 근원적 성적 범죄에 대해서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근친상간과 살인을 금지하는 토템법에 해당하는 터부(금기)가 자연히 성립하게 되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