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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두 편의 시에 대한 단상

by 언덕에서 2015. 4. 24.

 

 

 

 

 

두 편의 시에 대한 단상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최영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사랑에 관한 시 두 편을 읽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에서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사랑과 이별에 비유하여 진술하고 있다. 사랑은 순간처럼 다가오나 이별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며, '사랑'을 '꽃'으로 상징화 한 듯하다.

  '꽃이 피는 것'은 사랑의 완성쯤으로 볼 수 있고, '꽃이 지는 것'은 이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시간들이 짧게 느껴짐을 뜻한다.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영영 한참이라는 말은 꽃이 지는 것과 그것을 잊는다는 것의 대비로 이별의 감정을 쉽게 지울 수 없을 뜻한다. 이렇게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잊는 과정으로 대비시켜, 이별한 사람을 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표현하고 있다.

 계속 읽어보니 시상의 흐름은 ‘꽃이 피는 것이 힘들다’, ‘꽃이 지는 것이 잠깐이다’, ‘꽃을 잊는 것은 한참이다’로 연결된다. 이것을 그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잊혀짐으로 대비시켜 보면 ‘그와의 만남은 같다’, ‘그와의 이별은 잠깐이다’, ‘그를 잊는 과정은 같다’와 같이 된다. 이와 같이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통해 인생의 보편적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이 선운사에서 활짝 핀 동백꽃을 보고, 누군가와 이별한 자신의 처지와 대비시켜 표현한 시일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전해지는 처연함과 함께 왠지 삶의 신산함을 느끼게도 된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하는 시인의 선언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라보 다리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내 마음 속에 아로새기는 것

기쁨은 짐짓 고생 끝에 이어온다는 것을.

 

밤도 오고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우리들의 팔뚝인 이 다리 아래로

싫증이 나듯 지친

무궁한 세월의 흐름이 흘러가는데,

우리들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마주 대고 머물며…

얼굴과 얼굴들.

 

밤도 오고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마치 흘러가는 이 물결과도 같이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

사랑도 흘러가네.

어찌도 생명은 이같이 유유한 것이냐?

희망은 어찌도 이같이 용솟음치는 것이냐?

 

밤도 오고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해가가고달이 지나고

흘러간 세월도 지나간 사랑들도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네.

 

밤도 오고또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잡지 [파리의 밤](1921) -

 

 

 마흔 이후 사람들이 훨씬 중후해 보이는 것은 입지(立志)의 중량보다는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그 무게와 함께 사람들은 어떤 기술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가슴이 어떻게 상실의 시간과 화해하는가라는 기술이 그것이다. 이 화해를 가리켜 ‘성장’이라고도 하고 ‘성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위의 시는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라는 작품이다. 센 강은 프랑스 서울 파리의 한복판을 조용히 흐르고 있다. ‘미라보’는 센 강 위에 놓인 다리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1921년 [파리의 밤]이란 잡지의 창간호에 발표했던 이 시는 그가 27세 때, 사랑하던 여인과의 이별 후에 쓴 시로서 현실과 추억 속의 갈등이 교차되는 가운데 옛 사랑을 잊지 못하는 고뇌가 담겨져 있다. 이 시 속에는 못다 이룬 사랑의 아픔과 추억의 되뇜이 반복되면서, 서정적 자아의 미묘한 갈등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서정적 자아는 센 강물이란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자신의 갈등을 투영하여 한층 성숙한 삶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

 '한 번 담근 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는 없네. 마주 잡았던 손길들, 기댔던 팔과 어깨들. 그리고 입 맞추었던 입술들. 흐릿하네. 흐르지 않은 게 없네. 다리 건너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가슴에 품었던 말들이 물비늘로 변해 흐르네, 강물은 되돌아 흐르지 않네. 강물은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고, 오거나 갈 뿐이네. 우리의 사랑처럼 쉬지 않고 있다가도 없어지면서. '

 해가 저물고, 달이 지고, 세월과 사랑은 흘러서 다시 되돌아 올 줄 모르는데, 그날을 추억하듯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오늘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도 또 흐를 것이다. 그렇다. 세월은 유수처럼 흐르고 또 흘러, 오늘은 어제가 아니고, 내일은 또 오늘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이나 우리들은 지나간 그리운 옛 추억에 젖어서 용솟음치는 희망을 안으면, 즐거운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은 행/불행의 사실 여부를 떠나 많은 경우 ‘불행’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말한 적이 있다. 어제가 아닌 오늘을 맞을 때 지나간 어제를 아쉬워하기 전에 오늘의 새 희망 속에서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녕 추억과 희망은 우리들의 삶의 등대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