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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잔혹 동시 ‘삽화만 문제'였나?

by 언덕에서 2015. 5. 12.

 

 

 

 

 

 

 

 

잔혹 동시 ‘삽화만 문제'였나?

 

 

 

 

휴일 시내에 갈 일이 있어서 서점에 들렀다. 시집 코너에서 요즘 화제의 동시집 ‘솔로강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30일 출간된 이 동시집에는 이 어린이가 직접 쓴 동시 58편이 수록돼 있다. 방송과 신문은 시집에 수록된 일부 작품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이 많아서 해당 출판사에서 시집 전량을 회수 / 폐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는데 아직 실시되지 않은 것 같았다.

 책을 펼쳐 보았다. 초등학생이 쓴 그렇고 그런 동시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가장 논란이 된 작품은 ‘학원 가기 싫은 날’으로 보인다. 내용에는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 이렇게 / 엄마를 씹어 먹어 / 삶아 먹고 구워 먹어 / 눈깔을 파먹어’ 등 읽기에 따라 매우 끔찍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을 숨 쉴 틈 없이 학원으로 내모는 한국의 사회 현실을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기에 이런 어리광 넘친 표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학원가기 싫은 날’에는 강한 언어 표현과 함께 충격적인 삽화가 곁들여 있는 사실이 알려져 계속 논란 중에 있다.

 진중권은 ‘인민재판 대신에 문학적 비평의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공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도 핵심을 잘못 짚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아동스런 내용이 삽화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되었고 급기야 문제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서점 매장에서 책장을 넘겼지만 내가 읽기에는 ‘학원 가기 싫은 날’외에는 실린 내용들은 모두 평이해 보였다. 진중권은 수록된 “나머지 시들은 내용이나 형식의 측면에서 매우 독특해 널리 권할 만하다"고 했지만 돋보이는 수작이 드물어 그다지 권할 만하지는 않다는 느낌이 강했다. ‘학원 가기 싫은 날’도 동시 옆에 그려진 섬짓한 삽화만 아니었으면 어린이가 쓴 그저 그런 동시로 읽혀졌을 것이고 이처럼 크게 문제화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동시가 핵심이 아니라 책을 팔아보려는 출판사의 얄팍한 마케팅 술책과 동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삽화가의 그림이 문제로 보인다.  아래를 읽어보자. 인터넷 서점에 기술된 이 책을 선전한 출판사의 광고 문구다.

 

 순영이는 지난번 시에선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여 주었는데, 이번 시에선 그녀만의 별난 취향을 한껏 보여줍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칠게 쏟아내기도 하는데 놀랍게도 시적 예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순영이는 대체로 자신이 체험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탄복과 함께 현실의 비정함에 대한 탄식들을 시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깁니다.

 

 ‘시적 예술성, 현실의 비정함에 대한 탄식, 어린이의 정직한 반응, 어른에게 성찰의 여운 등’출판사는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최대한의 상업적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외로움이 납작하다’등 어린이가 하기 어려운 표현이 보이기도 했다. 어제 조간신문을 보니, 좋아하는 시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 어린이는 “엄마가 읽던 이상(李箱)의 ‘오감도’를 우연히 봤는데 ‘아해들’이 반복되는 장면이 정말 멋졌다”는 부분이 있었다. ‘오감도’는 문학을 공부하는 전문가에게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과연 이 아이에게 주입된 문학수업 내용이 ‘아동적’이었는지 궁금하다. 

 

 

 

 

 

 

 어린이가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자유롭게 얘기하게 하는 것은 문학이 아니더라도 교육 일반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상업 시장에 내놓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판단이다. 책이 출판되면 그 책은 당사자의 손을 떠나 대중의 손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는 확신이 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성정(性情)이다. 이 어린이가 윤리적 책임이나 사회적 반향, 미학적 평가 특히 각종 비난을 감당할 수 없음은 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