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권위는 공존할 수 있을까?『노예의 길』
스웨덴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1(1899 ~ 1992)의 저서로 1944년 발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즈음의 20세기 중반 확산되었던 사회주의 열풍에 대한 반박으로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권위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더 큰 평등', '직업과 소득의 보장'과 같은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와 함께 융합시켜 사회주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하이에크는 그런 생각은 소련의 공산주의나 독일의 나치 같은 극단적인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언제나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주의의 길은 결과적으로 '자유'의 길이 아닌 '독재'와 '노예'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또한 책 전반에서 케인즈주의2나 사회복지 정책, 소득재분배 정책 같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시도하며, 효율적인 시장질서만이 인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영국에서는 평화의 시기에도 민주의회의 승인을 받은 경제계획을 통해 경제 전체를 전시와 같이 “하나의 사무실, 하나의 공장”처럼 조직함으로써 더 합리적으로 ‘더 큰 평등,’ ‘직업과 소득의 보장’과 같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민주주의와 함께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전시에 전쟁 승리에 필요한 무기개발을 위해 과학자들을 동원하였더니 의외로 빠르게 레이더가 발명될 수 있었던 데 고무되어,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평화시에도 국가경제 전체를 심지어 과학의 연구조차도 하나의 조직처럼 만들어 운영하려는 생각에 상당히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제 전체를 조직화하려는 사상적 흐름이 궁극적으로는 독일에서 ‘나치’의 등장에 이르게 하였고, 소련에서는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에 도달하도록 하였다고 하이에크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영국의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게 특히, 이 책을 바친 모든 정당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런 사회주의의 길이 ‘자유’의 길이 아니라 ‘독재’와 ‘노예’로 가는 길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 책 『노예의 길(Road to Serfdom)』을 썼다.
하이에크는 이 책에서 중앙의 지시와 자발적 협력을 통한 사람들의 행위의 조정(coordination)은 완전히 다른 방향, 즉, 첫 번째 길은 노예로 가는 길, 두 번째 길은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동독과 서독은 동일한 혈통, 동일한 문명, 동일한 기술적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한 곳은 중앙지시의 방식을, 다른 곳은 시장을 채택하였다. 결국 국민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벽을 쌓은 쪽은 서독이 아니라 동독이었다. 그 벽의 한쪽에서는 폭정과 비참함이, 다른 한쪽에서는 자유와 풍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부여되기만 하면 자의적일 수 없다는 믿음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전혀 없다. 이런 믿음에 따라 민주적 절차와 자의성을 대비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권력을 자의적이지 않도록 방지해 주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이다. 민주적 통제는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않도록 억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지 민주적 통제가 존재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민주적 절차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더라도, 그 일의 달성을 위해 권력의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며, 권력의 사용이 확고한 규칙들에 의해 제약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권력은 틀림없이 자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121-122쪽)
이제 맑스가 주장한 노동자 중심의 공산주의나 나치와 같은 극단적 형태의 전체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권위에 대해 생각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법률도 다수만 동의하면 합법적으로 입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법의 지배’(Rule of the Law)의 원칙이 너무 쉽게 무너지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이 책은 대중이 노예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법의 지배 원칙의 중요성도 일깨워주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한쪽의 일방적이고 과격한 주장, 행정편의주의 등에 따라 법의 지배가 확보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와 사회주의가 사회보장, 안전 등의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은가?” “현재 우리는 이미 이런 안정을 추구하다가 영국병, 독일병 등으로 고생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실패를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우리는 지금 1998년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을 경험한 후 ‘사회안전망’ 구축이 그럴듯한 명분이 되고 있고, 이로 인해 공공연금 등 사회보장에 대한 요구는 높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돈이 많이 들고, 이는 결국 현재 혹은 미래 세대의 개인들이 당연히 자유롭게 써야 할 돈을 세금이나 국채의 형태로 진정한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져오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다. 더구나 이런 정책으로부터 혜택받는 계층들이 이를 권리로 여기고, 각 계층은 이를 경쟁적으로 더 많이 요구하며, 정치권에서 이런 정책의 파탄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면서 혜택을 주고 표를 사기 시작하면 이런 정책이 초래할 위험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연 우리는 이런 위험한 길로부터 안전한가?”
하이에크는 직업과 소득의 보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져서 “임금과 가격을 보장하려는 정책이 시행될수록 (가격변화에 따른 끊임없는 조정기능이 마비되어) 고용과 생산이 급변하게 되므로” 경제와 빈곤계층의 삶은 더 불안정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안정을 추구하는 전체주의 계획경제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직업과 위험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마치 현재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설명하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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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체제에서 개인은 기계장치의 톱니에 불과하다. 사회 구성원은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정부의 계획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정부가 부와 명예를 얻는 유일한 통로가 되면 종착점은 전체주의 체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은 기꺼이 독재자의 영도력에 홀린 노예로 전락한다. 유럽에 섬뜩한 핏자국을 남긴 나치즘, 피의 숙청을 자행했던 스탈린 체제는 바로 사회주의와 형제지간이다.
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자유주의가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의 간섭 없이 경쟁에 의해 합의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른 원칙보다 우월하다. 자유주의가 떠받치는 시장 안에서 개인은 스스로 거래상대를 찾고 물건을 자유롭게 팔고 산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결국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경제적 자유는 사상의 자유, 정치적 자유를 지탱하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경제체제의 제약이 느슨해져야 한다"고 선언한다.
‘사회주의’를 단지 이상향으로 수긍하는 한국의 모든 사람들, 특히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가능한 수단(사유재산제의 철폐와 이윤의 철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유의 길인지 아니면 노예의 길인지, 하이에크는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이것이 완화된 형태인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맑스의 이론이 불변의 진리처럼 세상을 흔들 때에 사상의 물줄기를 돌려세우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책이다.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 전후 독일에서 자유시장경제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에르하르트나 미국 레이건의 개혁, 공산권 붕괴 이후 재건중인 동구의 민영화정책 등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이에크의 이 책과 만나게 된다. 헨리 해즐릿(Henry Hazlitt)은 이 책을 20세기에 쓰인 가장 위대한 책 가운데 하나라고 평하였으며, 하이에크와 (화폐)논쟁을 벌였던 케인스(Keynes)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에 가슴 깊이 동의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경제학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경제학자로서 케인스주의적 복지국가관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1974년에 스웨덴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G. 뮈르달과 공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빈대학교에서 법학·심리학·경제학 등을 공부했으며, 192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3~24년에 뉴욕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오스트리아 경제과학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1931년 런던으로 옮겨온 후 런던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에 자리를 얻었고, 1938년에는 영국 시민권을 얻었다. 1950~62년 시카고대학교에서 사회윤리학 교수로 재직했고, 은퇴할 즈음에는 프라이부르크대학교의 종신교수직에 임명되었으며, 잘츠부르크대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하예크의 보수주의적인 견해에 따르면 시장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개입은 인플레이션·실업·경기침체·불황 등과 같은 경제적 불안정을 초래할 뿐이다. 1944년에 그는 〈예종에의 길 The Road to Serfdom〉에서 온건한 점진적 개혁이나 정부의 개입은 궁극적으로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국가적인 재앙을 불가피하게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예크의 다른 저작으로는 〈물가와 생산 Prices and Production〉(1931)·〈순수자본론 The Pure Theory of Capital〉(1944)·〈자유주의 구조 The Constitution of Liberty〉(1960)·〈법, 입법, 그리고 자유 Law, Legislation, and Liberty〉(1978)·〈실업과 통화정책 : 경기순환 주체로서의 정부 Unemployment and Monetary Policy : Government as Generator of the Business Cycle〉(1979) 등이 있다. [본문으로]
- ☞ 케인즈주의 : 고전학파이론의 맹점을 비판하면서 대공황의 타개를 위해 정부가 민간경제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간섭하고 정부지출을 늘려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실업을 없애고 완전고용을 달성 할 것을 제창한 케인즈의 이론 및 그 이론을 이어받은 케인즈학파의 경제이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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