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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논술 교재로 삼국지가 적당할까?

by 언덕에서 2014. 7. 8.

 

 

 

논술 교재로 삼국지가 적당할까?

 

 

 

 

 

 

논술 교재로 삼국지를 추천하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논술에는 고전이 좋다고 한국고전 또 세계명작을 공부시키다가 여기서 업그레이드해서 삼국지를 읽게 하는 논술학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삼국지를 초등학생 용으로 만화로 만든 책도 있습니다. 이유는 남자라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이고 책 속에 세상 모든 인간사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최근에는 조자룡이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밝힌 분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중국에서 온 손님 접대용 멘트로 해 본 농담으로 넘겨야겠죠?

 

 

 

 

 삼국지는 '그냥' 재미로 읽는 책입니다. 제가 볼 때는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콩 같은 내용입니다. 모든 종류의 책이 독해능력 향상과 문장력 향상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만, 특별히 삼국지라는 책이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주장 또는 그것이 논술이라는 시험 준비에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삼국지는 대부분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이 방대한 만큼 완독하는데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한다고 해도 한 달은 족히 걸릴 양입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작가의 의견이 많이 들어 있어 몰입에 방해가 되고, 황석영의 삼국지는 문장이 깔끔해서 '고전의 정수를 맛보며' 읽기 적당하다는 주장 또한 무의미합니다. 삼국지는 나관중 등 중국 작가가 쓴 걸로 추정되는 <삼국지연의>를 국내 작가들이 임의대로 편집, 번역한 것에 불과하기에 내용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굳이 의미를 둔다면 한(漢)나라 멸망 이후 분열된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군벌들의 싸움 주요 내용을 알게 되고, 당시 무장(武將)들과 휘하 장수들의 전설적인 무용담과 지략에 감탄하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역사서와 비교해보면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정사(正史)의 60%정도만 일치하고 나머지는 허구(虛構)인 '지어 낸'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적벽대전에서 제갈 량의 동남풍, 도망치는 조조를 관우가 놓아주는 장면이라든지, 여포를 배신하게 만든 천하일색 초선은 정사에 나오지 않는 그냥 지어낸 허구(픽션)일 뿐입니다.

 그리고 당시 전투는 대규모 보병전(步兵戰)이었으므로 여포나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출중한 무예를 지닌 한 사람이 전투 자체를 좌지우지하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의 전투 장면은 무협지 수준이라고 평가하는 군사 전문가들이 대다수입니다.

 읽는 견지에 따라서는 그런 재미 조차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열 권 분량이 되는 전집 시리즈를 꾸준히 읽다보면 읽기 능력에 도움이 되고, 옛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엿본다는 점에서도 약간의 가치는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행 논술 시험에 획기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언젠가부터 논술을 준비하려면 삼국지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통용되는 것 같은데요. 절대로 공감할 수 없고, 근거도 없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들의 마케팅에 대중들이 놀아난 결과일 뿐입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를 하지 말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이간계, 배신, 권모술수, 속임수, 반역 등의 내용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은퇴한 정치인 김종필씨는 삼국지 속에 인생에서 배워야 할 온갖 이치가 들어있다고 극찬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와 반대의 생각입니다. 삼국지가 어떤 책인가요? 여기에는 천하의 악인도 나오고 충신과 명장도 나옵니다. 특히 여포나 동탁, 이각과 곽사, 조조는 악인의 대명사입니다. 이들이 과연 악인일까요? 그저 한나라 왕조를 그리워 한 중국인들의 바람을 소설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조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문열씨의 발상은 괜찮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번역하면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역사적 인물이나 정치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어느 쪽이든 삐딱하게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유비, 관우, 제갈 량만이 충의지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한결같이 도덕적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가 볼 때는 유비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가장 나쁜 인간입니다. 적벽대전, 형주침입, 관도대전 등 삼국지의 주류를 이루는 전쟁들은 모두 유비의 이간질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처자를 버리고, 따르던 백성을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가는 데는 수준급의 프로 선수이지요. 유비의 욕심에 의해 민초들은 전쟁에 동원되고 몇 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어갑니다. 그는 한 왕조 부흥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자신이 건국한 촉나라의 왕으로 천자를 모시지 않고 스스로가 왕이 되는 후안무치한 인간입니다. 제갈 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삼국지에서 제갈 량이 보여주는 전략이라는 것은 대부분 이간질입니다. 유비 사후, 위나라의 1/10도 되지 않는 국력으로 중원 정벌을 시도하다가 사망하고야 마는 과대망상증 환자입니다. 그가 후계자로 키운 강유는 무모한 병력 배치로인해 촉나라를 멸망하게 만듭니다. 능력을 바탕으로 살아가야 할 디지털 시대에 삼국지를 통해 인간 사회의 저속하고 비열한 처세술을 배운다면 그 학생들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오히려 이병주의 ‘지리산’이나 ‘관부연락선’조정래의 '아리랑', 최명희의 ‘혼불’ 박경리의 ‘토지’등이 재미를 비롯한 역사 공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나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 같은 대하소설도 같은 예로 들 수 있겠지요. 삼국지를 읽으며 여타의 다른 책들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미와 감동을 찾는 건 가능하겠지만, 특별히 논술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옮긴이가 누군지 관계없습니다. 삼국지와 논술을 연결하여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인식은 몇몇 신문기사와 출판사의 광고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 신문사 신문과 출판사의 책은 앞으로 안보고 싶습니다.

 

 

 


 이문열의 삼국지가 유명한 이유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이문열씨가 옮겼기 때문이고, 오랫동안 엄청나게 많이 팔렸기 때문입니다. 이문열씨는 중간 중간에 해설 비슷한 촌평을 많이 적어 넣었는데, 대부분 조조에 대한 재해석이 많습니다. 이문열씨는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조조를 설정하고 있는 듯합니다. 조조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참모들의 의견을 중시하는 CEO적인 모습으로 전쟁을 치루었으며 천하의 인재들을 아낌없이 우대했습니다. 조조 중심의 이야기는 삼국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특별한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동의할 수 없는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삼국지를 번역할 때 많은 것을 건드리더라도 유비의 정통성과 관우의 의리를 건드리지 마라는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인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일정부분 이문열씨의 견해에 따라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있겠죠. 조조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전쟁 수행 능력 외적인 부분에서는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면이 많은 인간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몰입을 방해한다거나, 독자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문열씨는 삼국지의 원작자가 아니라 옮긴이니까요.

 

 

 

 

 황석영씨의 삼국지는 대부분의 중화권에서처럼 유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한나라 이후 북방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2000년 동안 역사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중국인들은 이민족과 가까웠던 조조보다는 한 나라 왕족 출신인 유비를 좋아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유비는 권력의 기반 없이 맨손으로 군벌이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은 유비에 후한 점수를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황석영씨는 라이벌인 이문열씨를 의식해서 원전에 충실하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유비의 부하인 관우나 장비가 보여주었던 의리나 제갈 량이 숭상했던 법가주의도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유비는 황제가 되겠다는 허망한 꿈 하나로 중국 대륙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어 민초들을 도탄에 빠지게 만드는 나쁜 인간입니다. 처자식 버리기도 밥먹듯 하지요.  

 박태원, 박종화, 김구용, 김광주, 정비석, 황석영, 이문열, 김홍신, 장정일, 조성기, 황병국 등 유명 소설가들이 삼국지를 다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삼국지라는 책이 한국에서 여전히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또 어느 정도 반열에 오른 한국 작가들은 삼국지를 옮김으로써 그러한 입지를 확인하는 의미로 삼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 결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삼국지’는 상당 부분이 비뚤어진 한족 우위 의식과 편협한 중국 민족주의를 안주 삼아 쓰인 책입니다. 동북공정이란 것도 사실은 본질적으로 비슷합니다. 잘못 읽으면 문화적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게끔 만드는 책입니다. 스펀지처럼 흡입력이 강한 어린 학생이 읽을 경우에는 독이 되는 책입니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디지털과 인터넷 비즈니스의 시대이고, 정보통신전쟁의 시대입니다. 세계는 완전경쟁과 무한경쟁에 돌입해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나관중 삼국지(삼국지연의)>로 처세나 전략을 배워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이간계를 가지고 세계무대를 누빈다거나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 경쟁력도 망치는 길입니다. 매사에 성실과 실력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 정답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