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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서산에 매실이 다 익었다

by 언덕에서 2014. 7. 16.

 

 

 

 

서산에 매실이 다 익었다

 

 

 

마조 선사

 

 

 

 

옛날 대매(大梅) 선사는 스승 마조(馬祖)를 친견하고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자네의 마음이 바로 부처다(卽心卽佛).”

 이 말에 대매는 크게 깨달았다. 그는 대매산에 올라 그곳에서 사십 년 동안 내려  오지 않았다. 이때 염관(鹽官) 화상이 법문(法門)을 열었는데 제자 한 사람이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다. 산중에서 한 사람을 만났는데 풀잎을 엮어 몸을 가리고 머리는 뒤로 해서 하나로 묶은 남루한 행색의 산사람이 오두막집에 살고 있었다. 길 잃은 중이 물었다.

 “여기서 몇 년을 사셨습니까?”

 그러자 숨어 살던 대매가 대답하였다.

 “글쎄, 몇 년이나 됐을까, 오직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가 노래지고 다시 푸르렀다가 노래지는 것을 보았을 따름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산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삼십 여 년 전 나도 한때 마조 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길 잃은 중이 물었다.

 “마조 대사에게서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마음이 곧 부처.”

 그리고 중이 하산하는 길을 묻자 대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물을 따라 흘러가시오(隋流而去).”

 대매가 가르쳐준 대로 흘러가는 물을 따라 무사히 회중으로 돌아온 길 잃은 중은 스승 염관 화상에게 산중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고하였다. 이에 염관이 말하였다.

 “내 기억으로 강서에 있을 때 어떤 중이 마조 스님에게 불법을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조 스님은 ‘자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대답을 해주셨는데 그 후 삼십 년 동안 그 사람의 행방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네가 산에서 만난 그 산사람이 아마도 그 사람인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염관은 몇 사람의 제자를 불러 놓고 산에 다시 들어가 그 산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 주었다.  염관의 명을 받은 제자들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대매를 만나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즈음엔 마조 스님께서 좀 달라지셨습니다. 예전에는 ‘마음이 곧 부처’ 라고 말씀하셨는데 요즘에는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에 대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늙은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버렸나 보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드는군. 그러나 그 늙은이가 그렇게 바꾸어 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로지 ‘즉심즉불’ 즉 ‘마음이 곧 부처’일 뿐이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스승 마조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산에 매실이 다 익었다(梅子熟也). 가서 마음 놓고 따 먹어라.”


 여기서 서산의 매실이란 바로 대매산에 살던 대매 선사를 이르는 은어인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흘러간다고는 하지만 진리는 변치 않는다. 세월에 따라 진리가 변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다.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진리가 ‘즉심즉불’에서 ‘비심비불’로 변한다면 그것은 유행이며 하나의 사조(思潮)에 불과한 것이다. 21세기의 새 천년이 온다고 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진리가 퇴화되거나 거세되거나 변화된다면 이는 하나의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컴퓨터를 통한 쓸데없는 엄청난 정보의 쓰레기들로 인해서 인간의 가치관은 한층 복잡해지며 따라서 보다 분명하고 확실한 가치관의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 최인호 저 <가족 7(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 79 ~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