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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문화운동가의 도서관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by 언덕에서 2014. 7. 3.

 

 

 

문화운동가의 도서관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이 책은 전방위 인문학자 도정일의 산문집으로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과 함께 세트로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쓰잘데~ '가 1편이고 이 책은 2편인 셈이다. 소위 ‘도정일 문학선’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산문집 두 권은 저자의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와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이 출간된 지 이후 발간된 단독 저작이다.

 

 

 

 

 이 두 편의 책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신문, 잡지 등에 발표된 도정일 산문의 정수를 엮은 것이다. 20여 년 동안 씌어진 글들을 한 권, 한 권으로 묶은 까닭에 글꼭지 말미에 발표지면과 시점을 밝혀놓았다. 이 책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에서는 그의 ‘목록’ 중 일부가 좀더 구체적으로 집약하여 제시되고 있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라는 표제는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여자’인 괴테의 어머니 회고록에서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책과 이야기의 개인적, 사회적 효용을 ‘문학적’으로 역설하는 두번째 산문집은 저자가 문화운동가로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키고 ‘기적의 도서관’을 짓는 일에 몰두해온 맥락과 함께 읽히기도 한다.


괴테의 어머니는 밤마다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하늘의 별들 사이에 이야기의 길을 만들고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사람이다. 생각해보니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천지만물 사이에 이야기의 길을 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도 많다. 이 산문집은 그분들에게 보내드리는 내 마음의 인사다. _서문에서


 도정일 교수는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2000년대 들어 시장유일주의와 시장전체주의가 퍼뜨리고 있는 행복 지상주의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사람들 사이에 공포와 선망의 분위기가 퍼졌다”며 “그것이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공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 삶 자체를 의미 있게 하는 인문학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대중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 교수가 말하는 인문학의 대중화는 최근 유포되고 있는 ‘행복의 인문학’ 같은 담론들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인문학은 행복을 주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인문학적 사유는 오히려 ‘내 삶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어떤 근거에서 내 삶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것이죠. 지금은 행복이 이데올로기가 돼 사람들을 불행 속으로 밀어넣고 있어요.” 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문학은 그러한 인문학적 사유의 핵심이다. 도정일 교수는 “인간과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지상의 별이다. 이 별들을 다 연결해야 한다. 지상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일은,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만드는 것,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이 문학이고, 인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2001년 6월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시민단체의 명칭에서 드러나듯 이 운동은 두 가지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하나는 전국 공공도서관의 연간 도서 구입비를 대폭 증가시켜 도서관의 내실을 탄탄하게 다지는 일이고 또하나는 ‘책 읽는 사람’ ‘책 읽는 가족’ ‘책 읽는 사회’의 문화를 가꾸어가는 일이다. 도서관을 짓고, 도서관에 충분한 장서를 공급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책 읽는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고 동시에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한 사회의 물질적·정신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모든 것의 뿌리는 같고,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생태학의 통찰이고 동양의 세계관이라면, 책은 나와 나 아닌 것을 연결해주는 가장 오래된 공감의 매체이다. 책이 공생의 도구이고 책 읽기가 공생의 습관이라는 건 실험을 통해 한차례 증명된 바 있기도 하다. 미국 예술기금위원회가 2002년에 실시한 ‘미국인의 예술 참여도’ 조사를 보면 문학 읽기의 사회적 의미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문학 독자들의 사회적 자선활동 참여율이 43%임에 비해 비독자의 참여율은 17%에 그쳤고, 음악회에 가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하는 등 인접 예술 영역에 대한 참여도 역시 문학 독자가 비독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P83).


 2001년 8월 시카고 시가 ‘함께 읽을 한 권의 책’으로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하고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선 것은 시카고의 모든 시민이 인종 차별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설정하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시카고의 책 읽기 사례를 소개한 저자의 칼럼(『씨네21』 2001년 9월 11일)을 읽은 당시 MBC의 김영희 PD는 2001년 말 〈느낌표〉 프로그램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꼭지를 구상했다고 한다. 이 코너는 2003년 말 폐지되기까지 25권의 도서를 선정해 범시민 독서운동을 이끌었고, 순천, 제천, 진해, 청주, 제주, 서귀포 등지의 기적의 도서관 설립 과정을 중계해 책과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의식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 들려주기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아들과 자기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을 괴테의 어머니는 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어머니가 반응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극받는다. 이 자극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즐거운 일이게 한다.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이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반응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_ p17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중에서


 

 

 



도정일(1941 ~ ) : 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문화운동가.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 2006년 대학에서 퇴임했으나 2010년 다시 대학으로 복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으로 학부 교양교육을 쇄신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어린이 전문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 11개 도시에 건립했고 2006년 이후 80개 농산어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했으며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주도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