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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전방위 인문학자의 사상 전반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by 언덕에서 2014. 6. 24.

 

 

 

 

전방위 인문학자의 사상 전반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오늘 소개하려는 책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신문, 잡지 등에 발표된 도정일 산문의 정수를 엮은 것이다. 평소 다독에다 속독인 나는 이 책을 받아 들고 이틀만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두 달이 걸리고 말았다. 편히 읽어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깊이 숙고하며 읽어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20여 년 동안 씌어진 글들을 한 권, 한 권으로 묶은 까닭에 글 꼭지 말미에 발표지면과 시점을 밝혀놓았다.

 도정일은 “지금쯤 우리는 쓰잘데 없어 보이는 것들, 시장에 내놔봐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돈 안 되고 번쩍거리지 않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시궁창에 버려진 것들의 목록을 만들고 기억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그것들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시 챙겨봐야 할 때가 아닌가?”라며 1권 표제의 의미를 전한다.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는 전방위 인문학자의 사상 전반이 총론처럼 제시된다.

 도정일은 산문집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 그 표제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그 목록을 당신과 내가 앞으로 끊임없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완의 목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고 썼다. 그럼에도 산문집을 읽다가 ‘저자의 목록’을 은연중에 발견하게 되었다. 표 나지 않게 드러나 있는 산문집 속 ‘도정일의 목록’은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장과 수사와 어우러져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베르제 선생의 강아지는 하늘의 푸르름을 쳐다본 적이 없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남긴 말이다. 물론 강아지들을 비하하기 위한 주장은 아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세상에 대한 한 마디였다. 도정일 교수의 깊이 있는,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느새 '여름저녁의 노을, 눈 내린 숲의 아름다움'보다는 '돈 되는 일'에만 꽂혀 사는 모습에 대한 일깨움으로 가득 차 있다. 베르제 선생의 강아지 이야기도 그 안에 담겨 있는 한 토막이다.

 '정신을 작은 상자에 가두는 교육'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자라는데 왜 시간이 걸리고 과일은 왜 천천히 익고 씨앗들은 왜 겨울 눈 더미와 지층 사이에서 서서히 싹 틔울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이걸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 도정일 교수는 시인 정현종의 표현을 빌려 '짐승스러운 편리의 노예'라고 부른다.

 그는 책 읽기운동을 펼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머리에서 무엇이 과연 나오겠는가라는 이야기다. 오래 전 시인 김수영도 "신문만 읽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는가?"라고 탄식한 바 있다. 여기서 방점은 '신문'이 아니라 '신문만'이다. 단명하기 짝이 없는 정보와 들뜬 여론의 껍데기를, 마치 알지 않으면 뒤쳐질 세상의 대세로 인식하게 만들고 생각의 작동을 점차 마비시키는 대중매체의 늪에 빠져 있는 현실에 대한 질타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입시 위주의 공부만 해 온 대학생들의 책읽기 능력 저하로인해 지적 능력이 정체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비극은 가슴을 써늘하게 만든다. 그는 이렇게 학생들이 계속 책을 읽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한다. 

 성서에는 한 율법학자에 대한 예수의 비유가 나온다. 예수는 하나님나라란 잘 훈련된 율법학자와 같다면서, 그는 자신의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가려내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누구의 눈에나 새것과 낡은 것이 어느 것인지 자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도정일 교수는 쓰잘데없어 보이거나 시장에 내놔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 돈 안되고 번쩍거리지 않지만 삶에 소중하고 고귀한 것들을 챙겨 봐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은 무슨 훈련을 하고 있을까? 혹시 베르제의 강아지를 기르는 일에 온통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쓸모 있는 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내팽개쳐놓고, 진즉에 버려야 좋은 것을 고귀하다고 추앙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을까?

 

 

김해시 '기적의 도서관' 내부


 유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들의 관심권 밖으로 멀어진 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들 머릿속에서는 쉽게 잊혀졌지만 우리네 가슴이 언제나 그리워해온 것들은 무엇일까? 한두 가지가 아니라면 그것들을 목록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으로나마 나의 목록, 너의 목록, 우리의 목록을 생각해보는 일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적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활동’이 되지 않을까? 산문집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너도 살고 나도 살고”라는 1970년대 반전 운동가들의 구호처럼 우리 함께 ‘공생의 수단’을 모색해보자는 제안으로 읽혀졌다.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대표적인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이다. 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詩다. (중략) 자라는 아이들에게 맨 먼저 가르치고 배우게 해야 할 삶의 방식이 공생의 원리다. 그러나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동네 도서관을 드나드는 아이들은 도서관이 바로 그런 공생의 공간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다. 도서관이 모두 함께 사용하는 공공의 장소라는 인식, 도서관 자료들은 나만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 자료와 기물을 아끼고 소중하게 다루는 태도, 상호 존중과 예절이다. 이런 것들을 아이들은 도서관 드나들며 깨치고 배운다. 자기가 재미있게 읽은 책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같이 읽고 이야기하면서 즐거움을 공유한다. 도서관엘 처음 와보는 아이들도 또래 아이들이 열심히 책 읽는 걸 보면 덩달아 책을 읽게 된다. ‘모방 효과emulation effect’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공생의 훈련이고 경험이며 실천이다. 그런 훈련과 경험과 실천이 아이들을 위한 생략할 수 없는 성장의 과정이라면, 도서관은 성장의 필수 도구다. 거기서부터 공생의 철학을 체득한 ‘인간’이 자란다. _「공생의 도구」중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공공도서관 수에 있어서 OECD회원국 가운데 영광스럽게도 꼴찌다. 이웃 일본은 2585개, 독일은 6313개, 미국은 8964개이다. 인구 대비 수치로 보면 우리는 4500만 인구에 도서관이 400개니까 약 11만 5000명당 도서관 하나라는 셈이 나온다. 핀란드는 인구 3000명당 도서관 하나이고 덴마크는 4500명, 독일은 3900명, 미국은 2만 6000명에 도서관 하나다. 우리의 공공도서관은 양과 질의 두 수준에서 개선되고 개혁되지 않으면 안된다.

 2001년 도정일은 시민단체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설립하면서, MBC 〈느낌표〉 프로그램과 함께 ‘기적의 도서관’을 세우는 운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서관운동에 뛰어든다(현재 서울시 도봉구에 12번째 기적의 도서관이 세워지고 있다). 도서관은 그때부터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로 붙어 다니기 시작한다. 도서관은 ‘책 읽는 사회’ ‘생각하는 사회’ ‘공생의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위한 기본 인프라 중에서도 핵심에 속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문제의식이다. 여기까지가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이라면, 그는 그 인식을 실천으로 연결하기 위해 ‘도서관 빈곤국’인 한국 사회 곳곳에 도서관을 짓고,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을 벌이고, 각종 독서프로그램을 지원해온 것이다.

 

 

 

▲ 순천기적의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문화활동이 전개되고 여기에서는 자원활동가들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

 


포스팅이 길어졌다. 요약해보겠다.

 “의미, 희망, 정의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지주와도 같다”면, 돈 안 되고 무용하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진 것들 그래서 쓰잘데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그 세 개의 지주를 떠받치는 토양과도 같다. 그 토양이 일극 체제 아닌 풍요로운 다양성의 체제일 때, 쓸쓸해도 좋고 여유로워도 좋은 느림의 체제일 때 비로소 ‘두터운 세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계’도 가능할 것이다. 글 꼭지 하나하나는 각각의 시점과 맥락에서 읽히기도 하지만 시차를 뛰어넘어 “지금은 쓰잘데 없는 것들의 소중함과 고귀함을 다시 챙겨봐야 할 때”라는 선언 하나로 묶이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한 시대에 대한 나의 존재 증명” 같다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애틋하다”고 소회를 털어놓은 저자는 독자들과 함께 ‘쓰잘데 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좋은 책이다. 인문학의 부재와 공생의 가치를 깨닫게 하기에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