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 장편소설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
미국 소설가 하퍼 리(Harper Lee.1926∼)의 장편소설로 1960년에 출판되었다.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출판 즉시 큰 인기를 모았으며, 현대 미국 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이 소설은 작가가 10세 때인 1936년에 그녀의 마을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과 작가가 가족과 이웃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내용 전개는 비교적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경제공황기에 존경받는 변호사 핀치가 백인여성을 폭행한 혐의를 받는 흑인 남성 로빈슨을 변호하면서 핀치의 가족과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핀치의 어린 딸 스카우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1931년에 일어났던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앨라배마 주로 가던 화물차 안에서 흑인 청년과 백인 청년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흑인 청년들은 체포되고 백인 여성은 거짓으로 흑인 청년들이 자신들을 강간했다고 주장한 나머지 무려 20년이나 법정 공방이 계속된 유명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순히 미국에 국한된 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흑백 갈등을 둘러싼 인종 문제는 좀 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옮긴이는 “뛰어난 문학 작품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작품도 구체성과 보편성, 특수성과 일반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했다.
리의 소설은 최소 30개의 신문과 잡지에 감상문이 실렸고, 폭넓고 다채로운 평가가 나왔다. 2001년에는 시카고 시가 전개한 독서 운동에서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영국 사서들이 매긴 책 순위인 ‘모든 어른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 1위에 선정되었으며, 이 순위에서 2위는 성서였다. 이 책은 1962년에 동명(오스카상을 수상한 영화)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앨라배마주의 작은 도시가 배경이다. 핀치의 어린 딸 스카웃(메리 배드햄 Mary Badham)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대공황 시기 앨라배마주의 한 마을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 흑인을 애티커스가 변론한다.
두 아이를 키우는 홀아비 변호사인 애티커스는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흑인 로빈슨의 변호를 맡는다. 그의 무죄를 믿는 애티커스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백인들의 편견과 집단 린치로부터 그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빠를 깜둥이 애인(nigger-lover)이라고 놀려대자 스카웃은 아빠에게 왜 흑인을 변호하느냐고 묻는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지역을 대표해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재판에서 이길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애티커스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 모든 변호사는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게 마련이란다. 내겐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 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애티커스는 스카웃과 오빠 젬에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앵무새는 인간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그저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를 뿐인데, 이런 앵무새를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흑인 문제 같은 편견이 개입되면 이성을 가진 사람들마저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날뛰고, 그래서 톰 로빈슨처럼 이 세상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죄 없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혹은 부주의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애티커스가 법정에서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만, 백인들로만 구성된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리고, 절망한 로빈슨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도중에 도주하다가 사살되고 만다.
『앵무새 죽이기』는 근본적으로 1930년대의 미국 남부라는 독특한 배경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와 1930년대 인종 차별 및 소수 집단이 겪었던 고통을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스카웃이 소설의 화자로, 이야기는 여섯 살부터 아홉 살까지의 스카웃의 생활에 관한 것이지만, 어른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스카웃은 말괄량이 소녀로, 문제가 있으면 머리보다는 주먹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인간의 본성, 자신에 대한 사회적 기대,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 등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그 중 가장 주된 에피소드는 스카웃 의 아버지 핀치 변호사가 백인 여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흑인 로빈슨의 변호를 맡는 내용이다. 핀치는 마을 사람들의 비난과 집단린치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하지만, 백인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리고 만다.
남부 고딕 소설이자 ‘교양소설’(Bildungsroman)로서, 『앵무새 죽이기』의 기본적인 주제는 인종 차별로 인한 불의와 무죄한 자의 죽음이다. 학자들은 리가 미국 최남부 지방(Deep South)의 계층 문제, 용기와 연민, 성 역할에 대한 주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았다. 여러 영어권 국가에서는 관용을 강조하고 편견을 비난하기 위한 수업을 할 때 이 책을 학생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에도 불구하고, 『앵무새 죽이기』를 공적인 교실에서 다루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책이 자주 인종차별적인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흔히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일부 독자들은 소설에서 등장하는 흑인 인물에 대한 대우가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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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는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퍼 리가 성장했던 먼로빌은 소설의 무대인 메이콤의 모델이 되었으며, 소설 속의 주요 인물인 부 래들리는 실제로 이웃에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스카웃의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는 아버지를 모델로 했다고 작가 자신이 밝혔다.
제목 '앵무새 죽이기'는 극중에서 아이들이 앵무새 사냥을 하려는 것을 가리킨다. 핀치는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일깨우는데, 여기서 앵무새는 힘없는 유색인종이나 소외받는 가난한 사람 같은 약자의 상징이다.
소설 속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밤중에 오빠와 함께 변호사 아빠를 만나러 간 딸 스카우트는 군(郡) 교도소에 갇힌 흑인을 직접 처벌하려고 몰려든 백인 사내들과 이 흑인을 변호하는 아빠가 교도소 밖에서 대치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스카우트는 여름날 밤에 모자까지 깊숙이 눌러쓴 정체 모를 사내들 속에서 친구 아빠 커닝엄 아저씨를 발견하곤 말을 건넨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모르시겠어요?… 월터는 착한 아이죠… 안부 좀 전해주시겠어요?"
어색하게 말을 듣던 커닝엄은 결국 "그 애한테 안부 전하지"라며 주위 사내들에게 "자, 여기를 떠나세"라고 말한다. '이름'의 위력이란 이런 것이다. 자기 정체가 드러나면 개인은 보다 책임 있게 행동하고, 사회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면을 쓴 개인은 자신의 정체·자아를 잃고 야만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문학 작품 가운데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91년 'Book of the Month Club' 과 미국 국회도서관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이 책은 성경 다음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바꿔놓은 데 이바지한 책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 작품의 주제가 ‘차이’와 ‘관용’에 대한 문제 의식을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미국이 대내외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정치경제적 문제들은 일견 모순적이며 우리나라의 상황 역시 예외라고 할 수 없다. ‘차이’에 대한 인정과 ‘관용’의 문제를 제기한 하퍼 리의 소설을 허구로서의 문학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놓음으로써 계속해서 앵무새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하퍼 리 (Harper Lee, 1926~)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출신으로 항공사에서 일하다 친구들이 1년치 급여를 지원해 줘 글쓰기에 전념했다. 처녀작 『앵무새 죽이기』로 일약 대중적작가로 성공하며 퓰리처상까지 거머쥐었으나 그 뒤 다른 작품은 쓰지 않고 평생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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