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외국 현대소설

토마스 모어 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

by 언덕에서 2014. 7. 29.

 

 

 

 

토마스 모어 공상소설 『유토피아(Utopia)』

 

 

 

영국의 사상가이며 인문주의자인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 ~ 1535)가 1516년에 라틴어로 쓴 이야기 형식의 '정치적 공상소설'로 정식 제명은 <사회의 가장 좋은 정치체제에 관하여, 그리고 유토피아, 새로운 섬에 관한 즐거움 못지않게 유익한 황금의 저서>이라는 기나긴 제목이다.

 가공의 인물 휴트로에우스가 신세계에서 보고 들은 가공의 나라들, 특히 유토피아(어느 곳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에 대해 모어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당대 유럽 사회를 비판한 제1권과, 이상적인 사회인 유토피아를 묘사한 제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유럽 군주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영토를 늘리는 데에만 전념하였다. 반면, 민중은 '인클로저'에 의해 땅을 빼앗기고 심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국가나 법률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부자들의 공모'에 의한 사물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가들은 분석한다. 이 소설에서 유토피아에서는 시민을 평등하게 대하고, 화폐도 없으며, 공유재산제가 베풀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토마스 모어는 왜 이런 소설을 만들었을까?

 이 작품은 유쾌한 이야기 형식을 빌려 당시의 부패한 그리스도교 사회의 개혁과 재생을 정치가·지식인에게 호소하고 있다. 요즘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인기인 것처럼 당시에도 참된 공공성과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에게는 가장 시급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이후 유토피아는 일반적으로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고, 유토피아 문학의 장르를 창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히스로디라는 선원으로부터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의 제도ㆍ풍속 등을 들은 것을 기록하는 형식으로 이상사회를 묘사하기 시작한다. 당시의 유럽의 군주들은 자신의 재물이나 영토를 증대시키는 일에만 전념하며, 군주들에게 땅을 빼앗긴 민중들은 소나 말보다도 더 극심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간접적으로는 당시의 유럽, 특히 영국사회의 현상임은 물론이다. 이 공화국에서는 전시민이 교대로 농경에 종사하는데 노동시간은 6시간, 여가는 교양시간으로 돌리며 필요한 물품은 시장의 창고에서 자유로 꺼내 쓸 수 있다. 이상적인 공산사회ㆍ문화국가가 묘사되고, 종교상의 관용과 교육의 평등 등이 존재한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여러 악의 근원으로 화폐경제ㆍ사유재산제가 지목되는데, 이와는 달리 유토피아에서는 시민은 평등하며, 화폐가 존재하지 않고, 재산공유제가 시행되고 있다. 모든 인간이 노동하기 때문에 적은 노동시간으로 충분하며, 여가는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사용한다.

 그 내용은 여러 가지이지만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종교적 관용ㆍ평화주의ㆍ남녀교육의 평등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단지 여섯 시간밖에 일을 하지 않으면 필수품이 부족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노동시간만으로도 생활필수품뿐 아니라 편의품까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전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거의 일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자가 열심히 일하는 경우에는 남편이 빈둥거리곤 합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이라든지 소위 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습니다. 여기에 신사나 귀족이라고 불리는 지주들을 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붙어먹고 살며 뻐기고 돌아다니는 깡패 같은 시종들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힘 좋고 건장하면서도 병을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걸인들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74

 

 

 

 이 작품은 근대소설의 효시로 간주되며 사회사상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당시의 영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열렬한 가톨릭적 신앙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국가나 법률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부자들의 공모’에 의해서 사유물화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책 이름 ‘유토피아’란 희랍어 ‘ou(無)'와 ’topos(장소)‘를 합성한 말로, '아무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책이름을 전연 근거 없는 가상의 장소로 한 것과 물론 영국인이면서 영어로 쓰지 않고 라틴어로 쓴 것은 당시의 정치적인 문제를 비판하려는 데 다소의 카무플라주(Camouflage)를 기도한 듯하다. 때문에 사실상 <유토피아>는 그 당시로서는 다분히 사상적으로 문제를 삼을 만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유토피아문학의 실질적인 시작이고 모델이다. 유쾌한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서 당시의 부패한 그리스도교사회의 개혁과 재생을 정치가ㆍ지식인들에게 호소한 이 작품은 진정한 공공성과 정의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인문주의자의 외침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유토피아는 일반적으로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고, 또 유토피아문학 장르의 창시로서 후대 문학에 영향을 주었다. 모어는 이 작품에서 모든 문학 행위의 기본적인 충동이기도 한 이상 세계에 대한 저항과 현실 세계에 대한 비판을 구조적 원칙으로 삼아 그 둘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  

 

 

 유토피아는 중세적 사회질서에서 근세적 사회질서로 옮아가는 재편성의 시기를 맞아, 또는 거기에서 생기는 사회 모순에 대한 단적인 반성으로서, 또는 근세 과학기술 문명의 양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생긴 것일 지도 모른다. 전자의 예로는 종교개혁 사상 가운데 가장 과격파인 '천년지복설'의 비전을, 후자의 예로는 <뉴아틀란티스>를 각각 그 전형으로 들 수 있다. 이들 유토피아의 비전은 또한 18∼19세기의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의 이상사회의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구와 마찬가지로 동양에도 낙원에 대한 두 가지 상상이 있었다. 하나는 공자가 오매불망 꿈꾸었던 요순(堯舜)이나 주공(周公)이 다스렸다던 유교적 이상향이고, 다른 하나는 귀거래(歸去來: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감) 연후에나 귀의할 수 있는 무릉도원이다. 보통 도연명의 귀거래와 무릉도원을 따로 떼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자의 낙원은 공적이고, 도연명의 낙원은 사적이다. 하지만 서구의 유토피아는 실패한 공산주의의 합리성을 이야기하는 듯하여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16세기 영국, 모어의 눈으로 본 악덕의 세계와 얼마나 다를까?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인들의 눈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부자를 찬양하고, 좋은 옷이 자신의 자존감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며,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돈의 맛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대는, 악몽 속의 공간이다. 그 악몽에서 깨어난 자들만이 유토피아를 진정으로 꿈꿀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