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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인문학만이 희망이다 『희망의 인문학』

by 언덕에서 2014. 4. 8.

 

 

 

인문학만이 희망이다 『희망의 인문학』

 

 

 

 

 

 

미국의 언론인이며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방문해 한 여죄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할까요?"

라는 쇼리스의 질문에 비니스 워커라는 이 여인은

 "시내 중심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정신적 삶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죠"

라고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연주회와 공연, 박물관, 강연과 같은 '인문학'을 접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깊이 있게 사고하는 법, 현명하게 판단하는 법을 몰라 가난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때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문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1995년 노숙자, 빈민,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최고 수준의 교수진들이 모였고, 20명의 예비 수강생 중 13명이 강의를 신청했고,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갔다. 끝까지 강의를 들었던 17명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직에 성공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언어표현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도 도입돼 점차 확산되고 있는 이 '희망의 수업'의 창시자 얼 쇼리스가 클레멘트 코스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 자율적이고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한다. 

 위의 내용을 담은 이 책 『희망의 인문학』은 얼 쇼리스의 생각과 삶의 결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한 그의 배려와 열정, 그리고 놀라운 실천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클레멘트의 기적은 결코 기적처럼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고, 그 자리에 부자들의 담론인 ‘노동연계복지’를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 형태의 교육과정들이 들어서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과정이 직업훈련으로 대체돼가는 이런 현상은 클레멘트 코스가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존의 사회복지정책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면 인문학이 이렇게 자본주의의 논리 하에서 홀대받는 마당에 왜 굳이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국가가 어떤 이유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될 때마다 쓰는 방법은 항상 똑같았다.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복지정책이 이런 식으로 흐르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란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른 존재, 즉 능력이 부족하거나 별 가치가 없는 사람들, 또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가진 존재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클레멘트 코스는 빈민들을 동원해 훈련시키는 대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힘을 밑천으로 자존감을 얻고,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며 더 나아가 ‘행동하는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의지를 심어주는 것은 공공근로와 같은 사회적 일자리나 빈민을 위한 소액대출 같은 제도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직접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빈민들이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해줌으로써 직업 훈련의 효과를 준다. 쉽게 말하면, ‘하루 먹을 물고기’가 아닌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얼 쇼리스에 의하면 이것은 일종의 의식의 혁명이며, 시민으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의 시작이다. 이를테면, 시장의 논리와 부자들의 담론을 넘어우리나라에서도 클레멘트 코스는 진행되고 있다. 2005년 3월 광명시평생학습원의 광명시민대학(창업경영학과)을 시작으로 2005년 9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의 성프란시스대학이 개설됐으며, 2006년에 새롭게 두 곳이 더 생겨났다.선,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는 가장 부드러운 혁명인 것이다.

 

 

 

 

클레멘트 코스에 의한 평택지역자활센터, 평택대학교와 손잡은 저소득층 인문학 강좌

 


 

 

 

성 프란시스대학 노숙인 인문학 과정 입학식

 

 지은이 얼 쇼리스는 인문학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무력의 포위망’에서 벗어나 일상을 자율적이고 자신감 있게 새로 시작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말한다. 인문학을 통해 생활에서 이런 태도를 갖게 된다면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 맺을 수 있고 이런 자율성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권력(force)을 벗어나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정당한 힘(power)을 얻어 윤리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배우는 것, 인문학을 통해 성찰적 사고를 키우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재활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인문학은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우리가 틀에 박힌 삶의 틀을 깨고 인간적인 삶,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 담긴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인간으로서의 삶과 가치에 대한 자각은 최하층 빈민들보다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과제이기도 하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의 대부분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며, 그 자리에는 직업훈련 프로그램 형태의 교육과정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처럼 인문학이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소통하지 못할 지라도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저자 얼 쇼리스는 말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지, 역경을 견디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것, 성찰적 사고와 자율성을 몸에 익히고 공적 세계와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사례들을 통해 인문학이 보여주는 그 무한한 가능성을 읽는다. 돈이 되거나 밥을 주지는 못 하겠지만,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궁금한 것은 인터넷의 검색창이 알려줄 수 있겠지만, 인생 전체에 대한 질문과 지적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위기를 이야기해도 인문학을 읽는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얼 쇼리스(Earl Shorris : 1936 ~ )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설자이자 자문위원회 위원장. 시카고대 출신으로 젊은 시절 한국에서 군 생활을 한 적이 있다.1972년부터 미국 잡지 ‘하퍼스 매거진’ 편집장을 지냈다. 일흔을 앞둔 최근까지 클레멘트 코스가 도입되는 국가를 찾아 강연을 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저서 ‘희망의 인문학’이 번역, 출간됐다.

 시카고대학교에서 공부하였으며, 언론인, 사회비평가, 대학강사,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1972년부터 '하퍼스'지의 편집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뉴 아메리칸 블루스』, 『위대한 영혼의 죽음』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