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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강석경 단편소설 『숲 속의 방』

by 언덕에서 2014. 1. 23.

 

강석경 단편소설 숲 속의 방 

 

 

 

강석경(姜石景,1951∼ )  의 중편소설로 1985년 발표되었다. 제1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이분법적 논리에 갇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제3의 시각으로 노출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 동안 무시되었던 제3의 삶,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삶이 가진 진실을 보여준다. 강석경의 문학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는 때 묻지 않은 인간 가치가 어떻게 속물적이고 허위적인 가치에 의해 파괴되는가를 날카로운 의식의 눈으로 끝까지 무섭게 추적하고 있다. 때문에 제도적이고 일상적인 표피로 들어가 그 속에 숨어 있는 진리의 숨결을 포착하기 위해 시적(詩的)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느 점을 알 수 있다.

 부잣집 막내딸이자 대학 신입생 소양은 음악을 좋아하고 꽃과 향초 모으기가 취미다. 강단도 있어 카페에서 버젓이 담배를 꺼내 피기도 한다. 여성 흡연이 못마땅한 주인이 담배를 꺼달라고 요구하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맞서는 것도 예사다. 대학 입학 초엔 시위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이내 시위에서 빠졌고 휴학까지 했다. 밤새 종로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방황한다. 언니 미양이 나서 동생이 방황하는 이유를 캔다. 운동권 친구가 전해준 소양의 말은 이렇다. “(학생) 운동하는 건 좋은데 다른 고통, 갈등도 포용하고 인정해야 한다. 너희만 의식 있는 인간이고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너희가 대항하려는 체제만큼 비인간적이다.”

 

 

소설가 강석경 (姜石景,1951∼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양'은 가족들 몰래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외박을 하는 등 방황을 한다. 휴학한 사실을 뒤늦게야 안 가족들은 밤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소양을 기다리나, 어머니는 자신만의 현실을 걱정한 채 외박한 딸에 대한 염려라든가, 허락 없이 자진 휴학을 해버린 자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한다. 아버지는 사내랑 사고치고 염치 없어진 막돼먹고 무식한, 풍족한 생활에 아무 것도 모르는 당돌한 계집애라고만 생각한다.

 결혼을 얼마 앞두고 은행에 사표를 낸 언니 '미양'은 자주 외박을 하고 늦은 귀가 때문에 식구들과 소동을 벌이는 동생 소양을 추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소양의 친구들인 명주, 경옥 등을 만나고 소양의 일기장을 들추어보기도 한다.

 소양의 귀가를 기다리던 어느 날 미양은 혜양과 같이 종로로 함께 나가, 소양이 잘 간다는 카페에 들어가 3명의 남학생들과 합석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일부 젊은이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그들은 종로의 밤거리에서 젊음을 배출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외박했던 소양이 아버지에게 대들고 난 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소양은 물질만능주의자인 아버지를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며칠 동안 여느 때와는 달리 별일 없이 평안하게 지낸다.

 그러다가 미양의 함진아비가 오던 날 저녁에 소양은 다시 집을 나가 버리고 만다. 소양의 일기장을 들추어본 미양은 불안감에 휩싸여 종로로 나가 지난 번 카페에서 만났던 그 남학생들과 부딪쳐 그들의 '큰 껀수(건수)' 올리는 데 자금으로 5,000원을 대주지만 그 돈이 중년 남자에게 데리고 갈 여대생을 유인하는 데 쓰이는 것을 알기 직전 소양이 차에 태워지는 것을 목격한 미양은 말리려고 소동을 벌인다.

 그 순간 소양은 인파 속으로 도망쳐 버리고, 허탈감에 빠진 미양은 큰 충격을 안은 채 디스코텍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순수한 모습의 청년을 만나 새벽 밤거리를 거닐다가 돌아온다.

 결혼식을 치른 미양은 남편(최대리)와 함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소양은 언니를 위해 선물을 마련한다. 그러나 그날 밤 악몽으로 잠을 깬 미양이 화장실에 가려고 나서는 데 비릿한 피냄새가 끼쳐 온다. 두려운 마음으로 소양의 방문을 연 순간 피로 물든 방바닥에 검은 옷을 입은 채 소양이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노트에는 절망적인 낙서가 쓰여 있었다.

 

 

 

 

  

 강석경은 <숲속의 방>에서 성년이 되어 얼마간 속세의 먼지가 묻은 내레이터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감수성이 예민한 여대생인 그의 동생 소양과의 관계를 대위법에 가까운 그의 독특한 퍼스팩티브 속에서 설정해 놓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레이터인 언니의 삶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플롯과 순결한 인간가치를 구하기 위해 불모의 현실세계를 벗어나 <숲속의 방>을 절망적인 행여(行旅) 하는 소양을 중심으로 하는 또 하나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話者)이자 주인공인 언니가 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 내지 공감을 통해서 두개의 가닥이 하나로 묶여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이분법적 인식논리 아래서 회색주의자는 가장 비겁한 삶이 되어 설 땅이 없지만, 진실은 양극단에 있지 않고,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색 지대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소양은 일기장에 이런 구절도 적었다. ‘머리는 명주, 재형에게 두면서 발은 경옥, 희중 쪽에 두려 하고 있다. 이성을 존중하되 감각이 편해서인가?’ 의식적으론 운동권 친구들에게 동조하면서도 실제 편하게 찾는 건 반대편 친구들이란 얘기다. 그러면서 ‘이런 나의 다양성을 전엔 인간의 폭이라 자부했지만 이젠 이것이 나를 비틀거리게 한다’고 썼다. 흑과 백, 이분법이 판치는 시대에 중간인 회색지대의 고민이었다. 소양은 고민 끝에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소양의 철저한 방황과 절망은 그 어느 극단도 진실로 인정할 수 없는 다양성(회색주의)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양의 죽음은 회색 지대를 용납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고, 제3의 삶 속에 진실이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한편, 초점을 바꾸어 보면, 소양도 하나의 극단이다, 소양의 반항과 혜양의 순응을 극단으로 볼 때 미양은 새로운 회색주의자이다. 따라서 현실의 회색주의는 보편적 다수의 억눌린 소양이 아니며, 미양이라는 회색 지대의 진실을 역설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이념으로 양분되어 있다. 이념적 양극만 존재하는 우리 사회는 국가의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사라졌다. 권익만 찾고 희생은 부족하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는 사람의 갈등과 고통을 알고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