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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제하 그림소설『유자약전(劉子略傳)』

by 언덕에서 2014. 2. 20.

 

 

 

이제하 그림소설유자 약전(劉子略傳) 

 

 

 

 

 

이제하(1937~  )의 장편소설로 1969년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다. 같은 내용의 소설과 그림이 한 권의 책에 공존하는 장편소설이다. 이제하는 시인으로 등단한 후 창작영역을 넓혀 소설, 그림, 영화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로 불린다. 그가 문학과 미술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여 독특한 성취를 이룬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청년기 때 미술에 심취한 것은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같은 서양의 첨단 사조를 문학보다 더 먼저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술 사조에서 보이는 강조와 변형 기법을 적극적으로 소설에 담았다. 잠재의식과 무의식에 호소하며, 회화적인 문체와 시적인 상징 수법을 통해 공간 확대와 심화를 노리는 기법을 작가 스스로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부르며 독자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환상과 현실이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우리시대의 현실적 문제들이 여러가지 이미지로 굴절되어 나타나 있다. 구체적인 줄거리, 명백한 테마를 배제하여 회화적인 문체와 시적인 상징 또는 초현실적인 암유를 극도로 활용하는 그의 소설은 매우 난해한 분위기소설이다. 그의 창작은 사건이 불투명하고 비현실적이며, 인간이 추상적으로 묘사되어 작가 스스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명명하고 있다. 전통적 수법을 파기하는 그의 이같은 실험은 오히려 그 경이로운 효과를 통해 잔인한 현실의 진상을 충격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이처럼 이제하는 환상적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속에는 환상과 현실이 분리ㆍ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결합되어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분단ㆍ이단ㆍ근대화의 현실 문제들이 그의 환상 속에서 어우러져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가 여러 가지 이미지로 변모ㆍ굴절되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남유자가 내 아틀리에에 온 것은 1967년 7월, 고교 동창인 N이 보낸 것으로, N은 유자의 사촌오빠였다. 유자는 아틀리에에 처음 오자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멍청한 눈길로 앉아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독특한 졸음 증세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두어 주일 후였다. 그녀의 이런 기이한 잠버릇은 이틀이나 사흘 전부터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 생각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쌓인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때문이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자 이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상경한 지 반 년이 가도록 그녀는 그림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여러 독특한 화가의 화집으로 유혹해 봤지만, 그녀는 거의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큰둥한 말투에서 나는 그녀가 예상 외로 그림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며, 높은 눈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처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창호지에다 손가락으로 파란 물감을 풀어 어떤 포름에 가두었다가 곧 없애 버리는 묘한 화법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어렴풋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녀의 남편 유형이 올라온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를 극진히 아끼고 위하는 애정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내가 작품에 대해 이루지 못할 허황된 꿈만 꾸고 있는 동안에 그녀는 길을 떠났다. 주머니 돈을 털어 어디든지 이르면 그곳 목욕탕에서 몇 시간씩 자는 버릇이 이 무렵부터 생겼다.

 어느 날, 그녀는 쟌 포스의 화집을 들여다보며, 고통에 몰려 절규하던 끝에 드디어 쓰러졌다. 지병인 위암으로 인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정치 이야기를 입 밖에 내고,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급속도로 떨어져 가는 유자의 병에 대해 나를 포함해서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인간들에 대해 나는 기억조차 하기 싫다. 유자는 28세의 나이로 죽었다.

 

 

 

 

 남유자라는 화가의 짧은 생애를 환상적 리얼리즘 수법으로 묘사한 <유자약전>은 1969년 ‘현대문학’에 처음 발표, 35년이 지난 2004년, 노작가 이제하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시간들을 반추하면서 60세에 배운 매킨토시로 ‘유자’를 작가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곁들여 펴낸 그림 소설이다.

 다분히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고 난해하지만 이미지 위주의 소설이라 그동안 작가는 그 독특한 유자의 이미지를 직접 그리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즉 주위를 파괴하고 자신을 늙게 만든 10년이라는 세월의 여울을 거슬러 올라 원초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주제인 만큼 그 영원성에 대한 희구가 결국 작가로 하여금 유자를 다시 그리게 만든 것이다. 세속적인 사랑에 늘 동반되는 늙음과 죽음의 환영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신념으로 가득 찬 ‘유자’를, 작가가 직접 해석한 이미지와 함께 새로 만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이제하는 <유자 약전>에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세상에 많은 직업 중에서 예술가를 택하고 있다. 그것은 예술가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기 의식이며, 훼손된 세계를 막아내는 유일한 거점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순교자의 모습을 자동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순교자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순교적 자세를 의미한다. 이 <유자약전>은 이러한 예술가적 자존심이 현실의 몰이해와 만나 무참히 ‘죽음’으로 변화ㆍ마멸되어 가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유자가 ‘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어요.’라는, 그 예술 자체에 대한 대단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면서, 이 세상의 타락한 현실로부터 추방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이제하 작가는 시, 소설, 그림, 영화평론 등 장르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다방면에 걸친 작품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음반을 내어 화제를 몰고 왔다. 육십을 넘긴 나이에 `가수`가 된 것이다. 이른바 `이제하식 육자배기 포크`가 그것이다. 이제하가 만든 9곡의 노래와 양희은의 노래 `세노야`를 더해 음반을 뚝딱 만들어냈다.

 그는 육십대의 나이일 때도 불구하고 또래의 벗보다 젊은 친구들이 더 많았다. 1980년대 말 서울 삼청동에 살 때는 집 언저리에 있는 카페에 드나드는 젊은이들이 모두 다 친구였다고 한다. 그의 노래는 거기에서 싹튼 것이다. 경복궁 옆 <눈썹을 그리는 광대>, 창덕궁 건너 <나무요일>에서 그는 거침없이 기타를 잡았다. 요절한 가수 김광석과도 그 곳에서 노래로 어우러졌었다 전한다. <나무요일> 친구들은 이제하가 음반을 발표하도록 부추겼고, 기획ㆍ제작부터 편곡ㆍ반주ㆍ합창까지 다 도와주었다. 

 달리의 그림과 같은 모사로 일관된 그의 소설은 소설에서 당연히 기대되는 구상적 문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의 소설이 독자나 비평가로부터 소원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환상적ㆍ자기분열적 묘사는 오히려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시켜 내면과 혼란스러운 세계, 인간과 외부의 응고된 관계에 대한 공포감을 야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