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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그저 잊혀지기를

by 언덕에서 2013. 7. 24.

 

 

 

 

그저 잊혀지기를

 

 

 

 

 

 

 

 

 

 

신부님은 언제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다. 자신의 소유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임기를 채우고 다른 성당으로 떠날 때에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다. 보던 책, 앉던 책상 등도 그대로 남겨두셨고 그냥 몸만 훌쩍 떠나셨다.

 

 신부님은 아무것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자신의 몸마저도 잠시 지상에 파견되어 머물다 사라지는 형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셨다.

 

 신부님은 심지어 자기가 다른 곳으로 떠난 후에도 그냥 그곳에 남아 있는 신도들에게 ‘아무개 신부님은 참 좋은 신부님이었다’라든가, ‘아무개 신부님은 참 멋진 분이셨다’라는 평판이나 소문이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떠나버린 순간, 그 순간 그저 잊혀지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신부님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은, 남은 사람들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러한 의식적인 소망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아주 조그마한 위선을 심게 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 최인호 수상록 <문장1> P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