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욕과 『제2의 성』 그리고 페미니즘
‘성욕’은 '남녀 또는 자웅 양성 간에 생기는 성교에 대한 욕망'으로 정의된다. 식욕이 생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욕은 종의 보존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며, 둘 다 각각 생물학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생리적 과정으로 볼 때 양자는 꽤 다르다. 식욕은 항상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생리적으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 만일 당분이 결핍되면 당분을 보충하여 일정 수준의 당분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성욕에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없다. 사회적 과정으로 보아서도 양자는 서로 다르다. 식욕도 사회적 관습에 의해 규정되지만 성욕의 경우에는 식욕에 비해 훨씬 더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받기 쉽다.
따라서 성욕을 채우려 하는 행동양식은 심리적으로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후 성욕은 식욕과 동일한 생물적 본능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고, 사춘기가 되어 처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나르시시즘 및 자아의 개념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학자들은 성욕이란 식욕에 수반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아는 어머니의 수유에 의해 영양을 섭취하는데, 이때 경험하는 만족감을 무의식적 욕구로 되풀이하여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 성욕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전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유아의 ‘손가락 빨기’가 아닐까 한다. 손가락 빨기는 생물학적 의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식욕을 채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구순의 쾌감을 얻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식욕은 어떤 특정 대상(음식물)에 의하여 채워지는 것이지만 이와 같은 쾌감·만족감을 얻으려 하는 성욕은 엄밀한 뜻에서 말하면 만족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예를 들면 어느 때 매우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하자. 그래서 다시 한번 그런 것을 먹고 싶어 하면서 이것저것 먹어 보지만, 결코 전에 먹었을 때와 같은 맛을 느낄 수 없다. 그 까닭은 실제로 경험한 맛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공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고 실제 경험과는 달리 이상화된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심리학자들은 성욕을 욕망으로 보고 있다. 성욕과 식욕은 이와 같이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훗날 프로이트는 식욕과 성욕을 일괄하여 삶의 충동(eros)이라 부르고 죽음의 충동(thanatos)과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
인간의 삶이란 태어남에서 죽음의 순간까지의 시간적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성욕의 의미는 어디까지 갈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때의 일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급우의 아버지가 폐병으로 사망을 하였다. 30대 후반의 젊은 분이 요절을 한다. 그런데 임종을 엿본 이웃사람들로부터 희한한 소문이 번졌다. 그분은 임종 순간 아내에게 나신으로 서있기를 부탁했고 실제로 급우의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그 부탁을 들어주신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묘한 순간이었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성욕은 지속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는 나와 절친한 친구 집안의 이야기이다. 친구 내외는 중풍에 걸린 팔순의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친구의 아버님은 몇 년 전 여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팔순의 노인이 아내 없이 혼자 살게 되면 아무래도 며느리의 통제 속에 살게 마련이다. 친구의 부인은 씩씩하고 용감한 '여장부'형의 여성이다. 우리 친구들로부터 효부로 칭송받던 그녀는 매일 시아버님 방청소를 했다. 어느 날, 방을 정리하러 시아버님 방에 들어가니 친구의 아버님은 민망하게도 팬티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하고 계셨다 한다. 당황한 그녀는 얼떨결에 "아버님, 지금 뭐하세요?" 라고 물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 아……. 그러니까……. 죽기 전에 언젠가는 그걸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되는 지 안 되는지 혼자서 실험해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렇구나, 죽는 순간까지 성욕은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을 때까지 갖고 간다는 남자의 성욕은 여성을 단순화하고 무시하면서 존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자? 아주 단순한 거지.' 단순한 공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여자란 자궁이며 난소다. 여자란 암컷이다. 이 암컷이라는 말은 여자를 정의한 시대가 있었다. 남자의 입에서 암컷이란 형용사는 경멸하는 말처럼 발음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동물성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그를 가리켜 저건 수컷이야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진다. 이 암컷이라는 말이 경멸의 언사로 들리는 이유는 여자를 자연 속에 놓아두지 않고 그녀의 섹스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 보봐르 저 『제2의 성』 서문
시몬 드 보봐르의 『제2의 성』은 이렇게 시작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여성학자 미셸 페로는 "보봐르의 사상은 무기가 되고 현실이 되어, 여성들은 사회적 역할을 열망하며 대학에 등록하고, 모든 직종의 직업을 요구하게 됐다"고 그 책이 현대 여성에게 미친 영향력을 요약했다.
『제2의 성』은 오늘날 페미니즘의 경전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5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보봐르가 여성의 자기 발견을 촉구하는 논리 전개를 위해 동원한 성에 대한 표현들이 당장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흔히 말하기를 여자는 남자의 페니스를 부러워하며 그것을 거세하려고 한다. 그녀가 남성의 생리 기관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페니스가 남성의 모든 특권을 구현하고 있다고 간주할 때뿐이다.'
'프랑스의 의사인 드로랑은 이성과 분별이 충만한 남자라고 불리는 이 신에 가까운 동물이 어째서 점액으로 더러워진 채 육체의 맨 아래 부분에 수치스럽게 위치해 있는 여자의 치부에 끌릴 수 있느냐고 분개하면서 자문했다.'
당시로서는 이런 정도의 서술마저 문젯거리가 됐다. 가톨릭 작가 모리악은 『제2의 성』을 가리켜 포르노라고 혹평하면서 반 보봐르 운동을 이끌었다. 교육자들은 청소년들이 직설적 성 표현을 쓴 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좌파도 보봐르를 공격했다. 여성 해방은 노동자 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여성들이 분파적 행동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
『제2의 성』이 출판되었을 때 보봐르는 42세였다. 당대 제일가는 실존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로 명성을 독차지하고 있던 사르트르와 2년간의 계약 결혼을 한 지 20년이 지나고, 그녀 자신 <초대받은 여자>로 유행 작가의 위치를 획득한 지 6년이 지나고 있었다. 명성의 절정에 있는 여류 작가 보봐르의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 책의 '인류 역사 재구축 작업'은 여간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다.
카뮈는 "프랑스의 남성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면서 분노했다. 여성의 평등한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던 때에 여성이 교육, 직업 선택, 배우자 선택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며 출산의 자유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보봐르의 『제2의 성』은 전후 세계 페미니즘 운동의 새 출발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처럼 반대가 거셀수록 『제2의 성』과 보봐르의 이름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오늘날 여성학자들은 『제2의 성』 출간을 페미니즘 이론과 연구의 시발점으로 잡기도 한다. 고대 신화 분석은 물론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 철학, 문학에 대한 해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지식을 두루 동원하면서 여성이란 무엇인가, 여성 억압의 근원은 무엇인가를 규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제2의 성』은 60년대 미국에서 여권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보봐르는 50대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전개했지만, 나이 60 이후엔 책상 앞에 앉아 있기보다 여성 운동의 실천가로 활동했다. 여성의 출산과 피임, 낙태의 자유를 위한 시위 대열에 참가했고, 전 세계 여권 운동가들의 모임에서도 상석을 차지했다.
♣
작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을 떠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다. 교황은 이날 4박 5일의 방한을 마치고 출국한 직후 기내 회견 중 일본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당시 소녀였던 할머니들은 경찰서에 끌려가 유린당했음에도 자신들의 존엄성을 강하게 지켰다"며 "이처럼 큰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 품위를 잃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위안부 할머니는) 전쟁의 결과이며, 이런 잔인함은 현재도 벌어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물론 이 발언은 살아있는 성인의 깊은 성찰에 기인한 것임은 틀림없지만 보봐르 같은 선각자가 있어 그 기초를 닦았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참고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 (0) | 2015.04.14 |
---|---|
'갈보'의 어원 (0) | 2015.04.03 |
크리스마스(Christmas 성탄절) 의미와 이미지들 (0) | 2014.12.25 |
월관지화(越官之禍) (0) | 2014.12.10 |
초겨울 풍경 (0) | 201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