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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봄날은 간다

by 언덕에서 2013. 5. 31.

 

 

 

 

봄날은 간다

 

 

 

 

 

 5월의 마지막 날, 봄날은 간다.

 모두에게 활기찬 기운을 안겨주는 계절의 여왕인 봄을 소재로 한 대중의 노래는 무수하다. 오랫동안 봄노래의 전형은 축축 처지는 멜로디가 아닌 발랄하고 재미난 리듬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김정미의 <봄>이나 자우림 김윤아의 봄노래를 들어보면 내밀한 개인적 감성을 드러낸 슬프고 비장한 느낌으로 변화된듯하다. 설렘의 계절인 봄. 누구에게나 청춘의 봄은 있었지 않는가.  

 떠나간 봄을 아쉬워하며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 제목을 떠올리니 김윤아의 노래와 백설희의 노래가 우선 생각났다.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철학적인 의미도 좋지만, 연분홍 치마가 나풀거리며 펼쳐졌다가 옷고름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음 오그리는 열아홉 순정의 봄날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남자 가수인 조용필과 장사익의 노래도 이 처연한 '휘날리더라' 때문에 더욱 가슴을 애타게 만든다. 특히 '휘날리더라'로 풀어헤치는 부분에서 목청으로 돋아나는 서러운 정서를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겨울이 길어졌고 최근의 2월말부터는 유달리 봄이 기다려졌다. 오랜 기간 사랑받는 영원한 봄노래의 고전으로 생각되는 그리운 노래가 있다.

 사실 이해되지 않는 난해한 현대시보다 가슴 속에 들어와 가슴을 베어가는 대중가요 노랫말이 시보다 더 좋은 시로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모 문학잡지에서 현역시인 100명에게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조사해 발표한 흥미로운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1위에 오른 노래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였다.

 1943년 데뷔한 백설희(본명 김희숙)는 이 노래 외에도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목장 아가씨><물새 우는 강 언덕>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의 여가수다.

 사실 이 노래는 사실 화사한 봄날에 어울리는 봄노래의 전형에서 빗겨난 슬픔과 퇴폐와 절망이 뒤엉킨 구슬픈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만큼 한국 여인들의 한스런 마음을 잘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슬퍼서 더욱 아름다운 노래다. 실제로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한국전쟁 후 상처받은 많은 가슴들을 울렸던 이 노래는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명곡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 봄날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이 노래는 누구나 공감하는 한의 정조로 가득하다. 허진호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진 이 노래는 불후의 명곡이라면 나만의 생각일까?

 이 노래의 절경(絶景)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에 있다. 희로애락이, 솟아오르는 정념과 꺼져 내리는 비탄의 느낌을 타고, 세상에 둘도 없는 욕망과 비련을 순식간에 쓸어내린다.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아무 이유도 없이 몸과 마음이 함께 흐르던 날들을 기억케 만든다.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고 끝내 얄궂은 노래가 되듯 봄날의 끝자락에 발표된 이 노래는 슬픔과 종말의 감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미덕을 발휘한다. 이 노래가 세월을 넘어 변함없이 봄날에 불리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아아,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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