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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지하련 단편소설『도정(道程)』

by 언덕에서 2013. 5. 1.

 

지하련 단편소설 『도정(道程)』

 

 

월북작가 지하련(池河蓮. 1912∼1960 ?)의 단편소설로 1946년 8월 [문학]지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하련의 문학 세계에서 한 획을 긋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해방 공간의 소설 전체를 통해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작품 중의 한 편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지하련은 1940년 문학평론가 백철의 추천으로 <결별>을 [문장]에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결별>을 포함해 <체향초>(1941), <가을>(1941), <산길>(1942), <도정>(1946), <광나루>(1947), <종매>(1948), <양>(1948) 을 발표하여,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지하련의 단편소설 「도정」은 1945년 해방이 되자마자 발표됐고, 조선문학가동맹 제1회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풍경을 지식인의 관점에서 묘사한 작품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해방 직후 국내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민주주의운동에 있어서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서, 새로운 조선문학이 창조하여 나갈 인간형상의 한 경지를 개척하고 있으며, 심리묘사 및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 작자의 비범한 자질과 더불어 우리들 가운데 있는 소시민의 음영을 감지하는 예민한 감각은 주목에 값한다.”고 높게 평가했다.

 지하련의 작품들은 예외 없이 섬세한 필치로 젊은 남녀의 심리를 추적한 것들이다. 삶의 조그마한 파편들 하나하나에 깊은 관심을 보내면서 결코 서두르지 않는, 어찌 보면 다소 담담하게까지 느껴지는 유장한 걸음으로 독자들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짚어 나가는 그의 소설들은 이선희ㆍ최정희 등의 작품과 함께 해방 전 여성문학의 한 자리를 자리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일제 말 암흑기의 침묵 기간을 거친 후 광복 이듬해에 발표한 도정에서 그는 주목할 만한 변신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해방 공간에서도 곳곳에서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그것이 사회주의자들의 핵심부에까지 파고 들어오는 현실과 그런 현실 앞에 맞서고 고민하는 지식인의 초상이 작가의 날카로운 눈길에 의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 그려진 주인공의 고민은 결코 해방 공간이라는 한정된 시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규율과 개인적 양심 사이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전형의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광복 직후 남한 좌익 조직 내에서 발생한 재건파 대 장안파의 헤게모니 다툼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만한 측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카프 문인들의 기념 촬영 장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석재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적극적인 사회주의 독립투쟁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6년이나 징역을 살고 나온 후, 일단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인물이다.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온 그는 새로 재건된 당의 최고 간부진 가운데 기철이 들어가 있음을 알고 크게 놀란다. 기철로 말할 것 같으면, 일제 말기에 광산을 한다며 돈주머니를 거머쥐고 돌아다니던 기회주의자였다. 석재는 그런 인물이 당의 핵심부에 자리 잡았다니, 도대체 이 당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 때문에 갈등한다. 그러나 기철은 당을 떠날 수는 없다.

 석재가 당사(黨舍)를 찾아가니 기철이 몹시 반가워하며 함께 일하자고 한다. 석재는 그에게 심한 혐오감을 느끼나, 다음 순간 ‘이제 기철이 당의 중요 인물일진대, 기철을 비난하는 것은 곧 당의 비난이 되는 것’임을 깨닫고 고민에 빠진다.

그런 대로 일단 입당 수속을 밟기로 하고, 내어주는 입당 원서의 계급란에 ‘소부르주아’라고 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현장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나의 ‘소시민’과 싸우자! 싸움이 끝나는 날 나는 죽고, 나는 다시 탄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영등포로 간다. 그렇다! 나의 묘지가 이곳이라면, 나의 고향도 이곳이 될 것이다.' 라고 외친다.

 

남편 <임화(林和.1908.10.13-1953.8.6) >와 지하련

 

 이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이 작품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해방 공간 곳곳에서 권모술수가 횡행하고, 그것이 심지어는 사회주의자들의 핵심부에까지 파고 들어오는 현실과, 그런 현실 앞에 맞서 고민하는 양심적 지식인의 초상이 작가의 날카로운 눈길에 의해 생생하게 포착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 작품에 그려진 석재의 고민은 해방 공간이라는 한정된 시점에만 그치지 않고, 조직의 규율과 개인적 양심 사이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전형의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석재가 입당 원서에 ‘소부르주아’라고 써 넣고 나서 자신 속의 소시민성과 싸울 것을 다짐하는 장면은, 오늘의 시점에서 보아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 소설 『도정』을 읽으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지하련의 해방 전 작품에서 한 단계를 올라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방 전의 작품군과 전혀 무관한 존재, 해방 전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거부한 자리에서 빚어진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작품의 성공은 따지고 보면, 해방 전의 작품군에서 선보였던 섬세한 기법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석재가 해방의 소식을 알게 되는 장면을 묘사한 소설의 첫 장면만 보아도 이 점을 알 수 있거니와, 그 기법은 작품의 마지막까지 지속되면서 이 이야기에다 탄탄한 실감을 보여 준다. 따라서 『도정』의 성공은 지하련의 해방 전 작품들에 나타났던 심리 탐구의 노선을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지식인과 사회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결합시킨 결과로 이루어진 산물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정」은 일제의 혹독한 억압에 한때 굴복했던 인텔리겐치아의 자화상이다. 소설에서 당 가입서에 '소 부르주아'라고 쓴 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소시민과 싸우자'고 결심하는 주인공의 반성은 그녀와 남편 임화의 당시 심경을 그려내는 장면이 그것이다.

 

 

 

 여류소설가 지하련의 본명은 이현욱으로 카프 출신의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임화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련은 경상남도 거창 출생으로 마산에서 성장했다. 부유한 집안 환경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당시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첫 부인 이귀례와 이혼한 상태였던 임화가 마산에서 요양 중일 때 만나서 1936년 결혼했다. 임화는 전처 이귀래와 동거 중이었으니 재혼이었다. 당시 임화는 사회주의 계열 예술동맹의 총수이며 인기 많은 논객이었다. 프로로 전향하기 전에 필명을 임다다라고 할 정도로 다다이즘으로 출발한 세련된 댄디보이였으며, 조선의 모든 문예 이론가들을 거꾸러트린 논객이기도 했다. 임화는 당대의 거함 김팔봉, 김기진, 박영희까지를 거꾸러트리고 헤게모니를 장악한 동맹의 서기장이었다. 지하련은 해방 직후 남편 임화와 함께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지하련은 거창에서 몇 천 석 쌀농사를 하는 부잣집 딸이었던 관계로 동경소화여고, 동경경제전문학교에 유학했다. 1940년 <결별>을 데뷔작으로 문단에 등장하면서 필명을 ‘지하련’이라고 했다. 글의 흐름이 섬세하고 예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도정』으로 최초의 [조선문학상]을 수상했다. 지하련은 1947년 남편 임화와 함께 월북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만주에 피난차 머물고 있다가, 1953년 박헌영 계열이 몰락하면서 임화가 미제의 간첩 혐의로 숙청 후 처형당하고, 시신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실성한 상태가 되어 두만강을 헤매다 수용소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