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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구 연작소설『관촌수필(冠村隨筆)』

by 언덕에서 2013. 3. 6.

 

이문구 연작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

 

 

이문구(李文求, 1942 ~ 2003)1의 연작소설로 1972년에 발표된 <일락서산(日落西山)>부터 1977년 발표된 <월곡후야(月谷後夜)>까지 모두 8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졌으며 1977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제1∼5편은 관촌마을의 생활사에 대한 작가의 추억담, 제6편은 고향을 떠난 후 다시 만난 고향친구의 이야기, 제7∼8편은 귀향의 경험담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도 사투리와 1인칭 독백체적인 만연체의 문체가 특징인 이 작품은 8편의 작품들이 각각 독립적인 단편소설이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6ㆍ25전쟁 직후 충청도의 관촌마을을 배경으로 전쟁과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해체되어 가는 농촌사회의 세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고향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고향의 의미와 따뜻한 인간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근대화의 미명하에 훼손된 농촌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그려내는 가운데 공동체적 삶이 파괴된 피폐한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상실된 휴머니즘의 회복을 촉구함과 동시에 당시 우리 사회의 성급한 산업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이문구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느껴지는 의고체 문장과 풍부한 토속어의 사용, 묘사의 구체성을 갖춘 만연체의 사용 등 개성적인 문체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970년대의 농촌문제를 다룬 또다른 연작소설 <우리 동네>와 더불어 한국적인 농민소설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1992년 11월 ~ 1993년 2월, SBS에서 TV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편 <일락서산(日落西山)>(1972) : 나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와 옛날 어린 시절 고향 풍경을 향수조로 엮고 있다. 오랜만에 성묘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은 주인공이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고향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인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부와 좌익사상으로 희생된 아버지, 그리고 이제는 오랜 타향살이로 인해 고향을 영영 잃어버린 '나'에 이르는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어린 시절의 고향풍경에 담아 담담하게 회상한다.

 ▶제2편 <화무십일(花無十日)>(1972) : 6ㆍ25전쟁을 통한 윤영감 일가의 수난사, 비극적 관계를 회상한다. 6ㆍ25전쟁으로 인한 윤영감 일가의 몰락을 통해 인생의 허무감을 이야기하는 한편, 그들을 따뜻이 대하는 주인공(나) 어머니의 순박한 인정을 다룸으로써, 우리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전통적 삶의 인간미를 감동적으로 느끼게 한다.

 ▶제3편 <행운유수(行雲流水)>(1972) : 성장기에 함께 했던 옹점이의 결혼 생활, 인생유전을 가슴 아프게 그리고 있다. 유년시절의 고향을 배경으로 주인공과 함께 성장기를 보냈던 소녀 옹점이의 가슴 아픈 인생유전을 담아내고 있다.

 ▶제4편 <녹수청산(綠水靑山)>(1973) : 대복이와 그 가족에 얽힌 이웃의 순박한 삶과 그 삶이 퇴색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제5편 <공산토월(空山吐月)>(1973) : 왕조 체제의 억압적 구조 속에 신음하면서도 서로 돕던 백성의 전형을 석공(石工)을 통해 보여 준다. 성실하게 살다 37세의 나이로 요절함으로써 주인공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석공(石工) 신씨(申氏)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적인 인간상을 그려낸다. 이 단편은 연작 가운데 가장 감동이 큰 작품으로 평가된다.

 ▶제6편 <관산추정(關山芻丁)>(1976) : 유년시절의 고향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마을 안을 흐르던 한내(大川)가 도시에서 밀려들어온 퇴폐적 소비문화의 하수구로 전락한 실상을 그리고 있다.

 ▶제7편 <여요주서(與謠註序)>(1976) : 중학 동창인 친구가 아버지의 약값을 마련하려고 꿩을 잡아 팔려다가 발각되어 자연보호를 위배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의 횡포에 시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8편 <월곡후야> : 성년이 된 주인공이 고향을 둘러보며 경험한 이야기로, 벽촌에서 소녀를 겁탈한 사건을 둘러싸고 마을청년들이 범인에게 사적인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문구의 소설은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점차 상실되어 가는 전통적 삶의 숨결과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가 다루고 있는 세계는 근대화의 물결에 후광을 얻는 도시적 삶이 아니라, 근대화의 음지에 해당되는 변두리나 농촌의 변화된 현실이다.

 그의 소설들은 단순히 그가 다루는 토속적인 세계의 전통적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 속에서 겪는 변화의 실상과 음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고향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낭만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겪는 갈등과 불화의 정체를 밝히는 데 작가의 시선이 응집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이문구의 소설적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고향을 무대로 하면서도, 고향의 복고적 취향이나 전통적 인간의 삶을 다루지 않고, 그 이면에 놓인 변화의 구체적 정체를 밝히면서, 변화 속에서 겪는 인간적 갈등과 변모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려는 점이다.

 자전적 성격의 이 소설은 성년이 된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고향의 모습과 전쟁의 혼란에 떠밀려진 순박한 농민들의 인생유전을 실화를 토대로 담담하게 펼쳐 보인 회상 중심의 이야기이므로 소설의 제목에 '수필'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이 6ㆍ25의 광풍에 풍비박산이 난 작가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 이문구의 부친은 충남 보령의 남로당 총책을 맡았다가 전쟁이 터지자 예비 검속돼 처형당했다. 작가의 큰형은 이미 일제 때 징용돼 실종된 상태였던 터라 둘째형이 부친과 연루돼 비명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형은 전쟁 당시 18세의 나이였으나, 역시 빨갱이 집안 자식이란 이유로 대천 앞 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당했다. 이 같은 기구한 사연을 아는 문단 동료들은 결코 그와 함께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 집안에서 살아남은 남자라고는 이미 팔순을 넘긴 할아버지와 넷째 아들로 태어난 작가뿐이었다. 소년 이문구는 당시 "어린 마음에도 맨 먼저 다짐한 것이, 나만은 절대로 형무소나 유치장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살아남아서 가문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 본능이 어린 그를 짓눌렀다.

「관촌수필」은 근대 이전 시골 선비의 표상을 따랐던 조부 밑에서 자라난 소년 이문구의 성장기를 성년이 된 작가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단편들로 꾸며져 있다. ‘공산토월’, ‘화무십일’, ‘행운유수’ 등의 고색창연한 제목을 지닌 이 연작소설들은 작가의 자전적 회상뿐만 아니라 전쟁의 혼란에 떼밀려진 순박한 농민들의 인생유전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상상력으로 쥐어짠 허구가 아닌 실화에 토대를 둔 이야기들이기에 작가가 이 소설의 제목에 ‘수필’이란 이름을 붙였던 연유이다.

 

 

 

 

 

 

  1. ☞이문구(1942 ~ 2003). 소설가. 호는 명천(鳴川). 농촌의 원형과 산업화에 따른 해체과정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며 사투리를 아름답게 구사하는 독특한 문체로 농촌소설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된다. 한국전쟁으로 아버지와 형들을 잃었다. 1959년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막노동과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김동리, 서정주 등을 사사했다. 1966년 〈현대문학〉에 〈백결〉·〈다갈라 불망비〉가 추천 완료되어 등단했다. 1970~72년 〈월간문학〉 편집장을, 1973~75년 〈한국문학〉 편집장을 지냈다. 이 외에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간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이사장, 한국소설가협회 편집위원장·상임이사, 김동리선생기념사업회 회장, 대산문화재단 자문위원, 경기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우교수 등을 역임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