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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by 언덕에서 2013. 4. 9.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이문구(李文求. 1942 ~ 2003)의 연작소설로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발표된 9편의 소설을 발표순으로 엮은 작품이다. 공업화 과정에서 생존기반을 상실한 농촌의 현실을 그린 소설로 각 작품의 제목이 모두 ‘우리 동네 〇씨’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77년 서울을 떠나 경기도의 한 농촌지역인 ‘발안’에서 생활하면서 발표하기 시작한 중단편들의 모음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197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빚어진 농촌의 소외문제와 농민들의 갈등, 전통적 질서의 해체과정 등을 풍자적 시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농촌문제의 심각성과 갱생의 변증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농촌문제의 총괄적인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연작소설은 <우리 동네 김 씨>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우리 동네 이 씨><우리 동네 최 씨><우리 동네 황 씨><우리 동네 정 씨><우리 동네 장 씨><우리 동네 조 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제목으로 차용된 성씨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시대 상황에 재빠르게 편승하기도 하고, 더러는 못마땅해 하면서도 마지못해 합류하기도 하는 불특정 다수의 평범한 농민들이다. 이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하찮은 몸짓 하나에까지도 순박하면서도 날카로운 현실적 비판이 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모두 1970년대 산업 사회 속에서 농촌의 소외 문제와 농촌 구성원들이 겪는 갈등의 문제, 그리고 농촌의 피폐 및 해체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농촌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당대 현실과 1980년대 우리 농촌 모습을 예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가 이문구( 李文求.&nbsp; 1942 ~ 2003)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우리 동네 김씨

 민방위교육을 풍자적으로 그린 내용이다. 김 씨는 가뭄이 들자 남의 저수지 물을 양수기로 퍼 올리다가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에게 동시에 들켜 곤경에 빠진다. 그런데 사태는 의외로 반전되어 한전 직원과 저수지 감시원의 싸움으로 번졌다가 민방위교육이 열리는 바람에 흐지부지된다. 김씨는 민방위교육장에서도 생각 없이 부면장의 말에 사사건건 토를 달아 교육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우리 동네 이 씨

 농촌에까지 번진 망년회의 실태와 농촌부녀자들의 관광여행, 변칙적으로 운영되는 농협의 실상, 농촌가정의 도박풍조 등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 동네 최 씨

 소작농인 최 씨를 통해 토지소유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는 한편, 도시인들의 사냥공해와 농민자녀들이 관련된 노사문제를 다루었다. 최 씨의 맏딸과 친구 영순의 이야기를 통해서 공장노동자의 문제가 농민의 삶과도 직결된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우리 동네 황 씨

 심각한 농약공해로 파괴되어 가는 농촌의 생태계와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악덕 고리채, 농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 부재지주의 증가, 농협을 악용하는 모리배 등 온갖 수탈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농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우리 동네 정 씨

 1970년대 이후의 농촌현실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근대화의 주체인 농민을 소외시킨 농촌근대화정책의 허구성과 추곡수매의 비리 등을 폭로하는 가운데 옛날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농촌의 실정을 깨닫고,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아가며 자신들의 권리 의식에 눈떠가는 농민들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가 이문구(1942 ~ 2003)

 

 

 이 작품은 급격한 근대화로 인해 공동체적 질서가 붕괴되어 가는 1970년대의 농촌현실에 대한 문학적 탐구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특히 작가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느껴지는 유장한 문체로 삶의 현장을 이야기하면서 당면한 현실의 문제점에 주체적으로 대응해 가는 농민들의 능동적인 모습을 형상화함으로써 작가 나름의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한 점은 이 작품의 미덕으로 평가된다.

 작가는 농촌을 다루더라도 도시와 대립되는 면만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의 작가적 의식은, 농촌 속에서의 삶 자체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듯이, 그 환경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이원적 현실을 파악하려고 했다.

 이 작품은 산업 사회로 인해 점차 전통적 농촌 사회가 마멸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적 삶의 현장을 풍자적 시각으로 묘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여 농촌의 도피성, 서정성, 토속성 등을 부각한 종래의 농촌 문학 규격을 벗어나서 농촌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며 그 속에는 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의 문장은 '북에 홍명희, 남에 이문구'라 할 만큼 아름다운 문장이요, 주제의식으로 치면 '산업화 과정에 노출된 사회문화적 황폐에 대한 가장 혼신적인 문학적 반응'이라 평할 만큼 진지하고 견결하다. 만연체와 구어체, 토속어와 서민들의 생활언어가 결합된 그의 독특한 문체는 한글이 얼마나 수려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문구 이름 석 자는 이 문체만으로도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기록될 만하다.

 작가는 곧 말의 발견에서 출발한다고 믿는 이문구는 틈만 나면 '말(語) 사냥'을 나섰다. 희귀한 토속어를 수집하러 다닌다기보다는 민중의 삶에서 우러나는 살아 있는 말들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우리네만의 체온과 체취와 체통이 스며 있고, 우리네의 줏대와 성품과 생각이 들어있는' 말을 찾아 다리품을 팔고 조탁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그의 빛나는 언어들이다. 그는 이 빛나는 언어들로 '옛 모습으로 남아난 것'에 대한 그리움을 목 놓아 노래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애정은 그의 생활습관도 일치했다. 그래서 이문구의 문학은 '복고의 극치'로도 일컬어진다.

 작가는 우리말 특유의 가락을 잘 살려낸 유장한 문장으로 작가 자신이 경험한 농촌과 농민의 문제를 작품화함으로써, 소설의 주제와 문체까지도 농민의 어투에 근접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펼쳐 보여 농민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된다.

 고향을 상실한 사람들의 애환과 그러한 상황을 초래한 시대적 모순을 충청도 특유의 토속어로 잘 포착해 형상화하고 있다. 농촌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연작소설 <관촌수필>은 1950∼1970년대 산업화시기의 농촌을 묘사함으로써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의 황폐한 삶에 대비시켜 강하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새마을운동 이후 변모된 농민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또 다른 연작소설 「우리동네」는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이 겪는 소외와 갈등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농촌문제보고서와 같은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