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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완서 장편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by 언덕에서 2013. 9. 5.

 

 

 

박완서 장편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장편소설로 1982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게재된 연재소설이다. 그러니까 1983년 한국 방송 공사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박완서는 예언가적 비전을 가지고 이 소설을 통해서 이산가족 문제를 다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당시 이산 가족의 만남에의 열망과 만남 후의 환희와 감동은 이산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이 소설을 혈연관계만으로는 화해하기 어려웠던 이산가족의 현실 문제를 다루었다. 열렬히 자신의 핏줄을 찾고자 하는 이산가족의 뒤편에는 일부로 외면하며 잃어버린 가족을 찾지 않은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실제 상봉한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의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작가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문제와 아울러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이 소설은 1984년 배창호에 의하여 영화화되었다. 

 

영화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The Winter That Year Was Warm> , 1984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6·25전쟁의 와중인 1951년 겨울, 1·4 후퇴의 경황없는 와중에 수지는 일곱 살 된 여동생 수인을 고의로 놓친다.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머니 또한 비행기의 기총소사로 죽게 된다.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 덕분에 수지의 오빠 수철은 어엿한 중산층의 가장이 된다. 수철의 여동생 수지는 대학원 졸업식 날 중매로 만난 좋은 조건의 청년과 결혼하게 된다. 수지는 수인(오목)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동생을 비밀리에 수소문하고 어느 고아원에 같은 이름의 소녀가 있음을 알고는 가끔 찾아 간다. 하지만 그 애가 자신이 버린 수인(오목)으로 밝혀지면서 동생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잃어버렸던 혈육을 찾았다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지난날 자신의 마녀 같은 행위가 들통 날 것이고, 자신의 삶의 축은 꺾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오빠 수철도 수인(오목)의 가족 찾기 신문 광고를 통해 그 고아원을 알게 된 후, 수인(오목)을 도와주며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는 익명의 독지가로만 남는다.

 수지는 가난한 옛 애인인 인재와 수인(오목)이 만나는 광경을 목격한 날, 수인(오목)에 걸린 은표주박 노리개를 보게 된다. 수지는 질투심으로 인해 둘 사이를 잔인하게 갈라놓고 수인(오목)은 결국 고아원 친구인 보일러공 일환과 살게 된다. 지하방을 얻어 신방을 차린 수인(오목)은 인재의 아이인 일남을 낳게 된다. 남편에 대한 수인(오목)의 죄책감과 일환의 사이에는 결국 술과 폭력과 고통의 나날만이 이어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수지는 고아원 자선 활동 등을 하는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귀부인이 된다. 집 보일러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이남 삼녀의 부모가 된 일환과 수인(오목)을 만나게 된다. 수인(오목)이가 너무 가난한 데다 자식이 다섯이나 되어 자기가 친언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뒤치다꺼리를 맡아야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걱정 때문에 자신이 친언니임을 밝히는 일을 주저하다가 서로 친자매임을 알게 된 수인(오목)은 수지에게 일환이 중동 건설 현장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수지는 일말의 죄책감을 씻는다는 생각으로 오빠 수철을 통해서 일자리를 얻어낸다. 일환이 중동으로 떠나는 날 수인(오목)은 결핵으로 쓰러진다. 수인(오목)은 긴 가난과 질병 끝에 자식을 맡기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수지에게 감사의 표시로 은표주박을 건넨다. 그 순간에야 수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수지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참회하지만 수인(오목)은 이미 죽어 있었다.

 

영화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The Winter That Year Was Warm> , 1984 제작

 

 

 소설 속에서 수지는 평소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동생 수인이를 피난길에서 일부로 버리게 된다. 그 증거는 동생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은표주박을 순순히 내줌으로써 자기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게 했다는 점과 전쟁 후 평소에 부르던 오목이라는 이름 대신 호적상의 이름 수인이를 내세워 동생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우연한 기회에 고아원에서 찾은 동생 수인이를 만났을 때도 혈육의 정보다는 자신의 애써 이룬 가정의 평화를 깨뜨릴까 두려워했다는 점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중산층의 가장된 허위의식이다.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수지가 자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로 인해 빈민층 사이에 있는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 자신들만 위해 살았기 때문에 분단의 고착화와 이산가족 간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에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따라서 많은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내용이 '예언자적 비전'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근대사는 많은 이산가족을 만들어 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6ㆍ25가 휴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가족이 이산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떤 불가항력적인 운명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인 회피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작품에서 수지와 수인의 이산은 급박스러운 전쟁 상황에서 비롯되기도 하였지만, 수지의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심, 이기심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작가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겪게 된 고통,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주된 주제로 다뤄왔다. 이 작품 역시 전쟁으로 헤어져야 했던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상처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혈육마저 냉정하게 버리려는 중산층의 이기심과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중산층 특유의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결국은 분단 상황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주제 의식을 전하고 있는 셈이다.